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역사의 보편성
루소와 같은 사회사상가들은 인류가 땅에 선을 긋고 울타리를 세운 순간을 사유재산의 기원, 나아가 실추된 인간성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이는 사회적 맥락과 권력 관계, 인간 본성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읽어내는 해석이다. 그러나 자연과학적·기술사적 관점에서는 같은 장면이 전혀 다르게 그려진다. 나무를 반듯하게 자르고, 구멍을 뚫고, 배수로를 설치하는 기술이 없었다면 울타리는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삽, 도끼, 측량 기술은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울타리의 전제 조건이었다.
이처럼 사회과학은 의미와 제도를, 자연과학은 기술적 조건을 강조한다. 하나의 현상이지만 서로 다른 눈으로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 간극은 종종 대립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사건의 이중적 차원을 드러낸다.
바로 여기서 STS(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사회과학은 “왜 인간이 울타리를 세웠는가”를 묻고, 자연과학은 “어떻게 울타리가 가능했는가”를 탐구한다. STS는 두 질문을 하나의 장(場) 안에서 다룬다. 사회적 의미와 기술적 기반은 따로 떼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울타리의 발명은 권력과 제도의 문제인 동시에, 기술적 조건과 도구 사용의 결과다. STS는 이중성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며, 인간 활동을 사회-기술적 상호작용 구조 속에서 분석한다.
이 문제의식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역사학과 닿게 된다. 역사학은 시간을 축으로 삼아 사건을 배열하지만, 단순한 나열에 머물지 않는다. 그 속에서 일어난 상호작용의 구조를 해석하는 작업이 바로 역사학이다.
이 점에서 STS와 역사학은 겹친다. STS가 과학과 기술, 사회의 얽힘을 조명한다면, 역사학은 더 넓은 범위에서 인간의 제도·문화·기술 변화를 읽어낸다. 전통적 역사학이 사건의 전개를 중점적으로 다뤘다면, STS는 그 사건 속에 스며 있는 과학기술적 매개를 더욱 선명히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더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생긴다. 모든 학문은 역사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닌가?
자연과학의 법칙조차도 특정 시대의 문제의식과 도구 속에서 형성되었고, 사회과학은 사회적 상황의 산물이며, 인문학은 본래 과거의 흔적을 통해 현재를 해석한다. 결국 각 학문은 역사적 토양 위에서 싹튼 가지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학문이 곧 역사학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모든 학문은 시간성과 맥락성, 즉 역사성을 공유한다. 역사라는 기반 위에서 물리학은 자연을, 경제학은 교환을, 심리학은 마음을, 철학은 존재를 탐구해온 것이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사이에서 느껴지는 괴리는, 결국 우리가 현상을 단편적으로 보아온 방식의 한계다. STS는 그 간극을 잇는 다리를 놓는다. 그리고 그 다리의 기초에는 늘 역사가 있다. 학문은 시간 속에서 태어나고, 변화하며, 새로운 층위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역사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모든 학문의 모체이자 공통의 기반이다.
#생각번호2025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