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와 청년 주거의 역설
“재난 현장에서 생수를 비싸게 팔아도 괜찮은가?”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 질문을 던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 된다”고 말하지만, 자유주의적 시장경제 원칙은 이렇게 반문한다. “강요한 게 아니잖아요. 돈을 낼 수도 있고, 안 낼 수도 있는 선택의 문제 아닐까요?” 샌델은 이런 반론에 맞서 이렇게 말한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절박함’이다.” 물은 생존의 필수재고, 그것이 부족한 상황은 시장 이전의 윤리적 판단이 개입해야 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신촌 역시, 구조적으로는 재난 현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 개의 대학교(연세대·이화여대·서강대)가 밀집한 이 지역은 수많은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의 생활 기반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제공되는 주거 환경은 낡고 비위생적인 경우가 많다. 샤워기가 부러진 화장실, 곰팡이가 피는 벽지, 방음이 되지 않는 얇은 창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세 60만~80만 원 수준. 학생들은 묻는다. “왜 나는 이렇게 비싼 돈을 내고도 불편하게 살아야 하지?” 그런데 사회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시장 가격’이기 때문이다.
샌델은 '자유의지에 기반한 거래'라는 개념을 근본적으로 의심한다. 그가 보기에, 거래가 정당하려면 세 가지가 보장되어야 한다. 선택의 자유 (자발성), 정보의 대칭성, 협상의 공정성. 하지만 신촌 주거 시장에는 이 셋 모두가 결여되어 있다. 학생에게는 거주지 선택의 여유가 없고, 임대 매물은 관리 상태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하며 공급자는 수요를 압도하는 위치에서 사실상 ‘비싼 필수재’를 강매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시장거래가 아니다. 비상 상황에서 이익을 취하는 ‘기회주의적 착취’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정부는 이 구조에 개입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시장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 “싫으면 안 살 수도 있는 거잖아요”라는 논리. 도덕적 인내 서사. “대학생 때는 고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정서. 공공임대는 효율성 문제로 축소. “세금 낭비”, “시장 왜곡”이라는 비난 회피.
이 결과, 청년 주거 문제는 사적인 불편으로 간주되고 정치·사회적 공공의 문제로 승격되지 못한다. 즉, ‘정의’가 도착하기 전에 논의의 자격 자체를 박탈당한 것이다.
신촌의 신축 원룸은 고급 주거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것은 품질의 우월성 때문이 아니다. “그나마 괜찮은 집”이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없기 때문”에 비싼 것이다. 전체적으로 낡고 위험한 주거환경 속에서, 엘리베이터가 있고 곰팡이가 없으며 단열이 되는 집은 단지 ‘정상적 조건을 갖췄다’는 이유만으로 프리미엄이 붙는다. 이것은 마치, "재난 현장에서 생수를 파는 자판기가 고급품으로 불리는" 모순적 구조와 같다.
샌델은 ‘정의’를 단순한 공정 절차가 아니라, 공동선에 기반한 공동체적 판단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신촌에서 대학생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집을 보장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공동선이 아닌가?” 그 대답이 “그렇다”라면, 시장에만 맡겨 둘 수 없다. 공공이 개입해야 하고 ‘중간수준 주거’를 설계해야 하며, 최소한의 주거권을 시장가치가 아닌 정의의 이름으로 보장해야 한다.
지금 신촌의 주거 시장은 필수재를 독점한 비공식 재난지대와 같다. 샌델은 말했다. “정의는 절박한 이의 편에 서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누가 신촌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편에 서고 있는가.
#202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