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가 아파트엔 개입하고, 청년 주거엔 침묵하는가

규제의 역설, 그리고 우리가 보지 않는 사각지대

by 민진성 mola mola

서울 강남의 20억 아파트에는 정부의 규제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전매 제한, 대출 한도 제한(LTV), 종합부동산세 강화, 청약 자격 제한,실거주 의무 부과. 이 모든 것은 부동산 투기 억제와 시장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된다. “부자는 부당한 이익을 얻지 않아야 하며, 국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입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정작, 서울의 다수 청년이 살아가는 주거 공간, 신촌의 노후 원룸, 창문 없는 반지하, 곰팡이 슨 다세대 주택, 단열 안 되는 옥탑방 등에는 질적 규제나 가격 조정 장치도 존재가 부족하다. 이 아이러니는 단순한 정책의 편향이 아니라, 정의가 누구의 삶에 개입하고, 누구의 삶에는 침묵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고가는 규제하고, 저가는 방치한다는 구조

왜 고가 아파트에는 그렇게 많은 규제가 몰리는가? 그 이유는 명확하다. 정치적으로, 상징적으로, 시장 안정의 ‘타겟’으로 삼기 쉽기 때문이다. 부자들에 대한 규제는 정치적 메시지가 강하다. 언론 보도가 용이하고, “우리는 투기를 막고 있습니다”라는 선언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소비자물가와 연동되는 핵심 변수다. 반면, 청년 주거는 시장 전체에 위협이 되지 않고, 정치적 상징성도 없으며, '개인의 선택'으로 취급되기에 개입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청년 주거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재난 상황에서의 ‘물 거래’를 예로 든다. 생존이 걸린 조건에서 생수를 비싸게 팔면, 그것은 단순한 시장 거래가 아닌 기회주의적 착취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 거래는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절박함에서 비롯된 복종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청년 주거도 다르지 않다.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직장을 오가기 위해 서울에 머물러야 하는 청년들은 주거를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거의 없다. 게다가 그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열악하고, 그 대가마저 비싸다. “원하면 안 살아도 되잖아”라는 말은 ‘탈출할 수 있는 사람만 인간적인 삶을 누려도 된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정의의 눈은 왜 이곳을 보지 않는가

샌델은 정의를 ‘공정한 절차’로 보지 않는다. 그는 정의를 “공동체가 귀하게 여기는 가치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본다. 그렇다면 묻자. “우리 사회는 왜 청년의 주거는 그 가치의 목록에 넣지 않는가?”, “왜 고가 아파트에는 규제와 감시가 가해지는데, 인간이 머무는 최소한의 공간에는 아무런 기준도 개입하지 않는가?” 사실상 ‘기본적인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주거’가 상품으로 유통되고,그 상품이 필수재로 기능함에도 불구하고 공적 기준이 부족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정의가 도달해야 할 다음 자리

이제 우리는 거꾸로 된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 다음과 같은 개입이 시급하다. 꼭 이런 정책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방향성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중간수준 주거의 공공 설계를 통해 공공임대와 민간의 중간지대에서 ‘적정 가격 + 적정 품질’ 주택 공급한다. 청년 주거 바우처의 실질화를 통해 보증금 대출이 아닌 월세 실수령 지원을 통해 체감 효과를 강화한다. 주거환경 질적 기준의 명시와 고지 의무화하여 방음, 단열, 채광, 안전 등 일정 기준 이하의 주택에 대해 등급 고지 및 거래정보를 공개한다. 대학가 주변 ‘청년 주거 쿼터제’를 도입히여 고등교육기관 밀집지역에 청년 대상 주거 비율 최소 20% 확보를 의무화한다.


이러한 조치는 더 나은 삶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조건을 ‘거래’가 아닌 ‘보장’의 영역으로 옮겨오자는 최소한의 요청이다.



정의는 지금, 고가 아파트에 도착해 있다. 부자들의 거래엔 법이 개입하고, 그들의 대출엔 기준이 붙으며, 그들의 거주 여부는 통계로 추적된다. 하지만 청년들이 어떤 공간에서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국가도, 언론도, 사회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정의가 ‘누구에게 얼마를 규제할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진짜 정의는 ‘누구에게도 아직 닿지 못한 삶의 자리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것’이어야 한다.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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