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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둘 Mar 29. 2023

뺑덕이의 궁전에서

[수필]


 아, 이 꽃잎들과 새들을 불러 모으는 벚나무들과
이들을 바라보는 고인돌의 넉넉함 속에서 느껴지는 정감 어린 순수! 
 

    한 봄 어느 날, 나는 경북 안동으로 향했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님이 사셨던 흙집에 가고자 했던 것이다. 아침 일찍 대구에서 출발하여 경북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권정생 동화 나라’에 들렀다. 폐교를 이용해 권정생 선생님을 기리는 여러 자료가 보관된 곳이다. 


  동화 나라 운동장에는 민들레가 한가득 피어 있었다. ‘강아지똥’에 나오는 민들레들처럼 힘차고 예쁜 녀석들이 마당에 그득하다. 특이하게도 이곳 운동장에는 우리나라 자생종이라 알려진 토종민들레가 대부분이다. 흔하게 볼 수 없는 토종민들레를 이곳에서 눈이 시리도록 보는구나 싶다. 빨리 권정생 선생님 사셨던 그 흙집에 가 보고 싶어 얼른 자리를 옮겼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님의 삶은 전국민적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그것은 그분 사후의 일이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청년 시절까지 그는 문학을 하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우연한 기회에 교회 어린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쓰다가 스스로 글을 쓰는 것이 행복한 일임을 알았다. 그러면서 주변에 이야기로써 행복을 전해주려고 열심히 습작하셨다. 하지만, 못 먹고 자란 탓에 병이 깊었고 그런 선생에게 세상은 잔인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스러운 육신으로 인해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권정생 선생님의 삶이 애처롭기는 그분이 살던 곳에 가 보면 알 수 있다. ‘조탑리’라 불리는 건 이 마을에 탑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곳에서부터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 흙집을 찾아 나선다. 너무나 가난하게 살고 있던 권 선생님을 위해 마을 사람들이 지어준 무허가 건축물인 이곳에 오다 보면 온갖 봄꽃을 다 본다. 수많은 봄꽃잎들이, 담장 밑에서도 수많은 꽃잎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담벼락도 없는 흙더미 집이었다. 조그만 흙 벽담에 ‘권정생’이라고 붙여놓은 마분지 문패가 눈에 뜨이고 조그만 방문 앞에 방명록과 조그만 꽃다발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방문이 닫혀 있어서 조그만 격자 문 사이를 들여다보니 방안에 권정생 선생님의 영정사진과 아직도 꽂혀있는 조그마한 책장이 눈에 띈다. 

  그 책장에 몇 가지 책들이 침묵 속에서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깨우지 못할 그들만의 영적(靈的) 세계 같은 침묵이 흐르고 그저 방문객일 따름인 나는 뒷걸음질하여 나오며 가신 분의 하늘 위 삶이 평화롭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볼 밖에 다른 애도의 방법이 없다.     


  새들이 지저귀고 그 새들을 불러 모으는 나무들이 잎을 팔랑거리고 있다. 흙집 뒤편으로 커다란 고인돌이 있고 그 사이로 벚꽃잎이 떨어져 작은 바위틈 위로 흘러가는 물 위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놀고 있다. 그 풍경이 너무나 앙증스러워 쪼그리고 앉아 한참 동안 꽃잎들의 행렬을 보고 있노라니 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오르며 하늘을 덮는다. 


  아, 이 꽃잎들과 새들을 불러 모으는 벚나무들과 이들을 바라보는 이 고인돌의 넉넉함 속에서 느껴지는 정감 어린 순수! 


  신은 하늘에 계신 것만은 아니다. 이 작은 나뭇잎 속에서, 이 조그맣게 흘러 돌아가는 바위 위의 작은 개울물, 이 태곳적 고인돌은 모두 신일 것이다. 언제나 인간은 신 속에 함께 했을 것이며 신은 인간을 품어 주었을 것이다. 권정생 선생님도 이런 신의 보살핌 속에서 이 작은 흙집에서 살며 작은 위로를 얻으며 작으나마 희망을 품고 끝없이 감사했을 것이다.     


  권정생 선생님 생전에 함께 지냈던 강아지 뺑덕이는 이제 없고 집만 덩그렇게 남아 있는데 뺑덕이네집에는 어느 누군가 오가는 사람들이 버린 비닐봉지로 가득하다. 권정생 선생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그 비닐을 걷어 내주며 뺑덕이에게 미안하다고, 네가 사람들을 이해하라고 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뺑덕이는 어느 가난한 아동문학가의 집에 사는 신기한 개였겠지만, 권정생 선생님께 뺑덕이는 이 집의 주인 이었다. 오히려 권 선생 자신이 이 집의 손님처럼 살았다. 강아지 뺑덕이는 개로 태어나 사람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아 살았던 그 시절을 다음 세상에 가서도 잊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사람의 집에서 주인으로 살 수 있었던 그 호화로움이 그리워 지금 하늘나라 어디에선가 가끔 우울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개는 멋진 개로 살다가, 한 사람에게 극진한 대우를 받고 갔다. 


  뺑덕이는 흙을 밟으며 바람과 꽃과 산과 냇물과 나비 등을 친구 하며 살았다. 개로 태어나 이만한 호사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콘크리트 집에서 땅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강아지 중에 뺑덕이만큼 행복한 개가 있을까? 뺑덕의 코를 간질이던 봄꽃향이, 뺑덕의 발바닥을 간질이던 봄 새싹의 간지러움이, 뺑덕의 귀를 간질이던 벌과 나비 떼, 새들의 날갯짓 소리를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지천으로 복숭아꽃 살구꽃 활짝 피었다. 마침 바람이 불어오더니 꽃비가 권 선생님 앞마당에 우르르 떨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쌓여 흐르던 흙벽 집 뒤의 물줄기에서 뱅그르르 맴돌던 물줄기를 따라 흐르던 벚꽃잎들이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고 있던 차에 마당으로 바람에 날려 온 이 꽃잎들이 와글와글 웃으며 밀려갔다 다시 바람 따라 여기저기 밀려다닌다. 마치 뺑덕이가 보내준 꽃잎 전사들처럼 이들은 뺑덕이 살던 집 앞을 줄을 지어 한 바퀴 휘휘 돌다가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돌아 저 뒤편 고인돌 쪽으로 멀어져 간다.


   궁전이 따로 있을까, 이 봄날 아름다운 꽃잎들에 젖어서 가슴 벅찬 하루를 지내는 흙벽 집이 오늘 가장 아름다운 궁전인걸. 이 궁전에서 뺑덕이가, 권정생 선생님이 소박한 어느 방문객을 열렬히 환영해 주니 영광, 또 영광이다.     


  돌아나가는 길에서 흙집을 다시 쳐다본다. 흙집도 고인돌도, 텅 빈 뺑덕이 집도 모두 두 손 흔들어 준다. 나도 그 집을 향해 두 손 흔든다. 뜨거운 방문을 받고 후하게 대접받고 간다. 이 흙집의 맑은 영혼이 내 가는 길을 끝까지 열어 줄 것이다.          






 흙집 뒤편으로 커다란 고인돌이 있고 
그 사이로 벚꽃잎이 떨어져
작은 바위틈 위로 흘러가는 물 위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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