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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엘린 Sep 26. 2024

피츠제럴드

-싸이 감성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지금 그 눈물은 자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는 입이며 눈이며 움직이고 있는 손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멀리 사라졌으며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이다. 문들은 굳게 닫혀 있었고, 해가 졌으며, 모든 시간을 견뎌내는 강철의 잿빛 아름다움 말고는 이제 아름다움은 없었다. 심지어 그가 참을 수 있었던 슬픔조차 그의 겨울 꿈이 활짝 날개를 펼치던 환상의 나라, 청춘의 나라, 풍요로운 삶의 나라 뒤쪽으로 멀리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오래전에." 그는 말했다. "오래전에 나에게는 무엇인가가 있었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없어. 이제 그건 사라져 버렸어. 없어져 버렸단 말이지. 그런데도 나는 울 수가 없구나. 그것에 대해 마음 쓸 수도 없어. 이제 그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테지."  -겨울 꿈

 


바로 그때 멀리서 우렁찬 목소리가 나지막하고 맑은 종소리처럼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유리그릇의 한가운데에서 흘러나와 커다란 벽을 타고 땅으로 내려온 뒤 그녀를 향해 세차게 돌진했다. "너도 알다시피, 난 운명이야. 네 보잘것없는 계획보다 힘이 센 운명이란 말이라고. 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고, 난 네 부질없는 꿈과는 달라. 난 화살처럼 날아가는 시간이며, 아름다움과 충족되지 않는 욕망의 종착역이지. 결정적인 시간을 만들어내는 온갖 우연이며, 감지할 수 없는 것들이며, 그 작은 순간들이 모두 내 것이야. 난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는 예외이며, 네 힘이 미치지 못하는 한계이며, 인생이라는 요리의 양념이란 말이야."  -컷글라스 그릇



저녁식사를 마친 뒤 그와 존퀼은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고 끝을 맺은 그 방에 단둘이서 남게 되었다. 그에게 그날의 기억은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졌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는 바로 이 소파에 앉아 이제는 다시 느끼지 못할 것 같은 고뇌와 슬픔을 느꼈다. 다시는 그렇게 무기력하거나 그렇게 지치고 비참하고 가난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십오 개월 전의 자신에게는 신뢰라든가 따뜻함 같은 것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영원히 사라져 버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분별 있는 일-그들은 분별 있게 행동을 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젊음을 능력과 바꾸었고, 절망으로 성공을 빚어냈다. 그러나 삶은 젊음과 함께 그의 사랑의 신선함까지 앗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 갈 테면 가라, 그는 생각했다. 4월은 흘러갔다. 이제 4월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건만 똑같은 사랑은 두 번 다시없을 것이다.  -분별 있는 일




피츠제럴드의 글들은 마냥 낭만적이지는 않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피츠제럴드의 글들은 역시나 낭만적이다. 잿빛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한 대로 그의 낭만은 잿빛 낭만이다. 오색찬란이 눈부시지만 닿지 않는 세계라면, 잿빛이야말로 씁쓸하지만 겹겹의 낭만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현실의 낭만이 아닐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과 함께 화살처럼 시간을 날아가는 삶.

순간은 순간에만 절대적일 뿐. 순간은 무수한 순간들의 하나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어리석고 뒤늦게 아차 하는 인물들과 세월과 함께 변해가는 인물들, 냉담한 주변인들과 무관심한 타인들 모두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후회나 미련, 상실과 좌절 혹은 상처까지도 흘려보내며 우리 모두는 잿빛 낭만 속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순간에 호들갑 떨 일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순간만이 절대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따라서 그저 선택에 신중을, 순간에 최선을, 생각에 긍정을 더할 따름이다.     






Sunny

아티스트 : Boney M

앨범 타이틀: The Collection     










여행의 마지막 날인 어제, 체크아웃을 하려고 짐을 싸는데 언제 시간이 이렇게 다 가버린 걸까 놀랍고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매번 여행의 말미에 느끼는 감정이다. 이제 제발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질리도록 다녀보고 싶지만 그럴만한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 아쉽지만. 

뭐 아쉬운 만큼 돈과 시간을 쪼개어 알뜰살뜰 다녀오는 여행도 아직은 재미있다. 



군산은 몇 년 전 겨울 당일치기로 다녀왔었다. 그땐 추운 날씨여서 그랬는지 거리는 한산했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먼 길을 왔으니 추워 죽겠지만 구경은 해야 해.라는 정신력으로 동동거리며 돌아다녔기 때문에 뭘 봤었는지 기억도 거의 나질 않는다. 초원사진관 앞에서 몇몇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길래 나도 오들오들 떨면서 급하게 몇 장 찍었던 거랑 이성당에서 팥빵과 야채빵을 샀고... 해 질 녘에 물횟집이었나 밥집을 찾아갔는데 문을 닫았었나 영업시간이 끝났었나(이 쓸모없는 기억력아...) 해서 웬 부둣가 앞에 차를 대고 어둠 속에서 빵을 뜯어먹었던 기억 정도? 

