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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둘 Mar 29. 2023

미루나무숲에서 문학교실

[수필]


그들의 색은 눈부시다 못해 시리다.
그들의 영혼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무채색(無彩色).
꾸밈없는 웃음과 눈물 그리고 슬픔과 아픔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내는
순도(純度)는 신의 계단을 오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눈부심이다.




    내가 복지관에서 맡은 역할은 조현병 환자들 대상으로 하는 시 쓰기 수업이었다. 참가자는 모두 15명가량, 원형으로 둥그렇게 책상을 배치하여 서로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면서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 후, 과연 어떠한 치료적 효과를 나타낼지 장담할 수 없었지만, 문학치료적 요법으로써의 시 쓰기 수업은 의미 있는 시도였다.


 일반인들도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시 쓰기 수업인데 이들에게 무리가 되지 않겠나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자기 마음의 흐름을 발견하고 그 순간을 시로 써 보게 하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일이었다.

  ‘자아를 찾아가는 프로그램’ 중 하나였기에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알아가게 하는 과정이 의미화 되어야 했다.      


  첫 만남, 반응은 따뜻했다.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그들은 내게 스승에 대한 예의를 차렸다. 인사를 나누고 아름다운 시들을 듣고, 낭송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외관상으로 그들의 표정과 말투는 어눌하고, 소심하고, 활동적이지도 않아 보였다. 그러나, 이들의 가슴에는 뜨거운 것들이, 맑고 환한 것들이 넘쳐흘렀고, 그들의 손에는 위대한 신의 힘이 살아 있었다. 회원들은 수업 시간에 집중했고 자신들이 ‘시인’이 된 듯 뿌듯해했고 시를 들으며 감동하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그렇게 서서히 연필을 들었다. 시 쓰기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수업이 끝날 때까지 펜을 놓지 않는 분들도 계셨다.


  그들의 시는 풋풋한 마음이 드러나 있었다. 거짓 없었고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그들은 자신이 어딘가 아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약을 먹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 시, 머리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시,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단지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리라는 시들을 썼다. 


  어떤 분은 복지관 오는 지하철에 있을 때 행복하다고 했고, 복지관에 다 와 가면 가슴이 뛴다는 분도 계셨다. 일과를 마치고 복지관 문을 나설 때면 섭섭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해가지만 매일 자신들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복지관 사람들에게 크게 감사하며 사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현실을 잘 알았다. 그렇기에 잠시라도 평화의 순간을 갈망했다.      


  시를 다 쓰고 나면 각자 자작시를 소리 내어 읽는다. 다들 정성스럽게 자작시를 읽어 내려갔다. 배경음악을 깔아주면 모든 참가자가 시 낭송에 매료되어 흠뻑 취했다. 시를 쓸 때 눈빛을 반짝이는 수강생들, 그들에게 삶이란 미래가 되어 멀리 달아나버릴 현재와 아직 오지 않은 갈망하는 현재일 것이다. 


  그들의 시가 있는 그대로 맑고 깨끗한 이유가 그것이다. 자신의 시를 읽을 때는 이제 막 한글을 배운 어린아이와 같이 볼이 발그레해진다. 눈빛도 반짝이며 콧소리도 가벼워진다. 그들에게 시를 쓰는 순간은 자신의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은 순간이기도 하다. 그것을 알고 있다는 듯 자작시 낭송 시간이 되면 미소를 잃는 법이 없다.     


  그들의 색은 눈부시다 못해 시리다. 그들의 영혼은 우리들의, 빛나는 2020년을 사는 세속의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무채색(無彩色). 꾸밈없는 웃음과 눈물 그리고 슬픔과 아픔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내는 순도(純度)의 완성도는 신의 계단을 오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눈부심이다.


  단순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알고 싶다면 이러한 색깔 없는 욕망의 공간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 거기서 우리는 얼마나 불필요한 것들을, 얼마나 의미 없는 것들에 파묻혀 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생명 하는 그 자체에만 경이로운 찬사를 보낼 수 있는 곳, 살아서 온전히 하루를 살 수 있다는 것만도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곳, 얼마나 아름다운 옷을 입었는가는 약을 제때 먹고, 오늘 하루 두통 없이 잘 지나갔는가에 비하면 너무나 세속적인 욕망이다. 그들은 잠시 잠깐이라도 두통이 사라진 세상의 천국을 소망한다. 얼마나 더 아름다운 몸매로, 얼마나 더 멋있는 옷을 입고, 얼마나 더 좋은 자동차를 사고 더 좋은 집으로 옮겨가고 싶어 하는가는 이들의 소망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없는 소망이다.     


  산으로 가야, 하늘로 가야 선인(仙人)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의 대문호(大文豪) 단테는 위대한 작품 「신곡*」 속에서 사후의 세계들을 소개했지만, 천국이나 지옥에 가보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미 그곳을 체험하며 살아가리라. 


  오늘 내 머리와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얼마나 드나들고 있는가를 깨닫게 주는 곳, 사회복지관. 오늘 이들이 하루를 보내는 복지관에서 수많은 천국과 지옥이, 어쩌면 단테의 연옥 같은 풍경들이 각자 자기 머리에서, 가슴에서 일렁이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상에 사는 그들의 맑디맑은 기도 소리 들어본 적 있는가.     

 

  “저는 소원이요~ 머리 안 아픈 겁니다.”

  “저는요, 약 안 먹고 지내는 게 소원입니다.”

  “저는 꽃을 사랑해요.”

  “전, 달을 사랑하죠.” 

  “저는 우리 동네와 저 자신을 사랑합니다."

    

  그분들은 시를 잘 쓰려고 생각하기보다는 집중해서 쓰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열심히 쓰면 자신들의 병도 조금씩 나아가리라는 희망을 가슴에 품은 채. 


 우리는 모두 매주 한 번씩 만나는 그 교실을 참 좋아했다. 그 미루나무숲에서 문학 교실에서 안식을 얻고 평화를 얻었다. 또다시 우리들의 그 카페에서 복지관 회원들을 만나보고 싶다.                                                     






“저는 소원이요~ 머리 안 아픈 겁니다.”
 “저는요, 약 안 먹고 지내는 게 소원입니다.”
“저는 꽃을 사랑해요.” 
“전, 달을 사랑하죠.” 
 “저는 우리 동네와 저 자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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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 단테가 쓴 장편 서사시, 지옥 편. 연옥 편. 천국 편. 3부로 이루어져 있고 주제는 사후(死後)의 세계를 중심으로 한 단테의 여행담(旅行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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