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선택과 집중은 연습할 수 있다

노력이 부족한 건 없다. 그 일이 맞지 않을 뿐


선택과 집중, 나도 좀 해보자


대학생활! 답답한 중.고교 시절을 보낸만큼 잘 보내고 싶은 맘이 컸다. 당시 대학에 대한 로망이 큰 시기였기에(한참 전부터 대학생들의 생활이 시트콤으로 나왔고 20대의 문화가 충만한 시절의 마지막 세대이다), 법대에 진학했지만 시기를 나눠 두루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사실 노는 것에 무슨 효율이 있겠나 싶지만 효율적으로 놀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음악 밴드, 사회과학 연구회(학생회 활동 비슷한 거다), 어학연수를 핑계 삼아 떠난 해외 머물기, 등등.... 새벽 4시에 신문지 덮고 캠퍼스 벤치에서 후들후들 떨어보기도 했으니, 실로 노는 것에도 성의를 다해 아낌없이 20대 초반을 쏟았구나 싶다. 결국, 놀만큼 다 놀아본 3학년 2학기에 서야 생활의 코드가 바뀌게 된 것이다.


남은 시간 집중해서 미래 무엇이 될 수 있게 살아야겠다 싶었고, 나는 당시 경영학에서 자주 거론되던 선택과 집중* 이라는 나름의 모티베이션을 찾게 된 것이었다. 특히 후발 주자의 입장에서 어떤 분야에서 활동할 경우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짧은 시간 최선의 이익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선택을 말한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냉철하게 전제된다. 나의 약점과 강점을 마주하고, 제한된 시간과 능력 범위 내에서 목표 범위를 정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주변에 나에게 본이 될 대상도 없었고, 공부하는 법도 몰랐다. 그냥 일정 시간 도서관에서 앉아서 법대생 놀이를 했던 것 같다. 나는 성실히 아침 7시 반에 하는 법대 도서관 사석 정리 전에 도착해서 민법 책에 줄 그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이후에도 어떻게 선택하고 집중할지에 대해서 알 수가 없었지만, 직장생활 7, 8년차에는 제한된 시간동안 많은 과업을 해가면서 갈피를 찾게 됐다. 아무리 일이 쌓여도 넉넉한 점심시간을 갖을 수 있었고, 커피 한 잔 하자는 동료의 권유에 인색하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정시에 퇴근했다. 집에가서는 저녁이 있는 삶을 누려야 했다.



계획한 시간 내에서 목표에 필요한 일에만 집중하는 것, 그리고 나머지를 소중한 사람들과 누리는 것

최선이란, 이러한 연습이 체화된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적어도 일과 목표로 하는 것에서는 이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가족과 친구, 일상적인 사람들과의 교류에 보다 집중하는 편이다. 모든 영역을 버리고 목표에만 집중한다면 문제가 되지만, 나만의 영역에서 만큼은 목표에 집중하는 일은 나에게 절대 후회를 남기지 않게 됐다.



무엇을 선택할까, "노력이 부족했다고? 그렇지 않다. 그 길이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남들이 인정해주는 것, 좋다고 하는 것에 쉽게 끌린다. 나 역시 나에게 맞는 일이 무엇인지 보다는 내가 됐으면 하는 것을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멀쩡히 다녔던 직장을 정리했다. 마음속에 넘치는 열정이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쏟을 대상을 한참을 오해한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어려운 일이 내가 달성해야 할 일로 생각했나보다.

그러다보니 10개월의 시간 동안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당시 분량이 늘어난 상황에서 한 과목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의 내 전공분야였다. 당시에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솔직히 난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했다. 내가 법학 학습에 천재라면, 첫 도전이라도 짧은 시간에 보다 효율적으로 준비하지 않았을까?


시간이 지나서, 진로 고민을 하던 중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는데, 이때는 달랐다.

나는 정말 집중할 수 있었고, 서투르고 두려웠지만 첫발부터 작지만 확실한 보상이 되는 실체를 발견했다. 논문을 쓰고, 대학원에서 교류하고, 또 연구를 하시는 분들과의 대화나 만남이 다른 일보다 편하고 즐거웠다.

같은 노력을 투자했을 때 어떤 것보다 이 분야가 더 좋은 성과를 가져다주는 기분이었고, 회사에서 받지 못한 칭찬도 훨 더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나는 오랜 기간 법무팀 일을 해왔는데, 사람들이 돕거나 그들의 일이 풀리게 해주는 것이 참 보람됐고, 그런 점에서는 좋은 평가도 받았지만, 세세한 법조문을 찾고 사례에 적용시키거나, 항변하거나 하는 일은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법을 해석하는 것은 그나마 재밌었지만, 그마저라도 써 내려가는 순간을 더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연구자가 더 맞았나 보다. 같은 시간을 투자했을 때 더 집중되고, 더 잘하는 일이 바로 길이다.

몰입되고 잘한다는 기분 없이 계속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은 자신에게 정말 가혹한 일이다.

언제까지 "노력이 부족했다"라고 할 것인가. 그것도 스스로에게!! 이 문제를 해결을 못하면, 40대에 와서도 진로 걱정을 하게 된다. 자기 스스로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전문가로서 나보다 먼저 간 선배들의 나에 대한 평가를 객관적으로 고려해야, 집중할 대상을 찾게 된다.

