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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룰 것도 없지만, 서두르지도 말아라

나의 오늘을 지켜야지!

서두르는 것은, 미루는 일 못지않게 나의 현재를 부정하는 일


흔히들 한국사회는 경쟁사회라고 한다. 어느 사회가 안 그렇겠냐만은 좁은 땅에서 한정된 자원과 시스템에서 어느 정도 괜찮은 삶의 수준을 유지하려면 금수저가 아닌 이상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정해놓은 나이에 학교에 입학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해 가급적 대학문을 밟아야 어른이 돼서 선택 범위가 그나마라도 있다. 나는 이것에 대해서 히 부정하고 싶지 않다. 특권층이 돼 카르텔을 형성하는 것은 질색하지만, 자신이 더 배우거나 노력함에 따라서 선택권이 넓어지는 것은 신이 허락한 땅이 법칙이기도 하니까.


문제는 대다수 선호하는 교육과정을 우르르 수행하다 보니, 20대 이후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 알게 모르게 있다는 것이다. 남들이 하는 거 보니 좋아 보이고, '할만해 보이네.... 나도 따라 해 볼까' 해서 덜컥했다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치는 난처한 시간을 맞게 된다. 쩌다 운이 좋아 그럴싸한 옷을 얻게 돼도 어딘가 불편한 채로 어정쩡하니 살아가든지 아니면 몸에 맞는 옷을 시 구해야하는 상황이 생긴다. 인생이 옷처럼 쉽게 사고 말 수 있으면야 좋겠지만, 시간과 비용을 다시 투자해야 하니 보통일이 아니다.


조급증이 들 때라도 내 감정이 뭔지 모를 때가 있기도 하고, 타이밍이 아니어서 조금 더 버틸 힘이 있거나(나는 이 경우를 인내라고 생각한다) 장 뭔가 더 하지 않아도 될 때가 있다.


경솔히 서둘러 그만두거나 시작하게 되는 일은, 미루는 일보다 못한 일이 되어 버린다.


영성 지도자이면서 작가인 앨런 와츠(Alan Watts)는 이런 말을 했다. "서두르는 것도 미루는 것도 모두 현재를 거부하려는 시도"라고.


뭔가 만족되지 못하거나 지금 상황과 거리를 두고 싶을 때를 '산만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쩌다 보니 적재돼 있는 인생의 산만한 짐들, 호의나 여유로 하나하나 받던 일들이 너저분하게 있을 때, 더욱 결정하기가 어려워지고,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들에 합리화하는 장식을 위해 하나둘씩 모아둔 가상의 물건들이 쌓이다 보면, 무엇을 회피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쉽게 알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음은 곧 불안과 충족되지 못한 마음이 돼 스트레스가 되어 갈 수 있던 것 같다.


결정하기 어려우면 안 하면 된다. 나가서 숨 한번 쉬고, 걸어보자


여러모로 조언을 듣고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내 맘을 알아주는 것 같기도 해도 여전히 감정적으로 힘들 때가 있고, 반대로 이성적으로 납득이 안돼서 결정을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땐 흘러가는 상황이 주어질 때까지 기다려 보기도 한다. 두 번째 직장생활에서 변화가 필요한 할 때가 그랬다. 그러다보니 10년을 넘게 다니게 됐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할 때는 무려 엄청난 시간을 기도하고 결정하고 확신이 설 때까지 기다렸다.

그래서 보다 어울리는 정체성을 찾게 됐다.


산만함이 느껴질 때는 무엇인가 새롭게 결정하고, 머리 싸매기보다는 그냥 밖으로 나가보자, 걷게 되면 자연이 주는 넓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에너지가 있다.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된다. 편안한 차림에 운동화로 갈아신고 일단 현관 문을 열고 나가보자.

걷는 것은 산만해진 마음을 정리해주기도 하지만, 집중하는 마음을 키워준다. 그래서 지친 마음이 무기력해지기까지도 막아줄 것이다.



무엇으로 쉼이 될까, 쉼은 게으른 것이 아니다.

완전히 충전된 충전지가 효율적이듯 적당히 한컨 채운 배터리는 곧 소진되고야 만다.

누군가는 반나절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한참 과부하를 느낄 때에는 석 달, 아니 일 년이 필요할 때도 있다.

안식기는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내게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가득 채울 여력은 타인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드는 것이었다.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할 수도, 어떤 삶의 방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지 않은가, 굳이 남들이 뭐라고 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스스로의 감정을 가장 잘 알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타인의 백 마디 격려보다 사실은 더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 그림 5호, 2년 전 제주도 집 앞에 폈던 여름의 해바라기

사진으로 찍어둔 것을 꺼내어 이제와 붓으로 찍어내보니 그 안에 다채로움과 오묘한 질서가 있었다. 나의 감정도 들여다보면 이렇게 많은 색들이 있을텐데, 늘 "그래서 뭘 해야 하지?"로 반응했던 것 같아 내 마음에 미안해진다.

그림으로 쉬어갈 때 좋은 방법은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을 것 같은 대상을 꼭 사진으로 찍어두는 것이다. 그림으로 재현할 때 내 마음에 비친 대상을 꺼내볼 수 있게 되더라.


아래는 올 여름 수해로 잠겼던 자라섬이 회복된, 단풍이 들 무렵 가평의 가을의 해바라기이다. 끔은 꽃이지만 나무 같이 강인한 녀석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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