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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비친 풍경 그리기

무엇도 더 보탤 필요가 없다

내게 온 시는 이렇다

김선우

거꾸로 가는 생은 즐거워라

나이 서른에 나는 이미 너무 늙었고 혹은 그렇게 느끼고

나이 마흔의 누이는 가을 낙엽 바스락대는 소리만 들어도

갈래머리 여고생처럼 후르륵 가슴을 쓸어내리고

예순 넘은 엄마는 병들어 누웠어도

꽃구경 가자 꽃구경 가자 일곱살바기 아기처럼 졸라대고

여든에 죽은 할머니는 기저귀 차고

아들 등에 업혀 침 흘리며 잠 들곤 했네 말 배우는 아기처럼

배냇니도 없이 옹알이를 하였네


거꾸로 가는 생은 즐거워라

머리를 거꾸로 처박으며 아이들은 자꾸 태어나고

골목길 걷다 우연히 넘본 키작은 담장 안에선

머리가 하얀 부부가 소꿉을 놀 듯

이렇게 고운 동백을 마당에 심었으니 저 영감 평생 여색이 분분하지

구기자 덩굴 만지작 거리며 영감님 흠흠, 웃기만 하고


애증이랄지 하는 것도 다 걷혀

마치 이즈음이면 그러기로 했다는 듯

붉은 동백 기진하여 땅으로 곤두박질 할 때

그들도 즐거이 그러하리라는 듯


즐거워라 거꾸로 가는 생은

예기치 않게 거꾸로 흐르는 스위치백 철로,

객차와 객차 사이에서 느닷없이 눈물이 터져 나오는

강릉 가는 기차가 미끄러지며 고갯마루를 한순간 밀어 올리네

세상의 아름다운 빛들은 거꾸로 떨어지네


아마 이 시의 시인은 연배가 좀 있으신 것 같다. 저기 나온 나이에 +20은 해야 요새 사람들의 정서에 맞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시를 6년 전에 내마음 보고서로부터 받았는데 나는 이제서야 나의 진솔한 감정 그대로를 여과 없이 바라볼 만한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그 어떤 성취나 목표가 아니라 그냥 내 감정 그대로를 말이다.


그림 3호의 배경, 두물머리 남한강 자락에 비친 하늘

그날 책한 권 들고 찾아간 두물머리 근처의 남한강은 이랬다. 건너편에는 가로숲길이 있어 보였고, 그 길에서마저도 차들은 달리고 있는 듯 보였지만, 드넓은 하늘에 구름의 자태가 강에 비쳤다. 구름의 그림자도 강은 품고 있었다.


그림 3호 내 맘에 비친 풍경

그림은 며칠이 지나서야 그렸다. 일과를 마치고 5시쯤 붓을 들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눈에 보았던 풍경과 내 마음에 비친 풍경이 달랐다는 것이다. 내 마음에서 건너편 마을의 지붕들은 더 알록달록 했고, 연꽃들은 더욱 살아있으며 강물에 비친 하늘과 구름은 일렁이며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사람의 눈과 마음의 렌즈는 다 달라서, 그래서 사물을 보고 느끼는 바가 다 다르겠구나 싶었다.


색칠하는 데에도 순서는 없었다. 하지만 저녁식사를 미루고서라도 강물을 꽉 채워서 다 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3시간 반 동안의 막 그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림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동이 내게 전달돼 왔다.

겨우 열개가 되는 물감과 붓 하나는 이렇게 내게 좋은 쉼이 되었다.


만족스러웠다. 이 휴식에 취함이.

더 이상 보탤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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