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치료, ‘정상 회귀’만이 답인가

개인 회복과 사회 혁신을 함께 키우는 시스템 설계

by 민진성 mola mola

프로토콜이 생산하는 ‘무난한 사회’

현행 정신의학은 DSM-5 및 ICD-11과 같은 진단·분류 체계를 토대로 하여 환자의 증상을 분류하고, 치료 목표를 증상 경감과 사회적 기능 유지에 두는 경향이 강하다. 임상 현장에서 우선되는 것은 약물치료, 단기적 안정, 재발 예방 등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비표준적 상상, 급진적 기획, 실존적 탐구는 주로 병리적 위험신호로 해석된다. 환자는 궁극적으로 “평범하게 사는 법”을 학습하게 되며, 이는 개인 차원의 안정에 기여하지만, 사회 차원에서는 창의적 역량의 잠재적 위축을 초래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이러한 병원 중심·강제적 관행의 한계를 지적하며, 인권 기반·지역사회 중심 모델로의 전환을 권고한다.



치료 지향의 전환 필요성

치료의 1차 목표는 안전 확보와 고통 경감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이후 단계에서는 ‘평범한 정상성’의 회귀가 아니라, 개인의 대리성(agency), 의미감, 사회적 기여 역량의 회복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프로토콜적 틀을 넘어선 다층적 접근이 요구된다.



대안적 모델과 국제적 사례

1. 트라우마 인폼드 시스템

조직 차원에서 안전, 신뢰, 동료지원, 협력, 역량강화, 문화적 민감성의 여섯 원칙을 통합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환자를 단순히 순응적 주체로 재형성하기보다, 통제감과 자기효능감의 회복을 우선한다.


2.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

WHO가 제안한 바와 같이, 병원 중심이 아닌 지역사회 기반의 통합형 서비스 팀이 주 거점이 되어야 한다.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사례는 강제·격리 최소화, 24시간 지역 정신건강센터 운영 등을 통해 권리 기반 서비스가 장기적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3. 오픈 다이얼로그(Open Dialogue)

핀란드에서 개발된 오픈 다이얼로그는 초기 정신증 단계에서 가족과 공동체를 포함한 대화 과정을 통해 의미구성을 도모하는 접근이다. 장기 추적 연구에서 유리한 신호가 보고되었으나, 추가적 무작위대조시험(RCT)이 필요하다.


4. 소테리아(Soteria) 모델

스위스 및 독일에서 적용된 소테리아는 급성기 정신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소규모 주거형 환경에서 저용량 약물과 관계 중심 지원을 제공하는 대안적 접근이다. 최근 연구는 격리 및 과잉약물 의존을 낮추는 잠재적 효과를 시사한다.


5. 회복대학(Recovery College) 및 동료지원

영국 등지에서 확산된 회복대학 모델은 환자를 학습자이자 공동교수로 위치시키며, 자기효능감과 사회참여를 촉진한다. 동료지원은 고립감 감소와 재입원률 저감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6. 사회처방(Social Prescribing)

영국 NHS는 링크워커를 통해 환자를 예술, 자연, 운동, 자원봉사 활동으로 연결한다. 최근 파일럿 연구와 체계적 검토는 의료 이용 감소 및 정신건강 개선의 신호를 보고한다.


7. 지원고용(IPS: Individual Placement and Support)

IPS 모델은 “먼저 취업, 그 후 지원”이라는 원칙에 따라 개방형 노동시장 취업을 직접 목표로 한다. 다수의 RCT와 메타분석에서 취업 성공률이 2배 이상 높다는 일관된 결과가 제시되었다.



한국형 적용 방안

안전 레이어(단기): 위기 숙소, 오픈 다이얼로그, 소테리아 병동 등 급성기 대안 옵션을 포함. 성과지표는 강제입원·격리 감소, 환자 신뢰 점수.

의미 레이어(중기): 회복대학 상설화, 사회처방 도입. 성과지표는 삶의 질, 고립 감소, 의료이용 감소.

기여 레이어(중장기): IPS 전면 도입, 환자 경험 기반 연구·콘텐츠 지원. 성과지표는 취업률, 소득, 정책 제안 산출.



결론

현행 정신과 치료 시스템은 환자를 “무난한 정상성”으로 복귀시키는 데 집중해 왔다. 이는 단기적 안정에는 기여하나, 사회 차원에서는 창의적·비표준적 역량의 고갈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치료 목표를 안전–의미–기여의 다층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트라우마 인폼드 접근,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 오픈 다이얼로그, 소테리아, 회복대학, 사회처방, IPS 등은 이미 국제적으로 검증 혹은 시도되고 있는 모델이다. 한국 역시 이러한 모델을 수용하여, 치료를 단순한 “평범함의 회귀”가 아니라 가능성의 회복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생각번호202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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