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색시는 신랑에게 말한 대로 남은 음식을 모두 버렸다.
음식 버리는 것이 흉이 되던 시절이었기에
김순경 마누라는 천벌 받을 거라는 악담까지 들렸다.
그러나, 색시는 끄떡하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하든 내 신랑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하늘에 부끄러울 짓은 아니라 확신했다.
그는 통영 욕지도에서 태어나 연화도를 거쳐 살다가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서 살았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폐병이 찾아들었지만 혼자 그 병을 감당해야 했다. 그는 속절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결핵의 치료 약이 크게 개발되지 못했던 때라 결핵균이 공기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자청해서 내려오게 된 남해의 어느 바닷가의 그 처자와 혼인하기까지는 아픈 사연이 있었다.
젊은 순경은 두툼하게 쌓아둔 약을 다락에 몰래 쌓아두고 매일 거르지 않고 복용하면서도 근무 기간 중 마을 순찰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간혹 객혈(喀血)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두려움과 서러움에 눈물 적시기도 했다. 바닷가마을에서 순사 노릇을 하는 생에 대한 절박함을 가족에게도 알릴 수 없었다. 결국 혼자서 그렇게 지내다 죽게 될 것인가. 그 처자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릴 수는 없었다. 신랑이 폐병 환자라는 것을 알면 줄행랑을 칠 게 뻔하니 어찌할 것인가. 숱한 고민 속에서도 그 처자에게 이끌리는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혼인날을 받아놓은 어느 날, 색시는 신랑 될 사람의 집에서 몇 뭉치나 되는 약봉지를 발견했다. 놀라서 약방으로 찾아가서 약을 보여주니 약사가 말한다.
“아주머이, 이 약 누가 먹능교?”
색시는 약사의 낯빛이 변하는 것을 보고 심각함을 알았다. 약은 친척이 먹는 거라고 했다. 약사는 말했다.
“이 약, 신랑이 먹는거라카믄 얼릉 친정으로 돌아가소. 얼마 남지 않았으니….”
새댁은 약사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말했다.
“꼭 죽으란 법 있심니꺼, 살라 낼 수도 있지예. 사람 목숨이 그래 나약한 것입니꺼. 이까짓 병!”
그러고 약사의 눈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무신 병에 먹는 약이고 우째해야 낫는지도 알려 주이소. 그라믄 은혜로 알겠심니더.”
애써 외진 바다 쪽으로 근무를 자청하여 간 곳이 경남 남해의 작은 어촌 마을. 초보 순사였던 그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면서도 남해 운암, 곡부공(孔)씨 마을의 어느 집 금쪽같은 맏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축복 속에서 혼인했고 공씨 가문에서는 딸이 좋은 신랑 얻었다고 좋아했다. 나이가 열 살 많은 것은 흠이 아니라며, 신랑이 순사이니 앞으로 잘 살 거라는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혼례를 치르고 신혼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새댁은 밥상을 두 개 내왔다. 밥상엔 꼭 한 사람만 먹을 수 있는 반찬과 밥과 국이 놓여있었다. 새신랑이 아침밥을 먹으려 하니 밥상이 두 개라, 어쩐 일인가 하고 색시를 쳐다보니 색시가 이렇게 말한다.
“다 죽어가는 폐병 환자하고 같이 우째 밥을 먹겠심니꺼? 전염되어서는 안 된다 하니 앞으로 병이 다 나을 때까지는 같은 상에서 밥 못 묵심니더.”
새신랑은 밥상머리에서 할 말을 잃은 채 머리를 숙이고 흰밥을 푹푹 떠서 마구 입으로 집어넣었다. 자신의 병을 숨기고 혼인을 청했으니 색시를 속인 것이나 다를 바 없음을 모르지 않으니,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색시는 친정에 가고 없겠구나. 나는 다시 혼자가 되겠구나. 저녁참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다음 날 아침,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가 났다. 벌떡 일어나 부엌을 내다보니 새색시는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짓고 있었다. 새신랑 눈에 다시 눈물이 흐른다. 색시는 두 개의 밥상을 들여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왕에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백년해로 하입시더. 오늘 당장 혼인신고 하러 가고예. 우선 병부터 고칩시더. 폐병 걸린 사람하고 같이 밥을 먹어서도 안 되고 환자 젓가락 간 음식은 모두 버리야 된다카니, 앞으로는 한 끼 드실만치만 반찬을 상에 놓을 끼고 혹시 음식이 남으면 그대로 돼지 여물통에 버릴라니까 탓하지 마이소. 또, 이렇게 된 바에야 담배도 이참에 끊으시는기 좋겠심니더.”
