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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엘린 Sep 19. 2024

여행준비

-싸이 감성




나는 지금 여행준비를 한다.

마음을 챙겨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니까 

그 여행의 이름은

"8월의 크리스마스"라고 해야겠다.     


지친 내 마음을 데리고 바다로 가 풀어놓고 낮잠이나 자야지...

그 넓고 깊고 푸른 파도의 손을 잡는 순간 내 마음은 부서질 것이다.

부서진 마음은 파도거품과 함께 바다에 녹아들 것이고

긴 긴 기지개 끝에 나는,

차갑고 짙게 출렁이는 바다를 가슴에 담아 돌아올 생각이다.

메말라 갈라지고 부서졌던 내 마음은 

새롭게, 새롭게 큰 파도로 일 것이다.





Blooming

아티스트 : T-MAX

앨범타이틀: Blooming     












 


... 라떼는 뭐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도 있었지만 지금의 날씨 정서로는 시적 허용으로라도 8월과 크리스마스는 붙여 써서는 아니 될 말씀이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뉘앙스로 묶은 (주관적인) 회상이긴 하지만 예전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확실히 있었던 것 같다. 간절기 옷을 입어볼 새도 없이 여름과 겨울이 들이닥치는 지금과는 달리 꽃샘추위까지 지나고 나면 화사한 카디건을 입고 완벽히 적당한 기온을 즐길 수 있는, 형광빛이 감도는 연초록의 봄이 있었다. 아침이면 창밖으로 조금씩 잎을 키워내던 나무를 하루하루 관찰하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던 그런 계절이 있었다.


명도 높은 봄이 지나고 여름방학 즈음부터는 길고 긴 장마가 시작됐다. 단독주택에 살던 어린 시절에는 장마철이 되면 밖에 나가 놀지 못해 답답했다. 불을 켜도 어둑한 실내에서 동생과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방바닥을 김밥 말듯 굴러다니며 시간을 때웠는데, 때로는 마당으로 이어지는 미닫이문을 열고 마루에 모로 누워 굵은 빗방울들이 콘크리트 바닥에 타다닥 내리 꽂히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빗방울이 땅에 떨어지면 자잘한 물방울들이 덩달아 튀어 올랐는데 끝없이 떨어지고 튀어 오르는 투명하고 반짝이는 물방울들을 바라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아마도 쭈쭈바를 먹고 싶다거나 친구랑 공터에서 놀고 싶다거나 오늘은 엄마한테 혼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자목련과 장미나무가 있던 작은 화단은 온몸으로 비를 맞는 게 마냥 즐거워 보였다.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찾아왔는데 이때 모기도 함께 왔다.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대가족을 이끌고 나타난 불청객들. 나는 모기가 반갑지 않았으나 모기는 나를 좋아했다. 너무너무 좋아했다. 얘네들은 여러 사람이 있어도 나만 물어댔고 나 혼자만 씻고 자도 나만 쫓아왔다. 

무는 부위도 다양했는데 팔과 다리정도는 신사(gentleman) 모기들이 무는 거였고 손가락, 발가락, 발바닥, 엉덩이 같이 가려움에 더 민감한 부위들을 무는 변태적 취향의 놈들도 있었다. 심지어는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잔인한 녀석들도 있었으니...


- 조폭 출신인지 내 눈탱이를 양쪽 다 밤탱이로 만들어 버린 놈

- 동의도 없이 내 입술에 대용량의 보톡스를 놔버려 나를 고은애로 만들었던 놈

- 깐데 또 까며 한 부위만 집중포화를 하며 고문한 자비 없는 놈 


나는 모기 때문에 너무 괴로워서 스스로 모기 가려움증 대처 민간요법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크리넥스 몇 장을 겹쳐서 뜨거운 밥을 한 숟가락 싸맨 후 모기 물린 곳을 지져주는 방법인데, 이렇게 하면 모기 물린 부위가 맑은 붉은색에서 거무죽죽하게 변하면서 가려움이 사라졌다. 이런 이상한 방법을 왜 민간요법이라고 멋대로 칭하냐 하면. 얼마 전에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의사가 말하길 일정 온도 이상으로 뜨겁게 달군 숟가락의 둥근 면으로 모기 물린 곳에 대고 있으면 가려움증이 사라진다고 했기 때문이다. 나의 지짐요법은 분명한 의학적(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출처: 영화 '록키'와 TV만화 '달려라 하니'



8월 초에서 중반 정도에 온 나라가 짧고 굵게 바캉스를 떠났다가 시꺼메진 피부와 여독을 안고 돌아오면 곧 가을이 왔다. 9월이 되면 한차례 비가 쏟아지곤 했는데 그 비가 그치고 나면 신기하게도 갑자기 녹빛이던 세상이 알록달록 단풍으로 물들며 선선해졌다.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하늘거리고 하늘이 껑충 높아지더니 추석 연휴에는 어느새 황금빛 풍경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도시 생활을 했는데 어째서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건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렇게 기억된다. 


겨울은 뭐 잘 기억이 안 난다.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에는 밖에 나다니는 것을 최소화했던 것 같다. 나에게는 전용 전기난로가 있었는데 오래됐지만 새 제품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늑한 빛과 묵직한 열기를 뿜어내는 난로였다. 진한 주홍빛 불빛이 예뻐서 불을 끄고 어둠 속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불멍 하듯 한참을 바라보곤 했다. 엄마 아빠는 벌컥 방문을 열고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난로 좀 끄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나는 손발이 너무 시려서 (어쩔 수 없이!) 몰래 다시 키곤 했다. 온 세상이 눈으로 덮인 새벽의 푸른 고요함과 크리스마스트리를 휘감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장식 조명. 비싼 장어를 사 먹이겠다는 남친과의 어느 데이트 날엔 혹한에도 패션을 포기 못해 짧은 무스탕 재킷과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추위 속에 줄을 서 있다가 발가락이 깨질 것 같다고 울어버렸다. 








이제 추석 연휴가 끝났다. 정신없이 갔다. 나야 출근을 하지 않으니 연휴가 끝났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지만 연휴 끝의 출근길을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은 왠지 짠했다. 빳빳한 셔츠깃과 대조되는 힘 빠진 어깨. 그래도 이번 주말로 잡아둔 짧은 여행 계획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여러분은 여행을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나요? 













※ 상단의 글은 오래전에 싸이월드에 올렸던 글이다. 노래 제목은 글을 쓸 때 들었던 곡이니 싸이 감성을 증폭시키고 싶다면 틀어놓고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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