도랑 치고 가재 잡고
즐겨 찾는 남한 산성 코스가 있다.
뭐 거창한 등산 코스는 아니다. 9시 전후로 가면 충분히 주차하고, 산성의 성곽 주변을 한가롭게 돌 수 있다. 그런데 게을러지기로 작심한 요즘에는 마음으로 하이킹을 하고(사실 주차 공간이 꽉 차서 내가 가는 시간대에는 뭐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려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드라이브를 잠깐 한 뒤 익숙한 카페에 가는 루틴이다.
남한 산성 초입에 있는 이 카페는 2층짜리로 넓은 주차장과 그 앞에 계곡 자락을 끼고 있다. 코로나 19에 산자락 공기에 갈급한 사람들은 이곳을 많이들 찾는다.
코로나로 바다든 강이든 물을 곁에 둔 카페는 모두에게 인기다.
대단한 곳은 아니지만, 이곳의 통유리 밖으로는 계곡이 보이고, 강에 물이 가득할 때는 정겹게도 도랑 치고 고기 잡는 아빠와 아이들도 많으니 나는 이 카페가 참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단풍 구경하기도 제격이다. 다른 곳에 단풍이 시원찮을 때도 이곳에서는 알록달록한 단풍의 경치를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계곡을 앞에 두고 캠핑 테이블과 좌석이 있어 캠핑족이 된 기분도 든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빵을 많이 즉긴다.
최근에는 나도 남한강 근처 카페에서 스콘 하나를 걸신들린 듯이 먹은 기억이 난다. 어쩌면 야외에 나오면 따뜻한 빵이 제법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잘 만들어진 스콘은 정말 맛있다. 추워지기 시작할 때 야외에 나가면 스콘 먹는 것을 추천한다.)
몇 개 사진들은 작년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 찍어둔 것이다.
나는 나무와 물, 찬 공기 그리고 그네들과 인공적인 조화(하하;;)를 엄청나게 사랑하는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흔하디 흔한 노란빛 전구를 툭하니 걸쳐둔 게 맘에 든다.
역시 무리 지은 생명체들은 압도적이다. 아이들도 찾아오고 하니 내놓은 것 같은데 왠지 정감이 간다.
Lazy 고영희 씨를 만나다
이렇게 쓰고 보니 고영희 씨에게 미안하다. 고영희 씨는 원래 하루 절반 정도는 잠을 잔다고 한다. 그는 그저 일과를 보낼 뿐인데 내가 게으르네 뭐네 할 필요는 없지.
많은 고영희 씨들을 만나봤지만, 이 곳의 고영희 씨는 거만함도 예민함도 없다. 뭐랄까 50대 중반 정도 되는, 여유가 넘치는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다. 나도 그 나이가 되면 그럴 수 있을까.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이 상당히 귀찮게 하는데도 고영희 씨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는 고영희씨를 처음 본 이후로 이 카페를 가면 고영희 씨를 먼저 찾게 된다. 나보다 어르신 같으니 인사를 먼저 드려야 할 것 같다.
고영희 씨 성함이 옹이인가? 내가 본 고영희 씨 모습은 늘 아래 사진처럼, "응? 왔다고?,, 알았으니 난 내 일과를 볼게.."라고 하듯 누워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가 저 집의 주인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나에게 인상적인 컷 중에 하나인 고영희 씨의 잠든 모습을 그리기로 했다. 다음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그림을 건네주고 오면 좋을 것 같다.
언제가 다시 찾아가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응? 뭐라고? 나를 그렸다고? 알았어,, 알았으니 난 이제 낮잠을 잘게. 그만 귀찮게 하라고~,,,,"라고.
굳이 덧붙여 말하면, 고영희 씨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
누군가 거추장스럽게 굴다가, 먹다 남은 생수와 커피를 옆에 두고 갈더라도 그는 그러려니 한다.
그래 나도 인생을 살다보면 반갑지않은 사람들을 만나겠지, 그럴때마다 하는 일이나 직장을 던져버릴 필요는 없는 거나. 나는 내가 하던 일을 계속해서 하자. 그리고 3시의 낮잠 타임도 갖고 말이지...
대부분 직장에서야 쪽잠 자는 것도 어려운 처지지만 모두에게 곧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