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은 왜 고급이 되었는가

낡은 도시에서의 희소성과 청년 주거의 역설

by 민진성 mola mola

신촌, 이름만 들어도 세련되고 젊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가 인접한 이 대학가는 오랫동안 ‘문화와 트렌드의 상징’으로 회자되어 왔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신촌역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 보면, 1980년대에 지어진 낡은 다가구, 90년대식 상가주택, 좁고 어두운 골목이 이어진다. 의외의 풍경이다. 도심 한복판, 그것도 주요 대학교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 왜 이렇게 낙후되어 있을까?



재개발이 멈춘 곳, 도시재생도 더딘 곳

신촌은 ‘도심 재개발’에서 밀려난 곳이다. 정비구역 지정도, 대규모 재건축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30년 넘은 건물들이 서로 기대어 있는 구조다. 땅은 조각조각 나뉘었고, 다세대·다가구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한 필지에 여러 명의 소유자가 얽혀 있고, 상업적 이해관계도 얽혀 있어 공동 개발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서울시는 이 지역을 ‘저층 주거 보존구역’, ‘도시재생 대상지’로만 남겨두었다. 결과적으로, 신촌은 변화하지 않은 채, 낡아가기만 하는 도시가 되었다.



희소성의 프리미엄, 고급의 역설

신촌의 신축 원룸은 고급 주거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것은 품질의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동네의 전반적인 낙후성이 만든 ‘상대적 우위’다. 달리 말해, “고급이 고급이 된 것이 아니라, 다른 대안이 없어서 고급이 된 것이다.” 노후도가 심한 동네일수록 ‘그나마 괜찮은 집’이 곧 프리미엄이 된다. 그리고 그런 집이 매우 적기 때문에 더 비싸다. 이처럼 ‘노후 도시에서의 희소 주거’는 시장 논리에 따라 고급화된다. 문제는, 그것이 ‘질적 진보’가 아니라 ‘대안 부재로 인한 가격상승’이라는 점이다.



실수요자의 선택지는 점점 사라진다

이런 구조는 결국 청년 실수요자에게 가장 가혹하다. 싼 집은 너무 낡았고, 괜찮은 집은 너무 비싸다. 그 중간은 없다. 공공임대는 한정되어 있고,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자격도 까다롭다. 중간이 사라진 시장, 즉 ‘양극화된 주거 시장’에서 청년들은 ‘선택할 수 없음’을 선택하게 된다.



어떤 개입이 필요한가

이 현상은 단지 신촌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서울의 원도심 대부분이 이와 유사한 조건을 갖고 있다. 공공정책은 그동안 고급 주택의 규제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중간 주거’를 공급하는 시장 설계가 필요하다. 공공이 민간 리모델링을 지원하는 ‘중간지원형 주택 모델’, 청년 수요자에게 임차권이 아닌 주거 선택권을 보장하는 구조, 도시재생사업 내 실질적 주거환경 개선을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 설계. 이런 방식 없이는, 노후 도시의 ‘가짜 고급화’는 계속될 것이다.



신촌의 고급 원룸은 고급이 아니다. 그저, 낡고 방치된 도시 속에서 그나마 나은 집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현실을 외면할수록, ‘그나마 나은 삶’조차, 더 많은 사람에게 멀어져 갈 것이다.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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