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드디어 호미곶을 향해가는 날이었다.
지도를 보면서 지리를 눈으로 익혀놓았기에
해안도로를 달리는 것쯤 자신 있었다.
그토록 원하던 해안라이딩이다.
동네 자전거방에 갔다. 여행용 자전거를 찾으니 몇 개 권해준다. 여성이 타기 좋은 바구니 자전거도 좋았지만 높은 산까지 올라갈 수 있는 자전거에 눈이 더 갔기에 그 검은 자전거를 짚었다.
“이건…. 여성들이 타고 다니기 어려운 산악자전거인데…. 산에 까지 올라가시겠어요?”
그렇게 해서 검정 자전거와 만났다. 구입 할 당시에 자전거방 아저씨가 뭔가 석연찮은 느낌을 주었는데 훗날 알고 보니 그 자전거는 소위 ‘철TB’라 불리는 유사 MTB였고 내가 타기에는 너무 큰 사이즈였다.
자전거에 이름을 지어주었다. ‘까망이’. 너무 커서 버거웠지만 매일 닦아주고 주행 연습해 나갔다. 자전거를 탈 때마다 까망이를 불렀다. 까망이는 굳건하게 나를 붙들어 주었다. 높은 곳을 오를 때,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을 주체할 수 없거나 차오르는 땀 때문에 앞이 안 보일 때마다 그만 땅에 내리고 싶을 때마다 나는 까망이를 불렀다. 그럴 때마다 까망이가 내 마음에 힘을 보태주는 듯했다.
드디어 호미곶을 향해가는 날이었다. 지도를 보면서 지리를 눈으로 익혀놓았기에 해안도로를 달리는 것쯤 자신 있었다. 포항 터미널까지는 버스로 가고 포항 시내부터 자전거로 가는 것이니 어렵지 않다고 여겼다. 호미곶까지 찻길로 편도 35km쯤 되는 거리, 왕복 70km쯤은 거뜬했다. 그토록 원하던 해안라이딩이다.
포항제철을 지나 형산강 다리를 건너 대보 해수욕장까지는 그런 데로 잘 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일자로 쭉 뻗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해안도로가 높고 구불구불한 경사를 반복하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다리가 앞으로 나아가지를 않았다. 바람이 옆으로 불어와 좌우로 흔들리기까지 했다. 호미곶까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한달음에 달려가는 꿈을 꾸었던 나는 맥이 탁 풀려버렸다. 계속 반복되는 언덕길 위에 거센 바닷바람이 무엇이라도 덮치고 밀고 넘어뜨리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중간에 휘말려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자전거에서 내려 까망이를 질질 끌며 어느 팔각정으로 들어갔다. 미리 와 쉬고 있던 라이더 몇 명이 멀리서 나를 봤다며 해안라이딩은 처음이냐 물어본다. 우물쭈물하니까, 자신들도 처음에 그랬다며 기어를 조금 더 미세하게 다루는 게 좋다며 자전거를 점검해준다. 까망이를 보더니 몸에 맞지도 않는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오다니 대단하다며 기어를 어떻게 조정했냐 물어본다. 기어 조정할 줄 모른다고 하니 다들 당황한다.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고, 내가 뭔가 잘못한 일이 있나 싶어 주눅이 들려고 할 즈음 그들이 놀라는 이유를 알았다. 내 자전거는 총 24단짜리인데 그동안 기어를 전혀 움직이지 않고 운행했다.
“왼쪽 기어 2단, 오른쪽 기어 5단으로 고정해서 다니다니? 하며 도대체 이렇게 해서 어딜 가 봤어요?”
하고 묻는다. 다녀온 곳을 대니 남성들이 감탄을 연발하면서 내게‘JS 시군요!’라며 손뼉 쳐준다.
JS? 그게 뭐지요 하니 ‘짐승’의 약자라고 한다. 어감이 좋지 않아 불쾌해지려는 순간, 곁에 계시던 분이 말씀하신다. 기어를 쓰지 않고 어떤 곳으로 갈 수 있는 능력자를 라이더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즉, ‘JS’는 라이더 세계에서 최고의 실력자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제 ‘무정차’만 남았다며 도전해보라 하니, 그것은 무어냐 물어보았다. 출발해서 도착까지 중간에 땅에 발을 디디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을 말한다고. 버스 무정차와 같은 개념이란다.
그런데…. 저는 최근 들어 중간에 내린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남성 라이더들은 더 놀라운 표정으로, 믿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떻게 기어를 2:5로 놓고 경사도 10% 넘는 곳을 여성이 무정차로 갈 수 있느냐고 계속 되묻는다.
“못 믿으면 할 수 없지요.”
하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어쨌든 끌고라도 호미곶으로 가야 할 거 아니겠냐 싶어 출발했던 것인데 남성 라이더들은 내 모습을 뻔히 쳐다보고 있었다. 바보스러운 한 여성이 기어를 움직이지 않고 언덕을 오르다 자빠지는 모습을 보기라도 하겠다는 걸까?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는 운명이 되어 버린 까망이.
나는 까망이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동해안을 달렸다.
출발하자마자 방금 그분들에게 배운 기어 조작법을 생각해서 왼쪽 손잡이 부분의 레버를 손가락으로 한 번 밀었다.
“딸까닥, 척!!!”
까망이를 타고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마찰음이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라 당황스러웠지만 의외로 오르막을 너무나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어라? 이렇게 쉽게 올라가네?’
그럴 찰나, 다시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다시 왼쪽 레버를 반대 방향으로 당기고 오른쪽 레버를 조정해서 높은 숫자가 표시판에 나오도록 했다. 왼쪽 3. 오른쪽 8. 그러자 자전거는 마치 천리마가 된 듯 저 멀리 씽씽 나아가는 것이었다.
‘철커덕, 턱!, 딸깍, 딸깍딸깍-’
‘딸까닥, 척척! 딸깍, 츠프덕-’
까망이는 희한한 소리를 내며 나를 꿈속의 언덕 위로 한달음에 데려가 주었다가 신나게 내려꽂히는 스릴감도 맛보게 해주었다. 이런 멋진 주행을 하게 될 줄이야! 까망이가 나를 태우고 이렇게 재빠르게 달려줄 줄이야! 그동안 기어를 작동하지 않았으니 까망이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 바보야. 기어를 쓰라고, 기어를!’
하고 얼마나 외쳤을까. 그것도 모르고 기어를 고정한 채 높은 곳을 꾸역꾸역 올라다녔으니 까망이의 속이 그야말로 새카맣게 탔겠다. 하지만, 까망아 그 덕분에 내가 ‘짐승’이 되었다고 하지 않니? 하하, 다 네 덕분이다!
어느 날 까망이를 도난당했다. 주변 사람들은 자전거는 쇳덩어리에 불과하다가 잃어버린 자전거는 잊으라고 했다.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는 운명이 되어 버린 까망이. 하지만, 나는 까망이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동해안을 달렸다.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모르지만, 그 흑빛이 아름다웠던 유사 MTB, 까망이의 숨결은 오래 가슴에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