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

깊게 내려가기 위해 나는 오래 망설인다

by 민진성 mola mola

사랑이란 말이 너무 가벼워 보일 때

누군가는 쉽게 사랑하고, 또 쉽게 떠난다. 서로의 이름을 부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을 잡고, 이별에도 담담히 돌아서며 다시 일상으로 걸어간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조금 부럽다. 어쩌면 그들은 감정에 더 솔직하고, 삶을 더 유연하게 사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랑보다 구조를 먼저 본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너무 많은 전제를 점검하고, 내 마음 하나 꺼내기까지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상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방식으로 말하고, 책임지는 사람인지, 나는 사랑보다 구조를 먼저 바라본다. 사랑이 감정이라면, 나는 그 감정이 안전하게 흐를 수 있는 하수도를 먼저 설계해두지 않으면 애초에 그 감정을 시작할 수가 없다.



‘그냥 사랑해’라는 말이 가장 어렵다

때로는 이런 내가 참 피곤하게 느껴진다. ‘사랑은 그냥 하는 거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냥’이 얼마나 무서운 단어인지 생각한다. 그냥 좋아서, 그냥 함께 있고 싶어서, 그냥 명의를 함께 올리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나한테는 ‘낭만’이 아니라 ‘공포’처럼 느껴진다. 그저 감정이 흐른다고 해서 모든 경계를 허물어도 되는 건 아니라고, 나는 나에게 자주 말해왔다.



내 사랑은 조심스럽지만 진심이다

내가 쉽게 사랑하지 못하는 건, 사랑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깊게 사랑하고 싶다. 상대의 말투, 삶의 철학, 결정 방식, 그리고 불안을 견디는 태도까지 그 모든 것을 지켜본 뒤에야 비로소 마음을 연다. 그건 계산이 아니라 존중이다.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싶다는, 진심에서 비롯된 조심스러움이다.



나는 자유롭고 싶다, 진짜 신뢰 위에서

사랑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맞다. 자유로워야 오래 간다. 그런데 내가 바라는 자유는 상대를 믿지 않아도 괜찮은 자유가 아니라, 상대를 충분히 믿을 수 있어서 아무것도 묻지 않아도 되는 자유다. 그 자유는, 의심조차 품어도 괜찮은 관계 안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쉽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사랑은 온다

나처럼 쉽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누군가를 깊게, 진짜로 사랑할 수 있다. 쉽게 시작하지 않아서 더디지만, 한 번 내 안에 뿌리를 내리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사랑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그 시작조차 쉽게 허락하지 못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도.




#202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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