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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Sep 23. 2022

자장가

“잘 자라 지니야 잘 자거라

사과 세 개를 선물로 줄 거야

첫 사과는 빨간색 두 번째는 초록색

잘 자라 지니야 잘 자거라

작은 눈을 꼭 감고 잘 자거라


잘 자라 지니야 잘 자거라

사과 세 개를 선물로 줄 거야

하나는 빨간색 둘째는 초록색

마지막 사과는 파란 하늘색

잘 자라 지니야 사랑하는 내 아기.”

지니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부드러운 이불이 목까지 덮인 덕분에 포근해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밤에 잠들기 전에 엄마가 늘 불러주는 자장가였다. 체코 전통 자장가인 ‘스피 야니츠쿠 스피’의 가사 중에서 ‘야니첵’이라는 부분만 ‘지니’로 바꾼 노래였다. 

엄마는 지니에게 밤에만 노래를 불러준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박자를 조금 빠르게 바꾸어 스피 야니츠쿠 스피를 불러주었다. 그럴 때에는 자장가가 꽤 신나는 노래로 변했기 때문에 지니는 엄마 목소리에 맞춰 춤을 추곤 했다.

지니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영원히 눈을 감은 채 엄마의 노래를 계속 듣고 싶었다. 나지막한 엄마의 목소리는 마음을 차분하고 따뜻하게 만들었다. 평소 같으면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스르르 잠이 들었을 텐데 이날은 그렇지 않았다.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잠이 사라지고 머릿속은 맑아졌다. 엄마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

“잘 자라 지니야 잘 자거라

사과 세 개를 선물로 줄…”

지니가 누운 침대가 흔들거렸다.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는 뚝 끊겨버렸다. 이어 큰 충격과 함께 굉음이 들렸다.

쿵! 우루루!

침대가 갑자기 아래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침대 주변에 있던 책상, 의자, 책도 같이 떨어졌다. 엄마는 슬픈 표정으로 손을 쭉 뻗은 채 추락하고 있었다. 엄마가 떨어지는 곳은 아주 어두운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검은 손이 나와 엄마의 발목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지니는 어둠 속에서 익숙한 시선을 느꼈다. 엄마를 낚아챈 검은 손의 주인이었다.

‘스비아토!’

엄마가 떨어지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니는 침대에서 일어나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런데 지니의 몸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허공에서 맴돌기만 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이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지니는 몸을 돌려 위쪽을 쳐다보았다. 그는 허공에 떠 있는 게 아니었다. 옷의 목 부분이 아주 커다란 옷걸이에 걸려 대롱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허공에 뜬 건 그가 아니라 옷걸이였다.

지니는 다시 아래쪽으로 몸을 돌렸다. 엄마는 활짝 펼친 손바닥만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그는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소리는 목 안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에 어둠은 엄마의 손바닥마저 삼켜버리고 말았다. 손바닥이 사라진 자리에는 시커먼 물 회오리만 휘휘 돌고 있었다.

지니는 다시 힘을 모아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엄마, 가지 마!”

지니는 엄마를 외치며 감았던 눈을 떴다. 밝은 햇살이 창문을 통해 그의 얼굴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누운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지니가 누운 곳은 호우스카 성 2층의 침대였다. 엄마가 어렸을 때 사용했다던 분홍색 2층 침대 1층이었다. 침대 옆에는 할머니 아네타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며 앉아 있었다.

“얘야! 이제 정신을 차렸구나.”

아네타는 눈물을 흘리며 지니의 뺨을 어루만졌다.

지니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하며 허리를 일으켰다.

“제가 왜 여기에 누워 있죠?”

아네타는 마른 수건으로 지니의 얼굴에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오늘 새벽에 예배당 지하 계단 입구에 몸을 걸친 채 쓰러져 있었어.”

지니는 아주 약한 현기증을 느꼈다. 양쪽 손은 물론이고 온몸이 쓰리고 아팠다. 그는 손을 살펴보았다. 퍼렇게 멍든 흔적이 보였다. 이번에는 배를 만져보았다.

“아얏!”

배에서 꽤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상의를 들춰보았다. 배에도 멍든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맞아, 자정을 넘어 중간세계에 갔었지. 거기서 골룬을 만나 죽을 뻔했어. 그런데 어떻게 살아있는 것이지?’

지니는 천천히 어젯밤 일을 생각해보았다. 골룬의 마지막 공격을 받고 허공으로 솟구친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 뒤의 일은 도무지 떠올릴 수 없었다. 

아네타는 지니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주었다. 그로서는 처음 맡아보는 독특한 향기가 나는 차였다.

“이건 고양이발톱 노란색 꽃을 말려서 달인 차야. 조금이라도 마시렴. 멍든 몸을 추스르고 통증을 없애는 데에는 이 차만큼 좋은 게 없어.”

지니는 할머니에게서 차를 넘겨받아 조금씩 마셨다. 약간 쓰기는 했지만 마시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제가 어떻게 지하 계단 입구까지 올라온 걸까요?”

“그건 나도 모른단다. 바셋이 하도 거칠게 울기에 잠에서 깼지.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를 넘었더구나. 2층에 가보니 네가 없기에 예배당으로 갔어. 그랬더니 바셋은 보이지 않고 너만 쓰러져 있었어.”

“바셋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글쎄. 너를 2층으로 옮기고 난 뒤에야 바셋 울음소리가 사라졌어. 그 뒤로는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아. 아마 성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야.”

지니는 골룬이 마지막으로 공격하던 순간에 바셋이 계단에서 내려올지 말지 망설이던 모습을 떠올렸다. 

“지금은 몇 시예요?”

아네타는 눈을 찡그리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잠시 후면 오후 2시가 되겠구나.”

지니는 속으로 계산을 해보았다. 

‘할머니가 새벽 2시에 발견했고 지금은 오후 2시이니 열두 시간을 잠든 셈이구나.’

아네타는 지니에게서 잔을 받아 밖으로 나가다 잠시 걸음을 멈췄다.

“아! 학교에는 내가 전화를 했단다. 네가 몸이 아파서 오늘은 결석해야 한다고.”

“네?”

할머니가 나가자마자 지니는 휴대폰을 켰다. 거기에는 날짜와 요일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5월 9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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