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감성
삶은 얼마나 빠른지_
이제 저녁에서 밤이 되었을 때
학원에 가기 위해 멍 때리며 걷다 보니
백화점 앞 대로의 횡단보도 앞이었다.
포근한 공기와 어둠 속 알록달록한 풍경을 걷는 사람들이
유난히 즐겁고 정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시간은 정말이지 무진장 무진장 성실하게 흘러간다고.
나 여고생 때 이곳에 서 있었다.
지금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다고 생각하며 이곳에 서 있지만
곧 다시 이곳에 서서 또 놀랄 것이다.
갑자기 서글프도록 소중해졌다 내 삶.
저 글은 2010년에 싸이 다이어리에 썼던 글이다. 시간이 순삭 되어버린 것에 놀라며 언젠가 이 순간을 기억하며 또 한 번 놀랄 것이라고 예상했었지만 십수 년이 훌쩍 지나서 저 글을 보니 의외로 별로 놀랍지 않다.
한때는 나도 한해한해가 점점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아쉬워했지만, 이젠 가속도가 너무 붙어 세월의 물살에 몸을 맡긴 채 에라 모르겠다~ 그냥 둥둥 떠가고 있다. 주름 하나 생겼다고 놀라고 통통하던 눈두덩이가 왜 움푹 들어갔냐고 또 한 번 놀라던 때가 있었지만,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미간과 눈가와 입가에 크고 작은 주름들이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며 자글자글하다. 과정을 관찰할 겨를도 없이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니. 원래 거기에 늘 있었던 것처럼.
/
처음 극장에 간 날을 기억하는지? 나는 어릴 때 부천에 사는 이모네 놀러 갔다가 사촌들과 함께 처음 극장에 갔었다. 마카리안 고.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1987년도 영화이고 소개된 대략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외계인 카리마 일행은 독도 바다 밑의 해저 도시에 있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돌을 이용, 지구를 정복하려 한다. 천재소년 똘이는, 신비의 돌이 가진 세 가지 수수께끼의 열쇠를 우주평화를 지키려는 외계인 아리안 일행으로부터 제공받아 지구를 수호하려 한다. 그러나 용의 주도한 카리마의 덫에 걸려 모두 사로 잡히게 된다. 그들을 위기로부터 구할 수 있는 돌의 세 번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김박사에게 은밀히 보냈던 로봇마저 카리마에 의해 파괴당하자, 똘이 일행은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는다. 그러나 돌의 세 번째 비밀은 바로 악의 징계로서, 마침내 돌의 무서운 파괴력에 의해 카리마 일행은 섬멸된다.
지금 보면 엄청 유치하겠지만 그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컬. 처. 쇼. 크... 대형 화면으로 보는 숨 막히는 모험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도 (미친 듯이) 재밌었고 (미친 듯이) 신기했다. 몰입도 100의 상태로 나는 두근두근 주먹을 꼭 쥔 채 똘이 일행의 일원이 되어버렸다. 지구를 지켜야 해!!!... 꿈과 희망을 그리는 어린이 영화는 해피엔딩이 국룰이니까 외계인 놈들은 파멸하고 똘이 일행은 지구를 지켜냈다. 굿잡!
순식간에 영화가 끝나고 화면이 꺼졌을 때 어찌나 아쉽던지...
놀라울 정도로 영화 기술이 발전해서 지금도 때때로 영화를 보며 감탄을 하고 감동도 받지만 '처음' 느꼈던 그런 신선한 충격은 더 이상 없다.
<싸이감성>은 10화로 기획한 나의 첫 작품이다.(작품이란 표현이 조금 어색하지만.)
스스로 끈기가 부족한 것을 알아서 연재 형식으로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쉽지는 않았다. 처음 한두 주는 초심을 유지하며 연재글에 상당한 관심을 갖었지만 연휴나 여행 등 이런저런 일정들이 생기고 익숙해지면서 조금 해이해지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뭐 그래도 내 깜냥 안에서는 열심히 쓰고 읽는 시간들이었다.
5주의 시간이 순삭 되고 나니 아쉬운 마음이 들어 9화 연재글을 쓸 시점에는 연재를 좀 늘려볼까? 생각도 했었다. 아직 싸이시절의 글들은 꽤 남아 있기도 하고 연재를 끝낸 다음의 계획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 며칠 개인적으로 중차대한 이슈가 있어 결정을 못했다. 연재 계획을 10화로 올렸으면 10화 글로 자동 마감? 이 되는 건지 아니면 이후에 다시 이어갈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전자의 경우로 가정하고 일단 마무리글을 써야 할 것 같았다.
<싸이감성>은 '처음'이어서 나에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여러분에게 특별했던 '처음'은 무엇인가요?
※ 상단의 글은 오래전에 싸이월드에 올렸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