애매한 가능성은 참으로 잔인하다. 사회적 약자나 해외 봉사 등 타인을 위한 삶을 선택한다고 해도, 정체성을 가져다 주지 않는 일이라면, 결코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이 있을 수 있다. 쏟은 시간과 기회비용에 원망과 실망이 더 클 수도 있는 것이다.


집중, 현재에 머무르는 것


집중하려면 현재에 머물러야 한다. 마음을 과거에 두고 후회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부터 시작하면 되니까.

그렇다고 너무 미래에 생각이 가 있어서도 안된다. 단지,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내가 원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자체로 성공하겠다고, 버티겠다고, 그런 마음까지는 들지 않는다.

하루하루 내가 잘하는 것을 그날 분량을 하는 것일 뿐, 그것들이 모아지면 성공이 될 수도 있을 뿐,

나는 성공을 위해서 사는 존재가 아니다. 그냥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


매일의 삶에서 독소를 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을 버릴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카페인, 니코틴, 디지털 기기 등..... 나의 산만함을 만들어내는 그것을 끊고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는 한참 전부터 커피를 하루 1잔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했지만, 줄여지지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커피를 먹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에는 아침 7시면 이디야와 스타벅스에 방앗간의 참새처럼 들렀다. 그런데, 아주 끊자고 생각하니, 50일까지도 참아졌다. 그 이후 간혹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1주일에 한번 디카페인으로 마시는 정도로 되었다. 대신 20년 간 집에 텔레비전이 없다. 무엇보다 짧은 휴식시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핸드폰을 많이 사용하기에 이 부분의 독소를 빼야할 상황이지만, 한 참 회사일(사람을 포함)에 중독됐을 땐, 모든 연락에, 일들에 즉각 반응해야하는 조급증이 있었다. 휴가가서도 그러고 있을 때가 많았는데, 박사과정 이후엔 그런 습관을 없애고 싶었다. 학업과 병행하다 보니 회사 메신저에 알람이 오면 가슴이 긴장됐는데, 지금은 그 것에 매여있지 않게 됐다. 그들이 나를 평가하는 감정까지 내가 통제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부터이다. 또한 내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즉시했기 때문이다.


좋은 공기와 물을 마시자. 성경에는 "술 취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술의 유해함 보다는 술을 마심으로써 해이해지는 정신을 금하는 말씀으로 이해되고 있다. 성경적으로는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인데, 마찬가지로 집중의 시간은 "맑은 정신으로 충만해야" 유리했다.


나는 저녁 10시 넘어서는 가급적 일하지 않는다. 그 일이 중요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의 경우는 아침형 인간이라 이러한 방법을 선택하지만, 올빼미형은 나름의 휴식시간이 있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사는 것의 유리함


건강에 빨간불 들어온 것이 아니라면 누구나 적극적으로 사는 것이 스스로에 유리하다. 그렇다면, 무엇에 적극적이어야 할까? 바로 목표한 일에 '신경(생각과 마음)'을 쓰고 하고' 몸'을 쓰고 '일'하면 된다. 나머지 시간은 쉬는 것(좋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식사하고, 시간을 보내는 일 등)에 할애하면 행복해진다.


나의 신체적 능력과, 재정적 능력, 시간적 여유를 통제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신체적 능력은 내가 가장 활기찬 상황에서 우선순위를 둔 일을 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신체활동, 운동이 필요하다. 운동은 믿음 생활과 비슷한 것 같다. 안하다보면 한 번 하기조차 어렵지만,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 안 하는 것이 불편함이 있으니까. 빨리 걷기나 달리기를는 세로토닌을 분비시켜 활력을 준다.

재정적인 것도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 정도는 이 일을 하는 데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했을 때, 필요한 환경적 조건은 사람마다 다르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마련은 준비될 수록 좋은 것 같다. 걱정과 염려로 산만해지기 쉬운 것들로부터 보호해주니까. 우리는 연약한 존재니까.


멋진 가을


시간적 여유, 이것이야말로 가장 공평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핑계 대는 영역이다. 생각해보면 대통령이든, 배관공이든(우리나라의 특정 직업을 말하기가 애매한 터라;; ), 부모님이 누구 건, 모두에게 같은 시간이 주어진다. 흔히들 생선의 몸뚱아리와 같은 좋은 시간을 목표와는 동떨어진 것에 할애하고 있다.

그래서, 정말이지 변명할 구석이 없는 요소라고 하겠다. 누군가의 핑계를 댈 수도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허용한 영역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쓰는 시간이 내가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삶의 영역이다.


물론 경제적 자유가 있다면 시간적 여유는 더 많아 질 수 있다. 하지만 목표한 것에 이르려면,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확실한 변화를 얻고 싶을 때는 만에 하나라도 지금 매여 있는 일을 버릴 각오가 필요하다.

타인의 저녁식사 자리이다. 이 가족은 일요일 저녁식사를 하러 나온 모양이다. 따뜻한 조명이 이국적인 식당의 느낌에 더해진다. (가족 간의 식사인 만큼)각자의 음식에 열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여서, 실례를 무릎쓰고 멀찍이 사진으로 남겨뒀다.

내 방에도 여인초가 있는데, 그림 안에 있는 나무는 그 비슷한 극락초 대마왕 정도 되는 식물인 것 같다.

keyword
이전 09화8자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격대로 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