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독교인이고 지금의 내게는 필요치 않다고 단연코 말할 수 있지만, 어릴 때는 사주를 본 적이 있었다. 두 번 모두 친구 따라 갔던 길이었다. 한 번은 20대 중반, 지방에서 홍대역 LG 건물에 진로를 제대로 점치는 곳이 있다는 베프 3인 방 중 한 명을 따라서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 번은 30대 초반에 지방대 로스쿨에 들어간 친구가 재수를 생각하면서 그때 한참 유행하던 이대 근처 사주카페에 갈 때 동행했던 것이다. 두 번째 기회에 방문했던 곳에서는 친구가 재수를 하면 in 서울 로스쿨에 될 거라고 해줬고, 실제 그것이 이뤄지기도 했다.
나는 명리학을 일종의 데이터 처리에 가까운 인간에 대한 프로파일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일정한 특성과 배경을 지닌 개인들의 인생 데이터를 분류하고 특징지운 결과치를 미래의 예측 결과로 내놓는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의 의사결정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진로가 막막하던 그 시절, 누구나 한 번은 가볼 만한 사주 상담소가 사실은 성격 유형 진단소라는 것이다.
성장배경, 태어난 시기, 성별, 문/이과적 기질, 적극적, 소극적, 이러저러한 기질..... 이 모든 것에 대한 집합과 집결된 결과물이 주어진 예측된 미래는 어쩌면 매번 비슷한 예측 결과치를 내놓을 수 있다. 게다가 하소연도 들어주고 따끔한 조언도 해주니 사람들은 마음이 아프면 그곳을 찾나 보다.
* 프로파일링이란, 개인정보 등에 기반해 개인의 특성을 파악해, 분석 예측하는 평가 체계이다.
팔자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격대로 사는 것
오늘은 내 주변에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현재 고민을 들어보면서, 한 가지 얻게 된 것이 있다.
몇 가지 사례를 풀어본다.
전문의 A: 좋은 체력과 암기력이 좋은 두뇌를 갖고 있다. 피부과가 아니더라도 내 경험에 의하면 전반적인 상담을 잘하고, 환자들로부터도 친절히 잘 상담해준다는 이야기를 곧잘 듣는다고 한다.
그런데 A의 경우 경우, 일하고 있는 병원의 대표원장님(사업주는 늘 이렇지만)과의 관계에서 늘 갈등이 많다. 그래서 요새는 개원하고 싶은 맘이 든다. 피부과이지만, 소극적인 성향에 보험 처리되는 치료 이외 미용 쪽에는 아직 자신이 없다. 사실상 미용치료도 곧잘 하지만, 돈을 받고 다른 이의 몸에 손을 대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고 한다. 주변에 고민을 토로하니 선배는, "그럴수록 개원을 해야지!" 했다고 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40대는 제2의 인생을 위해 준비하고 도전하기에 적당한 경험과 경제적 안정감이 있는 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와줄 인맥도 30대보다 많다. A의 경우에는 아이 계획이 없고, 체력도 남들 못지않다.
그런데, A는 다른 친구가 "개원하다 망할 수도 있지!"라고 하는 말에 금세 맘이 움츠러들었단다.
그러다 다시 원장과의 갈등이 있는 어제를 겪고, 오늘 다시 개원을 생각해본다고 하지만, 역시 자신이 없단다.
직장인 B: 인지도가 없는 in 서울 대학을 나왔지만 유명 대학 대학원에 입학해 석사를 마쳤다. 인턴을 하다 업계 협의 기구에 취업을 했다. 사무직에는 도통 안 맞는 성격과 능력 때문에 본인도 주변인도 쉽지 않았다. 이제 만 5년이 돼 그나마 업무는 익숙해졌다지만, 여전히 회사는 힘들다. 형편없는 급여에 요새 보기 드문 위계질서가 그야말로 폭력적이란다. 아마 착해보이는 외형에 더 그런 듯 하다. 그래서 회사는 지옥이란다.
B가 하는 일의 수준이 일반 사무직 업무 치고 단순한 편인데도 그는 항상 쫓기고 있다. 적성에 안 맞는 것이다. 사업자들 사이를 조율하고, 센스 있게 업무를 재구성해 공유해주는 능력이 필요한 자리지만, B에게는 도통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구김살 없는 밝은 성격이 빛날만한 직종의 현장직이 어울리는 편이다. 특히 정서적 공감이 높은 B에게는 단순 서류작업이 참으로 재미가 없다.
