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사람들은 제 죽을 것을 모르고 살아있는 집의 숨통을 틀어막는다.
그래도 살아가는 백세각.
그래도 견뎌내는 옛집에서 우리는 삶의 방향을 다잡아야 한다.
그날, 오전 일정을 마치고 찾아간 곳은 ‘성주백세각(星州百世閣)’. 사가(私家)에 불쑥 들어가도 될지 걱정은 되지만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니만큼 손님을 이유 없이 내치지는 않을 것이다. 크지 않는 마을의 길가에 고택이 눈에 띄니 이 집인가 보다 하고 조심스레 대문 앞에 서 본다. 안내판이 있어 읽어보다가 열려있는 대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올려다보이는 높은 축담 위의 마루청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담벼락 아래서 낫으로 일하고 계시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일하는 차림새이지만 몸짓을 보았을 때 남의 집 일하는 분 같지는 않다. 어쩌면 이 집의 종부(宗婦)이려나 싶어서 인사를 드리니 일하던 손을 멈추고 반가운 기색을 하시며 당신이 이 집 종부라 하신다. 그러더니 뒤꼍으로 가서 장화를 신고 손에 뽑던 풀을 들고 있는 어르신 한 분을 앞마당으로 모시고 나온다. 이 댁의 종손이란다. 종부께서 곧바로 어르신을 모셔 오신 것은 무슨 연유인가 여쭈어보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집에 오신 손님이니 당연히 집 이야기 들려 드려야지요.”
어르신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친다. 유창한 말솜씨도 아니고 빠른 숨으로 이야기를 척척 이어 가시는데 집을 바라보는 눈빛이 담박하기 그지없다. 자기 뿌리를 생각하는 갸륵한 마음이 함뿍 묻어난 어투로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이다.
종손 어르신 말씀에 따르면 백세각이 의미가 있다는 것은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다고 하신다. 조선 중기 목조양식으로써 얼마 남아 있지 않은 목조건물이라는 것. 1919년 3.1운동 이후에 유림(儒林)이 프랑스 파리 국제 강화회의에 독립운동을 청원하는 사건을 주도했다는 것. 독립운동과 관련이 깊은 집이라는 사실. 또, 원불교 2대 종법사가 원불교를 종교로 만들었는데 그분이 이 집안사람이라는 것이다. 원불교에서는 이 집을 성지(聖地)로 묶었지만 5백 년 동안 지켜온 유교를 받들기 때문에 그 집안 재실로 영정을 옮기고 다른 데서 제사를 지내게 하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다. 70년대에 집안에 국회의원이 나서 집을 손보기 시작했는데 축대 사이에 시멘트를 비벼 넣은 후 백세각이 숨을 쉬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집의 숨구멍이 막히자 기둥이 뒤틀리고 습기가 많아져서 안쪽 집이 좌측으로 조금씩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4~5백 년 동안 배수도 잘되고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점점 기운을 잃고 쓰러져 가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하신다. 어디서 어떻게 잘못되어 이렇게 되었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고 하니 어른도 답답할 노릇이라 한다. 다시 개축공사를 할 수 없느냐 여쭈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면 이 집이 더 내려앉아요. 이제는 손대는 거도 우리 맘대로 안 돼요. 국가에서 전문가들을 데리고 와서 제대로 손대면 몰라도 말입니다.”
안에 들어가서 사진도 찍고 구경하다 가시라 하고 어르신은 하던 일이 있다며 뒤꼍으로 나가신다.
ㅁ자형의 목조건물 안으로 깊이 들어가니 기골이 장대한 축담이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가운데 흙으로 다져진 마당에는 이끼가 끼어 있고 물기가 흥건하다. 얼마 전 비가 많이 와서 아직 땅이 무르기도 했지만, 이 집의 배수가 문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그 질펀한 흙 마당으로 걸어 들어가 축담 위를 바라보니 시퍼런 이끼들이 곳곳에 나 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나면 이렇게 낭패당하나 보다.