젊은 순사는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도 끊지 못하던 담배를 색시의 그 한마디에 끊었고 색시의 정성으로 좋은 반찬 다 맛보고 살았다. 거기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지내는 게 좋겠다 하니 병이 나을 때까지는 절대로 바닷가를 떠나지 않기로 약조했다.
색시는 말했다.
“우리는 바다가 맺어준 인연입니더. 욕지도에서 난 양반과 남해 운암의 곡부 공가(孔家)딸이 우째서 만날 수 있었겠습니꺼. 폐병으로 안 아팠으면 서울에서 살았을낀데 살아 볼라꼬 이래 외진데 내려왔으니 이 바다가 중매쟁이인 겁니더. 병이 나을 때까지는 우짜든지 바다가 있는 쪽으로 근무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꼬 높은 사람들한테 부탁하이소. 그 길이 살길입니더.”
곧 마을에 소문이 퍼졌다. 김순경 마누라 손이 헤프다느니, 음식을 함부로 버린다느니….
색시는 신랑에게 말한 대로 남은 음식을 모두 버렸다. 음식 버리는 것이 흉이 되던 시절이었기에 김순경 마누라는 천벌 받을 거라는 악담까지 들렸다. 그러나, 색시는 끄떡하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하든 내 신랑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하늘에 부끄러울 짓은 아니라 확신했다.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 루치아
산타 루치아….’
노래라고는 지지리도 못하는 남자가 처음으로 노래 연습을 한 곳도 바다였다. 어느 해, 통영의 해양경찰서 소속으로 근무하던 때, 근무 교대자가 시간 맞추어 해안 초소에 가보니 교대 시간이 지났건만 혼자서 무슨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있더라는 것이다.
음치 중의 음치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열심히 부르는지 차마 노래를 끊지 못하고 한참 서 있다가 노래가 끝난 다음 교대를 했다. 무아지경에 빠져서 자신의 음치도 잊고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불렀다는 노래는 이탈리아 가곡 ‘산타루치아’*였다.
그 덕분에 해양경찰서 초소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다 외워버린 그 노래는 해양경찰서의 애창곡이 되어 버렸다.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 루치아 산타 루치아….’
그 후 몇 년 뒤, 부부는 건강한 아기를 낳았고 그 뒤로도 아기들을 더 낳았다. 나는 그 아기 중 세 번째 딸이다. 이렇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영화의 주인공 같은 삶을 살아오셨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
물 맑은 봄 바다에 배 떠나간다.
이 배는 달 맞으러 강릉 가는 배,
여기야 디여라 차 노를 저어라.’
어느 날, 그 새벽에 서호시장 앞 해양경찰서 소속 파출소 앞 뗏목에 서 있더라고, 동네 아주머니께 연락이 왔다. 혹시 치매에 걸리신 건 아니신가 하시길래 어머니는 그 길로 뗏목으로 달려 나가셨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뗏목에서 아버지는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 물 맑은 봄 바다에 배 떠나간다. 이 배는 달 맞으러 강릉 가는 배, 여기야 디여라 차 노를 저어라.’
노래를 마친 아버지가 돌아서다 말고 어머니를 보고 반가워하며 말씀하신다.
“내, 그동안 참다 참다 오늘은 한 곡조 뽑아 봤다. 내 노래 어떻노?”
“젊었을 때는 산타루치아를 그렇게 불러쌌더니 늙어서는 우째서 맨날 저 노래만 부르노. 그러이 누가 당신 치매 걸맀다 안 카요. 인자 좀 그만 하소.”
아버지는 늙은 어머니의 손을 가만히 잡는다.
“우째서 그런지 모르겠다. 내, 니를 만난 다음부터는 바다만 보면 이래도 노래 부르고 싶은지…. 오늘 물 맑은 봄 바다 아이가…. 참 맑데이, 저 바다가….”
세상에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했던 2020년 봄, 늙은 아내는 문득 50년도 더 전의 일을 떠올린다. 남편의 폐병이 혹시나 다른 사람에게 옮을까 외출을 삼가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가격리 하면서 조용하게 숨어 지냈다던 그 세월의 서러움이 주마등같이 스쳐 간다.
그렇게 지켜온 남편이고 그렇게 우리와 함께해온 바다인 것이다…. 이 바다 앞에서 마음껏 노래하는 것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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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루치아 : 1850년 발표된 나폴리 어부들의 민요.
*사공의 노래 : 함호영의 시, 홍난파 작곡의 가곡. 1930년대 중반 이후의 작품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