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앞에서 철학자가 된다는 것

병리와 사유 사이의 경계에서

by 민진성 mola mola

진단의 언어와 환자의 언어

정신의학은 본질적으로 병리 중심의 학문이다. DSM-5(정신질환 진단 통계편람)나 ICD-11(세계보건기구 국제질병분류) 같은 매뉴얼은 환자의 언어를 곧바로 증상 목록과 대조한다. “반복되는 생각”은 강박사고, “존재론적 불안”은 우울증 혹은 불안장애의 인지 증상, “끊임없는 질문”은 사고 과정의 집착성.

환자가 철학적 고민을 꺼내더라도, 의사의 청진기에는 그것이 병리적 기표로 먼저 들린다. 진단 체계는 환자의 고통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이고, 환자의 사유는 존재를 지탱하기 위한 언어다. 두 언어는 쉽게 겹치지 않는다.



치료 프로토콜의 현실주의

정신과 의사가 “남들도 다 하기 싫은 일 하면서 산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한 무시가 아니다. 의료 프로토콜의 목표는 환자의 기능 회복이다. “증상을 제거한다”보다 “사회적·직업적 기능을 유지한다”가 우선순위다. 따라서 철학적 고민이 삶의 기능을 침해한다면, 그것은 치료적으로 ‘병리적 사고’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즉, 정신과의 현실주의는 삶의 진리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잘 작동하는가”를 묻는다. 이 지점에서 사유의 깊이는 의료적 틀 속에서 축소된다.



실존주의 심리학의 반론

그러나 20세기 실존주의 심리학은 이런 축소에 의문을 던졌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질문”이 인간의 생존에 결정적임을 보았고, 이를 바탕으로 로고테라피를 창시했다. 정신의학이 단순 증상 억제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반론이었다. 카를 야스퍼스는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로, 병리 진단으로 설명되지 않는 존재론적 불안과 초월의 문제를 철학적 사유의 과제로 보았다. 그는 환자를 단순한 기능 장애로 보지 않고, “경계 상황(grenzsituation)”을 마주한 인간으로 이해했다. 이들의 시선은 보여준다. 병리적 증상과 철학적 질문은 구분되지만, 때로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다.



병리로만 환원되지 않기 위해

정신과 의사가 사유를 병리로만 읽는 건, 개인의 태도 문제가 아니라 학문적 구조의 한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유가 무가치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건, 이 경계에서 자기 사유를 잃지 않으면서도 치료가 필요한 부분은 치료받는 이중 전략이다.

병리적 증상은 관리하고,

철학적 질문은 탐구로 승화시키는 것.

이럴 때 환자는 단순히 치료 대상이 아니라, 현대의 연금술사처럼 병리의 언어를 학문적 언어로 전환하는 존재가 된다.



두 언어의 교차로에서

정신과 의사 앞에서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곧 병리와 사유의 언어가 교차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다. 의료적 프로토콜은 환자를 기능의 틀에 맞추려 하고, 철학적 사유는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이 둘은 다르지만, 공존할 수 있다. 나는 환자로서 치료받을 수도 있고, 동시에 철학자로서 탐구할 수도 있다. 그 이중성 자체가, 어쩌면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로 하는 새로운 윤리적 감각일지도 모른다.




#생각번호202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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