집이란 어떤가? 우리 선조들에게 집이란 ‘삶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랬기에 공간에 대한 고민의 마음이 드러난 곳으로써 사람과 함께 숨 쉬고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때로는 집 속에 사람들을 배려한 다정한 흔적과 엄혹하게 자기 소임을 명시하는 상징적 흔적도 만들어 놓았다. 위엄과 따스함이 혼재했던 공간.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있었다.
편리하기만 한 현대의 집과는 개념 자체가 다른 것이다. 집 마당에 화단을 꾸미고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들을 가꾸면서 당신들의 마음은 항시 하늘을 향했을 것이다.
집 곳곳에 손길을 주면서 청정한 삶터에서 묻어나는 정겨운 옛집들. 장독대 하나라도 깨끗하게 닦아 두는 갸륵한 옛집들. 그 장독 뚜껑을 열어 간장의 검은 하늘을 보며 자기 그림자를 보며 자화상의 충격에 빠지기도 하며 검은 하늘 속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더 검어져 버린 구름에 감탄해 마지않았을 선조들의 집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집이었다.
우리 집 담장 아래에 조그마한 씨앗들을 심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해 주었던 선조들의 마음 씀씀이를 생각한다. 옛집 담벼락 아래에는 유독 봉선화가 많이 피어 있었다. 그 꽃은 꽃송이나 잎을 따서 여성들 손톱에 물들이는 화장(化粧)품의 대용이었을 것이니 꾸미고 싶은 사람 꾸미라고 살포시 씨앗을 담벼락 아래 둘러 뿌려 놓는 것 아니겠나.
돈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요즘이라면 그런 사람을 두고 바보 같다고 비웃지 않겠나. 하지만, 조금이라도 남을 배려하는 품성이 몸에 밴 우리 옛집의 주인들은 결코 나와 남을 다른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그랬기에 옛집에서의 삶은 도저히 돈으로 살 수 없는 순박한 것이기 때문이다.
옛집은 말한다. 집은 공동체를 위한 공간이라고. 그렇기에 서로 배려하면서도 각자 독립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섬세하게 꾸려놓은 집은 숨을 쉬며 살아가는 생명체라고.
쇠못 하나 치지 않은 백세각 같은 집이 세상에 얼마나 남아 있을까? 나무로써만 집을 이렇게나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일제 강점기를 지내고 만들었다던 다락방 앞의 계단에는 녹슨 못 자국들이 보인다. 못 없이 만들어 놓은 옛집이 기품을 유지하고 단단하게 자리박음하고 있는 것에 비해 나무를 조각조각 갈라놓고 쩍쩍 벌어지게 만들어 이미 쇳물이 나무에 베어버린 모양을 보니 먼 곳까지 바라보고 오래오래 고생하며 나무집을 지은 이 댁의 혜안을 알만하다.
며칠 뒤, 다시 비가 한바탕 내리쳤다. 올해 유난히 태풍도 잦았는데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조금씩 틀어지며 가쁜 숨을 쉬고 있는 백세각 나무집이 생각난다.
비록 백세각의 곰팡이가 한참 더 오래 가고 기둥이 더욱 뒤틀어진다 해도 종부 어르신은 더 이상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그것이 차라리 집을 더 잘 보존하는 것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제 죽을 것을 모르고 살아있는 집의 숨통을 틀어막는다. 그래도 살아가는 백세각. 그래도 견뎌내는 옛집에서 우리는 삶의 방향을 다잡아야 한다.
비록 백세각의 곰팡이가 한참 더 오래 가고 기둥이 더욱 뒤틀어진다 해도
종부 어르신은 더 이상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그것이 차라리 집을 더 잘 보존하는 것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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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백세각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주택. 쇠못을 사용하지 않고 구멍을 뚫어 싸리로 얽었으며, 대패질을 하지 않고 자귀만으로 깎아 다듬어 만든 건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