그때 초원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멋 낸다고 날씨보다 얇은 코트를 입고 억지로 활짝 웃고 있는 내 모습 옆에 나르시시스트인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기애충만한 표정으로 과감히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한 여자분이 씬스틸러로 활약하고 있다. '초원사진관 앞의 나'를 찍어줘야 하는데 남편은 '내가 서있는 초원사진관'을 찍어주셔서 초원사진관이 주인공인 사진. 그 순간에 필요했던 감성과 무드는 1도 담지 않는다. 어디 신문기사에 첨부하면 좋을 만큼 초원사진관에 대해 어떠한 과장이나 미화, 왜곡이나 은폐 없이 투명하고 객관적인 정보만을 남긴 사진이었다.

 


이번에 다시 찾은 군산은 맑고 따뜻했고 붐비거나 한산하지 않아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군데군데 근대건축물들이 자리해 이색적인 느낌도 있고 호박빛으로 노을 지는 선유도의 풍경과 밤에 한가로이 은파호수공원을 산책한 것도 좋았고 옆동네(?) 익산과 부안도 알차게 다녀왔다. 군산에서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간 맛집들의 음식들은 조금 아쉬웠지만 특색 있고 마.. 맛있었다. 

여행 중에 싸이감성 연재일이 끼어있는 것은 조금 걱정이었지만 기억력과 지구력이 없는 대신에 주어진 휴대폰 알람기능과 순발력으로 무사히 발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름아름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여행 내내 날씨가 화창했는데 돌아가려니 어째 날씨가 끄물끄물했다. 여행할 때 날씨는 평소보다 더 큰 영향을 준다.


체크아웃을 하고 아점을 먹으러 가기 전에 남편에게 초원사진관에 들러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찍사가 지난번과 같은 사람이라 못 미더웠지만 그래도 다시 찍어보고 싶은 마음이었고 결과적으로는 지난번에 비하면 나름 괜찮은 결과물이 나왔다. 그리고 60대쯤 돼 보이는 어느 중년부부가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여 찍어드리고 덩달아 우리 부부의 사진도 찍어달라고 부탁해서 한 장 건졌다. 60대 중년부부와 40대 중년부부가 점령한 초원사진관.


이성당에서 선물용 생과자와 전병, 눈 돌아간 남편이 골라잡은 몇 개의 빵들과 한약을 먹느라 밀가루를 못 먹는 나님을 위한 구운모찌를 사고, 아점으로 칼국수와 돌솥비빔밥을 먹고 나오니 빗방울이 떨어졌다. 







집에 돌아오기 싫었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익숙한 집의 냄새를 맡자 예상치 못하게 반가움이 밀려오며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출발하던 날 환기를 하자고 창들을 열어두고 갔던지라 저녁의 선선한 공기가 온 집을 채운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운 건 반가운 거고 일단 나와 남편은 몹시 피곤한 상태라 캐리어를 현관에 방치해 두고 뜨거운 물로 샤워부터 하려고 각자 안방과 거실 화장실로 흩어졌다. 완벽에 가깝게 깨끗하게 유지되는 호텔의 화장실과는 달리 여기저기 물얼룩이 있고 몇 군데는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고 거무스름하게 곰팡이자국이 남아있는 우리 집 화장실. 

물을 틀자 샤워기에서 익숙한 세기와 질감의 물줄기들이 쏟아져 나왔고, 나는 정체된 길을 기어 오느라 쌓인 피로를 씻어냈다. 열어둔 창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내 몸 구석구석에 남아있던 여행지의 흔적들은 물줄기를 타고 모두 씻겨 내려갔다. 







거실 소파에 앉을 기력도 없어 안방 침대에 누워 '나는 솔로'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여행에서 돌아온 집은 유독 편안하고 아늑하고 안전한 느낌을 준다. 공간의 모든 것들은 수십 수백 수천번 내 손을 탄 익숙한 것들이다. 

이 친근한 것들이 지겨워져서 나는 가끔 새롭고 색다른 것들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아쉬움을 안고 억지로 집에 돌아오면 신기하게도 친근한 것들에 생명력이 입혀진 듯 나의 집은 지겨워졌던 그 집이 맞음에도 다시 새롭고 색다른 느낌을 뿜어낸다. 








여러분의 마음을 울린 작품, 혹은 구절은 무엇인가요?

or

여러분의 마음을 훔친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 상단의 글은 오래전에 싸이월드에 올렸던 글이다. 노래 제목은 글을 쓸 때 들었던 곡이니 싸이 감성을 증폭시키고 싶다면 틀어놓고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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