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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둘 Mar 29. 2023

생가(生家)터에서

[수필]


어머니가 나를 낳았고 어머니의 젖을 먹고 당신의 등에 업혀
둑 너머 강가로 드나들었다던 정암리 242번지.
내가 태어난 그 집터.
나는 꼼짝 않고 242번지에 서서 상상으로나마 그날을 그려보았다. 




 

  “니, 그 집에서 태어나 낙동강 물 먹고 자랐다.” 

  “낙동강 물을 예?”

  “그래, 그때는 누구라도 낙동강 물 퍼 묵고 살았다. 니도 한참 클 때까지 그 물 먹고 강에서 미역감고 놀고 그랬다.”

  “그 강이 낙동강인가예?”

  “그럴낀데…. 우리는 다들 낙동강이라 캤다.”     


  친정어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인터넷상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신청해 내 탄생의 역사를 보자 싶었다. 출생신고는 내가 태어난 지 꼭 열흘 만에 아버지가 직접 한 것으로 나와 있다.


  ‘경남 의령군 정암리 242번지’.


 인터넷 지도로 생가터 번지를 찾아 시뮬레이션했다. 50여 년 전 내가 태어난 그곳을 이렇게 위성지도로 미리 가 볼 수 있으니 세상이 놀라운 속도로 변하고 있다는 게 실감 간다. 


  그 둑 너머 물길 위에 ‘솥 바위’라는 지명이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다. 근처에 정암루(鼎巖樓)도 있다. 그런데 지도에는 솥 바위를 안고 흐르는 강이 남강으로 표기되어 있다. 인터넷 지도를 펼쳐 물의 근원을 따라 올라가 보았다. 알고 보니 어머니가 낙동강이라던 그 강은 남강이다. 


  지리산 줄기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그 강은 덕유산에서 발원하여 경호강과 합류해 내려오다가 진주, 의령을 지나 의령 지정면에서 합류한다. 의령 정암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낙동강과 합류했으니 사람들은 낙동강 지류를 퉁쳐서 낙동강이라 불렀나 보다.


   그 강너머 큰 절벽 같은 곳을 지나면 솟아있는 조그만 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에 소나무 한그루 서 있다. 며칠 전 내린 비로 솥 바위를 품은 강은 황토를 머금고 있었고 수위가 평소보다 높아서 물 아랫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옥빛 물 위에 떠 있는 솥 바위의 모습을 기대하고 왔는데 황토물 속에 잠겨 버렸으니 적이 실망이 된다. 하지만 조그만 산봉우리에 기개 높은 소나무 한 그루 서 있는 아기자기한 솥 바위가 정겹다. 청정하고 신비로운 남강의 물결 위에서 어느새 물안개가 피어올라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큰비로 강바닥이 뒤집혀 솟아오른 황토물들은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아득하게 흘러가고 있다. 멀리 철교가 눈에 띈다. 이제는 차량 통행이 금지된 정암 철교에 서서 내려다본 남강의 굽이치는 물결은 비단결처럼 우아했고 무사처럼 결의에 찬 물보라를 자아내고 있었다. 진주를 거쳐 내려오는 물이니만큼 의병들의 절의(節義)를 더욱 품에 안고 흐르고 있는 것이리라.      


  내가 태어났다는 생가터는 수변공원이 되어 있었다. 집도 찾을 수 없을뿐더러 주변 모양새는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것과 전혀 달랐다. 삶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내 생가터…. 

  수변공원은 넓게 조성되어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찾는 이가 없는 쓸쓸한 공원이 되어가고 있다. 주차장에 깔아놓은 보도블록 사이로 잡초들이 끝 간 데 없이 무성하다.

   주차장 너머로 나무 터널을 만들어 두었고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의자를 놓아두었으나 인적 드문 공원의 의자는 거미나 곤충들의 차지가 된 지 오래되었다.


