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학문적 열망과 윤리적 책임의 경계

by 민진성 mola mola

기괴했던 한 순간

고등학생 시절, 나는 한 유명한 생태학 교수가 한 강연에서 한 말을 들었다. 그는 세계화와 국제결혼, 인종 간 혼인이 늘어날수록 인류의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고, 그 결과 전염병에 더 취약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본능적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해야 합니까?” 그러나 그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그 미래가 궁금할 뿐, 대비책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아쉬운 건, 나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순간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집단적 위험을 마치 관찰 대상으로만 대하는 냉정한 시선이었다. 지성인이 위험을 앞에 두고도 대응보다 구경을 우선한다면, 그건 호기심이 아니라 광기에 가까운 무책임이 아닐까.



호기심의 윤리적 양면성

인류는 언제나 “알고자 하는 욕망”을 통해 문명을 발전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형이상학』 첫 문장에서 “인간은 본성적으로 알고자 한다”라고 했다. 이 호기심 덕분에 과학은 불가능해 보이던 영역을 현실로 전환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호기심은 언제나 윤리적 위험을 동반했다. 나치 독일의 의학 실험은 “인간의 한계가 궁금하다”는 호기심이 어떻게 잔혹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핵분열 연구 역시 처음에는 순수 과학적 호기심에서 출발했으나, 곧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핵무기로 전환되었다. 호기심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이 구체적 맥락 속에서 어떤 책임과 결합하는가에 따라, 인류의 진보가 되기도 하고 파멸이 되기도 한다.



구경꾼의 학문 vs 참여자의 학문

플라톤은 『국가』에서 지혜로운 자가 단순히 진리를 구경하는 데 머물지 않고, 공동체를 이끌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인은 탐구자가 아니라, 지혜를 기반으로 공동체의 선을 실현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학문은 점점 “객관적 관찰자”의 태도를 표준으로 삼았다. 과학자는 사회적 책임을 떠난 채, “사실을 밝히는 자”라는 정체성에 안주했다. 푸코가 지적했듯, 이는 중립적 위치가 아니라, 사실상 권력과 결탁된 선택이다. “나는 단지 궁금하다”라는 말은 곧 “그 지식이 낳을 사회적 파급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겠다”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호기심을 둘러싼 사례들

1. 우생학과 생명정치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우생학은 “더 나은 인류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것은 곧 강제 불임, 차별, 심지어 학살로 이어졌다. 호기심이 사회적 책임과 분리될 때, 지식은 곧 폭력으로 전환된다.


2. 핵무기 개발과 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 개발 후 “나는 죽음의 신이 되었다”라고 말하며 죄책감에 시달렸다. 호기심과 애국심이 결합한 연구였지만, 그 결과는 수십만 명의 희생을 낳았다. 여기서 학문적 호기심은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님이 드러난다.


3. 현대 생명과학과 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 CRISPR의 발견자들은 초기에 “인류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호기심에 몰입했지만, 곧 윤리적 파급력—디자이너 베이비, 생명 불평등—이 국제적 논쟁이 되었다. 호기심은 언제나 사회적 제도와 윤리의 장치 없이는 위험하다.



테크노사이언스적 책임

오늘날 지식인은 더 이상 “중립적 관찰자”라는 탈을 쓸 수 없다. 과학과 기술은 이미 정치·경제·사회와 얽혀 있으며, 이는 브루노 라투르가 말한 테크노사이언스의 현실이다. 테크노사이언스적 지식인은 단순히 사실을 밝히는 자가 아니라, 그 사실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쓰이고 어떤 결과를 낳는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지성인의 호기심은 반드시 윤리적 책임과 결합해야 한다. 그것이 담론화, 정책 제언, 대중적 교육이라는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고, 연구자의 내부 규범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나는 그저 궁금할 뿐”이라는 말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시대라는 사실이다.


호기심의 윤리

호기심은 인류를 이끌어온 원동력이지만, 동시에 인류를 위협해온 잠재적 광기이기도 하다. 내가 들었던 교수의 발언이 기괴하게 들린 것은, 바로 그 호기심이 인간적·사회적 책임에서 분리된 상태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성인은 반드시 행동가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담론을 열고, 사회적 상상력을 제시하며, 공동체가 위험을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호기심은 개인의 자유일 수 있지만, 지식인의 호기심은 결코 개인의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사회적 행위이며, 따라서 윤리적 책임을 요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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