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믿는 연습

사물을 밀면 밀리는 것을 아는 것.

by Rumina

믿음은 인간이 위대한 이유 중 하나이다.

사람은 개인의 신념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서로를 믿음으로 큰일을 함께 이룬다.

때로는 신에 대한 믿음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하기도 한다.

믿음은 삶의 가장 기초 토대이다.

믿음이 없이는 무엇 하나 쌓아 올릴 수 없다.

삶에 한 올의 뿌리도 내릴 수 없다.

뿌리내리지 못하는 삶에는 성장도, 기쁨도 없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 중에는 또 다른 내용이 있다.

종을 울리고 먹이를 주다가 갑자기 빈 접시를 준다.

개는 같은 경험을 반복한 후에 빈 접시에 익숙해진다.

이제 개에게 “종 = 빈접시”가 되었다.

이후 다시 종을 울리고 때로는 먹이를, 때로는 빈접시를 주며 불규칙한 조건을 제공한다.

개는 종소리와 먹이, 빈접시의 연관성을 파악할 수 없게 되어 혼란에 빠진다.

천천히 광견 상태로 변해간다.


사람에게도 일관된 신호가 중요하다.

미국의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이중 구속(double bind) 이론을 통해 모순된 메시지가 정신분열을 일으킬 수 있음을 설명했다.

가장 흔한 예가 실수를 했을 때 “잘한다, 잘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언어는 ‘잘한다’인데 전달하는 말투와 태도는 부정적이다.

아이를 실컷 혼내고 난 후, ‘다 널 위해서 그런 거야’ 같은 말을 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


아이에게는 ‘말을 잘 들으면 사랑받는다’라는 기대가 있다.

그러기에 양육자의 말은 깊이 흡수된다.

말과 태도가 다른 경우, 즉 한 번에 이중 메시지를 전달할 때 아이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모순적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는 어느 방향으로도 확신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자기 신뢰를 잃게 된다.


스스로를 신뢰하는 순간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된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믿음과 기대는 다르다.

기대는 사람을 향하고, 믿음은 진리를 향한다.

진실은 변하지 않지만. 사람은 변한다.

따라서 믿음에는 배신이 없다. 배신은 기대에 있다.

사람은 누군가의 기대를 채워 줄 능력이 없다.

부모라도 그렇다. 아이의 입장과 마음을 완전히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람은 믿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사랑해야 할 존재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믿음은 아마도 ‘기대’ 일 것이다.

기대는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고 했던 어느 작가의 표현처럼,

기대로 살아가고 기대로 실망하는 것이 사람의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신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신을 믿지는 못했다.

믿음을 몸으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믿지 못함’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긴 침묵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침묵 중 ‘나를 믿지 못해서 신도 믿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사건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때문이었다.

내가 자신을 믿지 못했던 것은 어린 시절의 영향이 맞다.

하지만 원인의 핵심은 어쩔 수 없는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어쩔 수 있는 내 안에 있었다.

오래 힘겨웠던 믿음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 해졌다.


자신을 믿으면 된다.

그러면 신도, 세상도 믿을 수 있다.


자신을 믿는 방법은 진리를 아는 것이다.

진리는 말 그대로 ‘참된 이치’이다. 진실은 뒤집어질 수도 바뀔 수도 없다.

몸에 흐르는 질서와 생명은 변함이 없다.

그 흐름을 느끼고 알 때, 외부의 질서도 자연스럽게 신뢰할 수 있다.

우리는 늘 외부의 조건을 좇아 달렸다.

자신을 찬찬히 느끼며 그 느낌을 따랐던 시간은 드물다.

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마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외부를 향한 기대와 실망으로만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느끼고 자신을 믿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예술가나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게 깊이 집중한다.

자기를 믿는 연습은 작은 일에서 시작할 수 있다.

사물을 밀면 밀린다. 밀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다.

이 단순한 진리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곳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럴 때 손 끝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며 비로소 자신에게, 세상에 내려앉게 된다.




keyword
이전 22화다른 차원의 문을 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