늘 푸념으로 그만둘 생각을 하지만 올해도 곧 끝나간다. 입사 후 매일 같이 사직서를 품고 있지만, 낼 생각은 없어 보인다. 사실상 B에게 지금의 직장이 유일한 재정의 통로는 아니다. 지방에 작은 건물에서 세를 받고 있어서 사실 당장 다른 직장을 구하기까지 버틸 능력은 충분한 편이다.
그런데도 적은 월급이라도 안 받으면 불안해하는 성격 탓에 이직하거나 당장 사업을 준비하는 것은 생각뿐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그래서 자기에게 딱 걸맞은 자리를 놓치기도 했다. 놓친 자리를 생각할 때마다 속이 쓰리지만, "대부분 세상은 나 같은 사람들이 많으니 괜찮아" 하며 어느 날과 같이 사직서를 책상 안으로 접어 둔다.
변호사 C: 시니어 전문 변호사이다. 좋은 체격과 체력을 갖추고 있고 누가 봐도 기민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몇 년 전부터 원하는 업종에 지원했지만,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늘 C는 " 재밌게 일할 수 있는 분야"라는 점을 이직의 동기로 강조했다. 그럼에도 그동안 이직이 수월하지 않은 배경에는 그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내가 제일 최고다 하는 나와바리(なわばり)에서도 문전박대를 당할 수도 있는 시기가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다 올해는 정말 자세를 낮추고 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한참 잘 나가던 때의 페이는 아니지만, 지금 직장보다는 좋은 조건으로 오퍼를 받았다. 너무 좋을 일이다 생각돼 축하해주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나서 C는 맘이 불안으로 바뀌었다. 알고 보니 제안된 오퍼를 너무 덥썩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주변의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이 검증되지 않는 소식은 품어온 C의 바램을 송두리째 뒤흔들고야 말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둘러보고 맘에 들어 산 옷이 인터넷에서 20%나 저렴할 때, 나라도 구매한 것을 취소하고 싶어지겠다.
몇가지 예를 들었지만, 진로 결정은 실로 어렵다. 왜 우리는 그것을 원했을까, 그 동기가 무엇이었을까, 그 욕구의 동기를 상쇄할 만한 장벽은 무엇인가? 이 요소를 따져보지 않고서야 좋은 결정을 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앞에서 보는 예는 개인의 상황이긴 하지만, 나를 포함한 누구라도 상충되는 이익들 간의 관계에서 헤맬 수 있는 문제이다. 선택에는 반드시 빛과 그림자가 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에 따르는 명암은 각자의 몫이지만, 우리는 그 빛으로 살아갈 힘의 동기력과 많은 행운들을 얻기도 한다.
사람의 성향과 기질은 딱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 두면 특정한 상황이나 나이가 돼도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아니 특별한 노력 없이는 오히려 강화될지도 모른다. 한 번즘은 내 손에 있는 것을 놓아도 좋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도전을 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뭐든 단 한 번으로 완전히 다른 판으로 전환되지는 않았다. 오늘의 나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게 아니라 경험과 시름이 차곡차곡 모아진 시간의 열매였다.
얼마 전 조카와의 여행에서 아이가 잠자리를 잡는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유심히 보았다. 처음 조카는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잠자리를 보고도 망설였다. 한쪽 날개를 중지와 약지로 먼저 잡으면 나머지 쪽 날개를 움직일 거고, 그 순간은 매우 곤혹스럽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조카도 그것 때문에 베시식 웃더니 잠자리를 잡을 수 있는 두 번의 기회를 놓쳤다. 그런데 그렇게 그냥은 돌아가기는 아쉬웠던지 용기를 내어서 차분히 다시 잠자리의 한쪽과 나머지 한쪽의 날개를 안정감 있게 잡을 수가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다음 날까지 잠자리를 대여섯 마리 잡더니 아이는 자신감을 얻고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걸려있었다.
@ 엄마가 하지 말라는 짓은 여러가지가 있다.
대체로 첫째들은 엄마가 하지 말라는 것은 안하다 보니, 그 만큼 도전하는 삶과는 멀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들 한다.
그래도 엄마들은 나름대로 억울해 하실지도 모른다.
엄마 핑계대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철저하게 준비해서 한 걸음 나아가보면 어떨까? 물론 안해서 좋을 나쁜짓은 제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