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적의 학문, 거슬러 오르는 학습

원전에서 배우는 사유의 힘

by 민진성 mola mola

교과서가 주는 것과 주지 못하는 것

교과서는 현재 합의된 지식을 압축해 전달한다. 이론의 주요 골격, 반박과 대체의 역사도 간략히 요약된다. 그러나 교과서는 어디까지나 “최종 결과물”이다. 그 속에는 한때는 자명하게 여겨졌던 전제, 당대 사회와 철학이 제공한 맥락,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가 충분히 담기지 않는다.

토마스 쿤(Thomas Kuhn)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 지식이 직선적으로 누적되는 것이 아니라, 정상과학–위기–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불연속적 과정을 거친다고 지적했다. 교과서는 이러한 전환의 흔적을 최소화하고, 마치 안정적인 연속성이 있는 것처럼 서술한다. 하지만 실제 과학의 형성 과정은 훨씬 더 격렬하고 혼란스러웠다.



원전을 읽는 의미

원전을 거슬러 올라가 읽는 것은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학문이 형성되는 과정 자체를 체험하는 일이다. 아인슈타인의 1905년 논문은 오늘날의 정교한 수학적 언어 대신, 사고실험과 직관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 교과서가 정리된 결과물 뒤에 감춰진 사유의 날것을 확인할 수 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현대 교재보다 훨씬 난해하지만, 당시의 수학적 도구와 철학적 전제 속에서 물리학이 어떻게 새로운 세계관을 열어젖혔는지를 보여준다.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에서 과학이 “순수한 사실의 축적”이라기보다, 사회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구성된 것임을 강조했다. 원전을 통해 그 시대의 언어와 사고틀을 접하는 일은, 바로 이 과학의 구성적 측면을 체감하는 일이기도 하다.



축적 지식관의 양면성

과학자들에게는 효율성과 생산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연구 현장에서는 현대 교과서와 최신 논문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학문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축적의 과정을 추적하는 일이 더 깊은 통찰을 준다. 실패, 반박, 재구성의 역사를 따라가는 것은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왜 우리가 오늘날 이 지식을 ‘합리적’이라고 여기는가를 되묻는 계기를 제공한다.



거슬러 올라가는 학습의 힘

따라서 “거슬러 오르는 학습”은 단순한 고전 탐독이 아니다. 그것은 학문이 어떻게 합리성을 만들어왔는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작업이다. 쿤의 말처럼, 오늘의 정상과학도 언젠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될 수 있다. 그렇기에 원전을 읽는 행위는 단지 과거를 복기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전환 가능성을 상상하는 훈련이 된다.



결론

학문은 축적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그 축적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오히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교과서가 다루지 못하는 흔들림과 실패, 시대적 사유의 언어 속에서 우리는 오늘의 합리성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를 배운다. 거슬러 오르는 학습은, 누적된 지식을 더 깊게 이해하고 미래의 전환을 준비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이다.




#생각번호202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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