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만을 위한 시스템의 민낯
한국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돈만 많으면 다 괜찮지 않아요?” 그러나 그것은 반만 맞다. 돈이 어느 선을 넘어서면, 오히려 괴로워지는 사회가 한국이라는 걸. 그 선은 딱 이렇다. 아파트 한 채와 금융자산 3~5억, 자녀 둘을 사교육 없이도 대학까지 보낼 수 있는 가정 연 8,000~1억 원 수준의 소득. 물론 이또한 상당한 수준의 부자들이지만, 이러한 중산층의 사람들에게 한국은 정말 잘 설계된 나라다. 그러나 그 위로 올라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1. 상속이 무섭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50%, 여기에 경영권 할증까지 붙으면 60% 이상 회수당할 수도 있다.
2. 유언이 무시된다
“이 자식에게만 주고 싶다”고 유언장을 써도, 나머지 자녀가 유류분 반환 청구를 하면 무조건 일부 줘야 한다.
3. 신탁과 지분 설계가 어렵다
차등의결권 주식은 상장사에선 불가능, 가업승계 신탁은 제도는 있지만 실무상 활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4. 부동산으로 피신하면?
보유세, 종부세, 양도세가 덮쳐온다. 법인을 통해 설계하면 세무조사 대상이 된다.
그래서 결국, "이만큼까지만 부자여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한선이 생긴다.
딱 그 위와 아래 사이, 즉, 상위 중산층 ~ 중간 중산층에게 한국은 최적화되어 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시스템을 누리며 부동산 한 채의 자산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교육 시스템 안에서 경쟁력 유지한다. 세금 부담은 있지만 무너질 만큼은 아니다. 이 계층은 사실상 한국 사회의 법, 정책, 정서적 합리성의 설계 기준점이다.
한국의 상속, 신탁, 법인 설계, 지배권 방어 시스템은 재산이 커질수록 불리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자산가들은 자녀 유학을 ‘겸해서’ 이민을 고려한다. 자산 일부를 미국·싱가포르·홍콩에 분산한다. 본인은 서울에 살지만, 법적 거주는 제주·세종·지방 소득세 없는 곳에 둔다. 설계의 자유가 더 큰 사회로 이주할 방법을 찾는다.
재산을 얼마나 갖는가보다 중요한 건, 그 재산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남기거나 유지할 수 있는가다. 하지만 한국은 설계의 자유를 주지 않는다. 누구에게 줄 것인지, 왜 그렇게 분배하고 싶은지, 어떤 구조로 가업을 이어가고 싶은지 그 모든 건 “법이 허락한 방식” 안에서만 가능하다.
한국은 전통적 가치, 강한 형식성, 평등주의적 감정이 강한 사회다. “모든 자녀는 평등해야지.”, “가업을 자식에게만 물려주는 건 불공평해.”, “신탁은 편법 아니야?”, “죽은 사람이 다 정하고 가면 가족이 상처받지 않겠어?”
이런 사회적 정서가 법과 제도를 ‘조정’이 아니라 ‘제한’의 방향으로 이끌어왔다. 그 결과, 합의하지 못한 가정은 소송을 택하고 설계하려던 사람은 ‘평등’이라는 이름 앞에 무력해진다.
부동산은 한 채까지만 자녀는 몇 명이면 좋고, 연봉은 세율 안 아픈 정도로, 유산은 평등하게 , 삶은 시스템 안에서.
그 틀을 벗어나려는 순간, 한국은 살아 있던 권리를 하나씩 접게 만든다. 그래서 진짜 부자는 불편하다.
불편해서 빠져나간다. 빠져나간 그 자리를 형식적 평등이 메운다. 제도의 주요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정책의 효율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상위 부자들이 외국으로 유출되도록 유인하는 현재의 정책 구조가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2025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