  GPS를 켜고 주차장 한 귀퉁이에 멈췄다. 어머니가 나를 낳았고 어머니의 젖을 먹고 당신의 등에 업혀 둑 너머 강가로 드나들었다던 정암리 242번지. 내가 태어난 그 집터. 나는 꼼짝 않고 242번지에 서서 상상으로나마 그날을 그려보았다. 


                                                                         


 “태를 이만큼이나 감고 밖에 나와서 살아남는 얼라는 처음 보네.”






  3월의 어느 날, 어머니는 산통(産痛)이 심해지자 한참 동안 참다가 배를 움켜잡고 윗집 할머니께 아버지를 불러 달라 부탁했다. 할머니는 잰걸음으로 정암 지서로 달려가 아버지를 찾아 빨리 집에 와보라 전했다. 아버지가 도착하기가 무섭게 아기가 산모의 아래쪽에서 쏟아져 나왔다. 소리가 우렁찼으나 딸이었다. 네 번째로 낳은 아이도 딸이었으니 산모는 미안하고 불편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내를 타박하는 남편이 아니었다. 아들이든 딸아이든 건강하면 된 것이라고 아내를 위로해주고 있는 참에 아기의 목에 산모의 굵은 태가 친친 감겨 있는 걸 발견했다. 


  탯줄을 그렇게 목에 몇 바퀴나 감고 나오는 아이는 필시 죽기 마련이었다. 윗집 할머니도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어찌어찌해서 겨우 탯줄을 잘랐다. 하지만, 끊긴 탯줄이 아기의 목에서 여러 겹 엉켜버렸다.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아기는 울지도 않았다. 태에 목을 죄어 필시 죽은 것이리라. 산모는 극도로 예민해졌다. 윗집 할머니는 식은땀을 흘리며 아기를 수습했으나 이미 축 늘어져 있었다. 방안의 핏자국들이 흥건했고 피비린내가 진동했지만, 누구도 말이 없었다. 산모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연방 울음을 터뜨리려는 찰나,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숨이 돌아오고 있었다. 윗집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말했단다. 


  “태를 이만큼이나 감고 밖에 나와서 살아남는 얼라는 처음 보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 탄생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남자인 줄 알았지만, 여자였고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았으니 정암의 기운을 얻어 세상에 좋은 일 할 거라는 것은 그 후 어머니의 변하지 않는 신념이 되었다. 

  나는 그곳에 서서 동영상을 찍었다. 언제 쓰일지 모를 중년의 내 목소리를 담아 놓는 것은 나에 대한 배려였다. 50년 전의 그 아가와 만나는 순간 내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너의 태어남을 축하한다. 김둘! 태어나 삶의 질곡을 건너 너와 나, 지금 여기까지 왔다. 네 생의 출발점에는 이렇듯 강인한 남강의 물결이 혈액처럼 흐르고 있다. 너를 키워준 정암의 강물이 어느 날 너에게 삶을 선물했고 나는 드디어 내 가진 소명을 다하며 사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겠노라!’


 내 귀에 들리는 내 목소리는 참 따뜻하다. 그동안 기꺼이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는 뜻이다. 세상의 부귀를 얻지는 못했지만, 정신적 부는 누리고도 남음이 있다는 뜻이다. 강처럼 살아라, 흐를 때는 흐르고 거칠게 넘나들 때는 사정없이 달려라. 의로운 남강의 기상과 솥 바위의 정직함을 닮아라. 그들의 그 정신을 절대 잃지 말아라. 그리하여 나의 너, 너의 나인 그대여 굵은 태를 감고도 살아남아 세상에 고운 향 드릴 울 수 있었음에 감사하라!     


  남강이 품어준 그 생가(生家)에 서서 나는 꿈인 듯 50년 전 과거의 태를 친친 감고 나온 사내아이 같았던 어린 나를 만나는 중이다.






 ‘너의 태어남을 축하한다. 김둘!
태어나 삶의 질곡을 건너 너와 나,
지금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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