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생산'이라 쓰고 '백신 허브'로 읽는다

2021 코로나 팬데믹 소고

by 누두교주

제품을 수급하는 데는 크게 4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Brand(상표권자)가 직접 디자인하고 소재를 결정해 자체 공장에서 생산하는 방식이다.

현대 자동차, 삼성 반도체 등이 제품 설계를 직접 하고 직접 원, 부자재를 수배하고 자체 공장에서 생산해서 유통하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가장 바람직하고 믿을 수 있는 방식이지만 막대한 투자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두 번째는 제조업자 설계 생산방식 (O.D.M. 原始设计制造商)이다.

설계, 개발 능력을 갖춘 제조업체가 유통망을 확보한 판매 업체(Brand)에 공급하는 생산방식이다.

주로 오랜 기간 특정 제품 생산에 특화된 전문성이 높은 업체들이므로, 주문자의 입장에서도 제품의 품질을 신뢰할 수 있다. 보통 지명도 있는 Brand와 설계, 제작, 생산 능력은 있으나 이상적인 유통망을 갖추지 못한 생산 업체의 협업 방식이다.

예를 들면 자체 공장이 하나도 없는 Nike의 경우나 2주 간격의 새로운 collection을 출시하는 H&M, Zara 같은 업체는 상당 부분 이러한 방식에 따라 제품을 수급하고 있다. 라벨은 주로 Brand가 지정하는 라벨을 붙인다.


세번째는 주문자 상표 부착방식 (O.E.M. 贴牌이다.

Brand가 제품을 디자인(기획)해 생산 회사에 의뢰, 반제품 또는 완제품을 납품받아 판매하는 경우이다. Brand가 원하는 원, 부자재를 준비해 Brand의 작업지시에 충실히 따라 생산한 후 약속한 시간에 납품해야 한다. 애플처럼 디자인(제품 개발) 능력과 유통망만 있고 생산 및 소재 수급 능력이 없을 경우 대만의 ‘폭스콘’에 생산 하청을 주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만드는 사람은 그저 Brand에서 시키는 대로 라벨을 붙이고 만들라는 대로 만들고 원, 부자재값 + 공임에 일정 마진을 더한 것만 받고 Brand가 얼마에 팔던 일체 관여할 수 없는 방식이다.

소재를 준비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있어야 수행이 가능한 방식이다.


가장 기초적인 방식이 수탁가공무역(C.M.T. 来料加工)방식이다.

문자 그대로 ‘삵 품팔이’이다. 모든 원, 부자재를 Brand로부터 공급받고, 시키는 대로 가공해 정해진 시간에 납품하는 방식이다. 하청 공장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 Brand가 소재를 생산할 인프라는 없지만 인건비가 싼 중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과 거래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아래 한국 무역협회의 수탁가공무역의 정의는 좀 어렵긴 하지만 참고할 만하다.

무역업자가 다른 나라의 노동력 또는 기술을 이용하고자 하는 경우(주로 싸기 때문에)에 발생되는 거래형태로 수출과 수입이 하나의 계약에 따라 연결되어 이루어진다. 가공임(가득액)을 대가로 원자재 전부 또는 일부를 거래 상대방의 위탁에 의하여 외국으로부터 수입하여 이를 가공한 후 위탁자 또는 위탁자가 지정하는 자에게 수출하는 거래이다.


원자재 조달에 있어서 유상, 무상의 여부에 따라 유환수탁가공무역과 무환 수탁가공무역으로 나뉘는데 일반적으로 (공장은 돈이 없으므로) 무환 수탁가공 무역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국 무역협회, https://www.kita.net, 검색일 : 2020.12.02. 괄호 표시와 밑줄은 필자)


2021년 5월 13일 희한한 보도를 보고 한동안 낄낄거렸다.

보도 제목은

이호승 靑정책실장 “한미 백신 파트너십, 정상회담 주된 의제”이다.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보도 내용을 보자!


이호승 실장은 이날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미국은 백신에 대한 원천기술과 원부자재를 가지고 있고 한국은 세계 2위 수준의 바이오 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두 개를 결합하면 한국이 백신 생산 글로벌 허브가 될 수 있다는 비전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조금 더 구체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이 이야기를 다른 말로 바꾼다면 아래와 같다.


한국은 백신에 대한 원천기술과 원, 부자재 생산능력이 전혀 없다.


그러나 세게 2위 “수준”의 (2위의 의미가 아니다. 즉, 현재 글로벌 백신 생산 허브인 인도, 그리고 백신 자체 생산이 가능한 EU, 일본 등을 제외한 다음 수준이라는 이야기이다) 하청 생산이 가능한 나라이므로 미국에서 백신 원, 부자재를 공급해 준다면 가공임을 받고 열심히 생산해 미국이 보내라는 데 보내 줄 수 있다.


이것을 이름 하여 백신 허브라고 한다.


한발 더 깊이 간다면, 우리가 백신 생산에서 담당하는 공정은 아래와 같다.


삼성 바이오 로직스가 그동안 세계적인 제약사들의 바이오 의약품을 생산한 경험이 있어,

모더나 백신의 마지막 '병입 공정'을 감당할 수 있다.


즉 생산한 백신을 병에 담는 일이다.


백신 개발은 물론 원, 부자재 생산도 못해 간신히 ‘병입 공정(병에 담고 뚜껑 닫는 어려운 작업)’하는 수준이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자 불러서 사진 찍으면서 발표할 이야기인가?

미래의 먹거리 중 하나가 바이오산업임을 통찰한 우리나라 기업가는 하나가 아니다.

청와대 청책실장은 이러한 기업에 합리적 지원과 배려를 기획하는 자리가 아닌가?

지금 세계 50위 내에 드는 국내 제약 업체는 한 군데도 없다. (병원은 여러 곳 있다)

반도체처럼 한국이 전 세계 바이오산업을 이끄는 작지만 강한 나라의 위상을 위해 분투하지 못할지언정, 어떻게 삯품을 팔겠다고 공무원이 나서서 나불대는가?

오늘 비록 삯품을 팔더라도 내일 반드시 제품을 직접 디자인하고 생산해 내 Brand를 붙여 팔 꿈을 꾸지 못하는가?


“Vaccin hub"가 지금 우리에게 갖는 함의는 백신을 제대로 만들지도 못하고 제때에 구하지도 못하며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전략적 고민도 없는 뇌 보따리 안에 아무것도 없는(脑袋里啥也没有) 고위층이 서식하는 희한한 나라"의 의미이다.

그들은 삯품이라도 팔아가며 어떻게든 기술과 정보에 접근하려는 기업의 고단한 등허리에 올라타 거들먹거리며 조국과 민족을 위해 거짓말하고 있다.(아니면 정말 모르거나?)

언제부터인가 푸른 기와(靑瓦) 집이 청개구리(靑蛙)들이 모여 사는 집으로 바뀌어 쩝쩝 거리는 소리만 가득하니 처음 약속대로 방을 빼서 광화문으로 나 앉을 일이다.

위 기사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https://www.donga.com/ISSUE/Vote2016/News?m=view&date=20210512&gid=106877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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