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내려가기 위해 나는 오래 망설인다
누군가는 쉽게 사랑하고, 또 쉽게 떠난다. 서로의 이름을 부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을 잡고, 이별에도 담담히 돌아서며 다시 일상으로 걸어간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조금 부럽다. 어쩌면 그들은 감정에 더 솔직하고, 삶을 더 유연하게 사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너무 많은 전제를 점검하고, 내 마음 하나 꺼내기까지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상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방식으로 말하고, 책임지는 사람인지, 나는 사랑보다 구조를 먼저 바라본다. 사랑이 감정이라면, 나는 그 감정이 안전하게 흐를 수 있는 하수도를 먼저 설계해두지 않으면 애초에 그 감정을 시작할 수가 없다.
때로는 이런 내가 참 피곤하게 느껴진다. ‘사랑은 그냥 하는 거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냥’이 얼마나 무서운 단어인지 생각한다. 그냥 좋아서, 그냥 함께 있고 싶어서, 그냥 명의를 함께 올리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나한테는 ‘낭만’이 아니라 ‘공포’처럼 느껴진다. 그저 감정이 흐른다고 해서 모든 경계를 허물어도 되는 건 아니라고, 나는 나에게 자주 말해왔다.
내가 쉽게 사랑하지 못하는 건, 사랑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깊게 사랑하고 싶다. 상대의 말투, 삶의 철학, 결정 방식, 그리고 불안을 견디는 태도까지 그 모든 것을 지켜본 뒤에야 비로소 마음을 연다. 그건 계산이 아니라 존중이다.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싶다는, 진심에서 비롯된 조심스러움이다.
사랑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맞다. 자유로워야 오래 간다. 그런데 내가 바라는 자유는 상대를 믿지 않아도 괜찮은 자유가 아니라, 상대를 충분히 믿을 수 있어서 아무것도 묻지 않아도 되는 자유다. 그 자유는, 의심조차 품어도 괜찮은 관계 안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처럼 쉽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누군가를 깊게, 진짜로 사랑할 수 있다. 쉽게 시작하지 않아서 더디지만, 한 번 내 안에 뿌리를 내리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사랑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그 시작조차 쉽게 허락하지 못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도.
#2025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