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왜 반복되는가

인간의 한계, 철학의 순환, 그리고 진자의 사상

by 민진성 mola mola

철학은 완전한 해답이 아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이는 피로한 교훈이 아니라, 냉정한 관찰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유와 평등 사이를 오가고, 규제와 자율 사이에서 진동하며, 공동체성과 개인주의 사이를 줄타기한다. 마치 진자처럼. 이유는 단순하다. 철학은 해답이 아니라 해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어떤 시대의 고통 앞에서 질문을 던진다. 이 고통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철학을, 사상을, 이념을 끌어다 붙인다. 자유주의가 해답처럼 보이는 시대가 있고, 평등주의가 유일한 길처럼 여겨지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철학도 완전한 해답이 되어주지 못한다. 왜일까?



관점의 진자 운동

헤겔은 ‘정명-반명-종합’이라는 변증법을 통해 진리의 발전을 설명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종합이 완결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정명의 시작이 된다. 가령, 불평등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평등주의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게 되고, 억압에 대한 반동으로 다시 자유주의가 힘을 얻는다.

이는 단순한 이념의 문제만이 아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확증편향, 자기보존 본능, 인지 자원의 한계를 가진 존재다. 우리는 모든 관점을 한꺼번에 볼 수 없고, 모든 구조를 동시에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때 그때 가장 절실한 고통에만 집중하며, 그 고통을 만든 과거의 철학을 비판하게 되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과정철학의 딜레마

오늘날 우리가 의지하는 철학은 종종 포스트모더니즘이나 과정철학 같은, 맥락과 흐름, 구성적 관점을 강조하는 철학이다. 이들은 기존의 구조적 환원주의를 비판하며, 인간을 단순히 ‘개별 요소’로 보지 않도록 경계한다.

그러나 이 철학들이 비판을 유보하는 순간, 자기 스스로 비판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형이상학적 무기력’에 빠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과정이라면, 비판할 구조는 무엇인가? 모든 것이 해석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있는가? 결국 이 철학들도 진리를 향한 하나의 시도일 뿐, 절대 해답은 아니다.



왜 반복되는가 — 인간의 구조적 한계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인간이 늘 같은 실수를 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항상 불완전하게 볼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관점을 선택해야 이해할 수 있고, 선택한 관점은 다른 관점을 밀어낸다. 그래서 늘 뭔가를 놓친 채 해석하고, 놓친 그것이 나중에 문제가 되어 다시 등장한다. 역사는 그렇게 순환한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듯하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다른 질문을 던지고, 조금씩 더 정교한 해답을 찾아간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력해야 하는가? 아니다. 해답은 없지만, 더 나은 해석은 가능하다. 철학은 완전한 진리를 주지 않지만, 당장의 통증을 덜어줄 진통제 역할은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해답은, 어쩌면 다음 세대의 비극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 당장의 정당함을, 시간이라는 비판 앞에 세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같은 실수를 조금 다르게 반복할 수 있게 된다.


진리는 정체된 것이 아니다. 반복 속에서 조금씩 변주되고, 변주 속에서 또 반복된다. 역사는 어쩌면 진리와 오류 사이의 춤이고, 그 춤에 참여할 수 있는 태도는 ‘완전한 이해’가 아니라 ‘끊임없는 경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질문은 남는다.
우리는 지금, 어떤 철학을 살고 있는가?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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