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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둘 Mar 29. 2023

덕혜옹주의 홍매화(紅梅花)

[수필]


 덕혜옹주를 지키고 섰던 홍매화는
옹주가 고국에 돌아가 숨을 거두고 난 지금까지도
그녀를 그리워하며 불변(不變)하리라는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몇 년 전, 대마도에 갈 일이 생겼다. 생애 처음으로 떠나는 외국 여행이었지만 부산에서 배를 타고 당도한 곳은 국내와 그리 다르지 않은 곳이었다. 

 자연풍광도 한반도와 그리 다를 바가 없었기에 외국의 느낌은 없었다. 

 관광객들을 위해 적어 놓은 한글 안내문들을 보니 왜국(倭國)도 아니고 외국(外國)도 아니었다. 

 제3의 한국 같은 느낌이랄까. 낯설고도 미묘하게 편안한 곳이었다. 


  6월의 호우주의보로 끝없이 쏟아지는 굵은 빗속에서 수국들이 온몸에 힘을 빼고 비바람에 몸을 맡겼다.

  숙소에서 하룻밤 자고 아침에 일찍 주변 산책을 나섰다.

  그러다 멀찌감치서 바라본 어느 비석(碑石).

  비 오는 잔디 위에 거무죽죽한 채 서 있던 그것.

  가까이 가려 하던 찰나, 숙소에서 아침 식사 시간을 알리는 바람에 돌아서고 말았다. 

 그것이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라는 것을 부산행 배 안에서 알게 되었다.


  그 멈춘 발걸음은 내 마음을 계속 눌렀다. 

 아쉬움과 죄스러움이 뒤섞여 심적 부담으로 남아 있었기에 언젠가는 그 비석을 찾아가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어느 설 명절, 대마도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가는 그 바다는 우리나라의 남해안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배를 타고 내린 여객터미널에서 봉축비가 있는 지역까지 버스로 3시간 30분가량 걸린다 했다. 

 버스에 앉아 그 시간을 견뎌내야 했으나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버스 창 너머로 보이는 대마도 땅은 척박해 보였다. 

 벼를 심을 만한 땅도 여의찮아 보였다. 

 밭 주변 여기저기 거친 돌들이 나뒹굴고 있으니 대마도 주민들 대부분이 관광업을 통해 살아간다는 말이 공감 갔다. 

 그런 풍경을 보며 유리창에 머리를 대고 따스한 햇볕 받으며 졸았다 깼다를 반복했다.


  다음날, 차가운 바닷바람 맞으며 걸었다. 

 동백꽃을 먼저 만났다. 

 동백은 실연의 아픔과 더불어 한(恨)과 서러움을 대변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래전에도 이곳을 지나쳐 왔건만 그곳에 동백이 꽃밭을 이루고 있을 줄 몰랐다. 

 비석 입구로 천천히 발걸음 옮겨갔다.

 떨리는 순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억울한 명(命)을 다한 조선의 숱한 생명이 떠올랐다. 

 덕혜옹주가 살았던 그 시절의 우리 민중들이, 나라를 빼앗겼던 조선의 붉은 비명들이 꽃송이가 되어 하늘을 뒤덮는 듯했다. 

 몇 발짝 더 올라가니 수선화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해맑고 투명한 미소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천상의 영(靈)들이 하나 가득 꽃 속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순결한 수선화를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돌담 벽 모퉁이 앞에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라고 적힌 검은 비석이 서 있다.

 1월의 바람 속에서 마른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 

 봉축비는 까마귀와 이제 막 피어난 홍매화와 더불어 살고 있었다. 

 봉축비 앞에는 한국 동전과 팔찌 같은, 어떤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 작은 물건들이 놓여있었고 때 묻고 구겨진 조화(造花)도 한 다발 초라하게 꽂혀 있었다.  

    

 홍매화, 찬 바람이 불수록 향이 더욱 짙어진다는 꽃. 

 가지 위에 눈이 와도 거뜬히 산다는 고귀한 생명. 

 덕혜옹주를 지키는 홍매화는 무장의 자세로 몸을 곧추세우고 있었다. 

 강인한 홍매화, 

 부끄러워하면서도 비열하지 않은 위엄 속에 순결함에 배어 있던 그 핏빛 비애(悲哀). 

 덕혜옹주를 지키고 섰던 홍매화는 옹주가 고국에 돌아가 숨을 거두고 난 지금까지도 그녀를 그리워하며 불변(不變)하리라는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이날의 감동은 그것이었다. 

 대마도의 홍매화가 호위무사(護衛武士)처럼 봉축비 옆에 가지를 꼿꼿이 세우면서도 가지는 봉축비를 향해 내려뜨리고 있다는 것.

  이 울분의 땅에서 끝끝내 죽지 않고 꽃을 피워내어 절개의 향기를 드리우고 있다는 것. 

 옹주의 한(恨)이 가지 끝에서 어느새 눈꽃이 되었다는 것. 

 거무죽죽한 봉축비가 비록 초라해 보였어도 사력을 다해 옹주의 이름으로 아직도 살아내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결코 고국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옹주의 서러움과 외로움을 달래주며 저녁노을처럼 점점 익어가고 있다는 것.


 이 제의(祭儀)의 길, 

 이 붉은 길은 어떤 왕궁의 정원보다 눈부시다.


 그녀를 찾아 들어오는 이 길에 이토록 순수한 수선화와 핏빛의 동백이 융단처럼 깔려 있음이니 나는 이 홍매화의 준엄한 눈길 속에 하염없이 머물러 있고자 했다.      


  귀국하면 곧바로 덕혜옹주가 마지막 삶을 살았던 창덕궁 일대의 홍매화를 보러 가야겠다 했더니 온 나라에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다음 해 봄, 창덕궁 후원 방문을 예약하려고 전화했더니 또다시 출입 통제되었단다. 

 다시 또 몇 년을 못 기다리겠는가,

 지금은 덕혜옹주가 노년에 귀국하여 살았다던 그곳의 겹 홍매화보다 대마도에서 피고 졌을 그 정절의 홍매화만을 가슴에 오래 품고 있으라는 하늘의 뜻인가.


  창덕궁 후원을 거닐며 덕혜옹주가 말년에 머물렀던 낙선재의 매화꽃길을 걸어 볼 날을, 

 낙선재에 봄이 오면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덕혜옹주의 홍매화 만날 날이 과연 올까.     







 지금은 덕혜옹주가 노년에 귀국하여 살았다던 그곳의 겹 홍매화보다
대마도에서 피고 졌을 그 정절의 홍매화만을 가슴에 오래 품고 있으라는 하늘의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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