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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침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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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아 Oct 12. 2020

그 날

 가로등 아래서 입 맞추던 날을 기억해. 새까만 하늘 아래, 밝은 조명을 받은 네 호박색 눈동자가 투명하게 빛나던. 그 눈으로 나를 가만가만 바라보던, 그 속에 가득 내가 담기던. 살랑, 귓가를 스치우던 한 줄기 바람 소리가 선명히 들릴 만큼 조용했던 골목은 고요하고 또 잠잠했어. 그 길을 가득 채우던 나지막한 너의 숨소리와 쿵쾅이던 내 심장이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건조하고 서늘한 가을의 공기는 우리 곁에서만 뜨겁게 끓어올랐지. 가볍게 떨리는 네 손을 보며,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인 것 같아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어. 손목에 찬 시계 초침 소리가 째깍, 째깍, 귀에 들리는 것만 같고 매초 매분이 기일게 늘어지는 것 같은 느낌,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이. 수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수백, 수천 개의 평행세계에 너와 나, 단 둘이만 갇힌 것처럼. 너와 맞닿아 있는 모든 살이 불에 덴 것 마냥 뜨거웠어. 쌀쌀한 바람도 차마 식게 하지 못할 만큼, 붉게 달아올랐던. 그 날을 기억해. 그 어떤 시간보다 뜨거웠던, 아름다웠던, 조용했던, 너와 나의 소중했던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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