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미국, 돈 그리고 정의

마이클 샌델을 읽고

by 누두교주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의 이름은 여러 번 들었지만 거의 의식적으로 밀쳐 두었던 책이다. 미국 학자가 감히 정의(正義) 운운한다는 것이 웃겼다. 원주민을 학살하고 들소를 멸종시키고 노예를 수입해 부를 늘린 족속들이 어떻게 정의를 논할 수 있는가? 자국의 비윤리적인 과소비를 유지하기 위해 세계 도처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월급 받는 용병들을 보내 최신 무기를 현지인을 대상으로 시험하는 파렴치한 국가의 학자가 정의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웃겼다. 돈을 버는 방법 또는 합리적 부의 축적을 가능케 하는 전문 이론이라면 모를까!


반전은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의 실례를 절묘하게 풀어가는 설명은 ‘어라~ 요것 봐라’하는 건방진 생각을 품게 했다.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 What's the Right Thing to Do?)』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들은 아직도 문득문득 그 답을 고민하게 한다.


1. 장기이식을 하지 않으면 죽는 다섯 사람이 있다. 건강한 한 사람을 희생시켜 다섯 사람을 살리는 것은 정의인가?


2. 일본의 과거사는 지금 시점의 일본 사람들이 사과할 일인가?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저지른 것을 본 적도 없으며 일본인으로 태어나는 스스로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3. 돈을 많이 내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잘못일까? 그 한 명을 입학시켜 돈이 없어 그 대학에 가지 못하는 훌륭한 학생 100명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는데?


4. 자유의사로 맺은 계약에 의해 대리 출산을 했다면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개인 간의 정당한 약속을 실천한 것 아닌가? 등등..............


그가 제기하는 문제에 대한 느낌은 우선 아주 당연한 것 같은 것을 진지하게 질문해와 당황스러웠다. 다른 면에서 생각해 보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마주하기 거북해 남의일로 미루어 두었던 경우들이라서 읽어 내려가기 불편한 부분도 적지 않았다. 그가 제기하는 질문의 대한 대부분의 답은 “아니오”인 것 같은데 왜 아닌지를 설명하려면 갑자기 ‘아다다’ 누나 또는 ‘여로’ 형의 동생이 된 것처럼 혀가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대부분의 실례와 일부 상상한 상황을 섞어 제기된 그이 문제들은 장자(莊子)의 그것처럼 결론 없이 계속 이어진다. 주입식 교육에 따른 ‘찍기’에 숙달된 나 같은 사람은 당황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의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흐릿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무엇인가가 있다. 아마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것들을 모아 공통점을 추출해 낸다면 어쩌면 그것이 이 시대의 ‘정의’ 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의라는 낱말이 왜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일정기간 나는 정의를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내 삶의 어떤 순간에는 가장 중요한 가치였었는데.....



다 읽고 조갈이 심하게 났다. 쓰다 달다 결론을 내지 않았으니 들이받을 건덕지가 없었다. 마치 바람 심한 봄날에 어딘가에서 날아온 기왓장 조각에 머리를 맞긴 했는데 던진 사람이 없으니 욕할 사람이 없는 느낌 같았다. 그래서 게걸스럽게 이 친구의 다른 책들을 검토해 보았다. 내 나름대로는 ‘정의’의 담론 범위를 좁혀 결론으로 삼으려는 책이 보였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 What Money Can't Buy : The Moral Limits of Markerts)』참 세속적인 제목이고 빨간 고무줄에 묶인 달러 뭉치를 도안으로 한 표지는 유쾌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이 책은 한마디로 대단한 충격이었다. 만약에 누군가 미국의 부끄러운 모습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 한 권이면 충분할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미국의 치부를 아무 거리낌 없이 나열해 나가며 자기의 논리를 학문적 틀에서 명쾌해 전개해 나갈 수 있는 역량에 미국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상상하는 미국과 실제 미국의 차이는 어쩌면 이런 부분에 있는 것이 아닐까?


- 1박에 82달러를 내면 교도소 감방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 6,250달러를 내면 인도의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얻을 수 있다.


- 돈을 내면 멸종위기 동물을 직접 사냥할 수 있다. (코뿔소나 바다코끼리 등. 일부는 그렇게 희생되지만 받은 돈은 더 많은 번식과 보호를 위해 사용한다)


- 연간 15,000달러를 내면 기다림 없이 의사의 진료를 아무 때나 받을 수 있다.


- 돈을 내면 명문대에 자녀를 입학시킬 수 있다.


- 이마나 신체 일부를 광고판으로 제공하면 돈을 벌 수 있다.


- 민간 군사기업에 고용돼 용병이 되면 하루 1,000달러까지 돈을 벌 수 있다. (중동이나 아프가니스탄 등 해외 파병 - 전투지역 파병인원은 미군보다 군사기업 직원이 많다)


어찌 보면 산만한 사례의 나열은 돈(시장)이 얼마나 우리 주변에 깊고 광범위하게 침투했는지에 대한 사실적인 설명으로 둔갑한다. 도무지 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을 것 같은 우리의 감정(선물, 사과, 기부 그리고 사랑까지도) 시장의 상품의 하나가 돼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게 우리를 몰아붙인다. 읽다가 보면 우리나라가 어떤 면에서는 미국의 상황을 이미 추월한 부분도 느껴져 섬뜩하기까지 했다.


경제 분야만 시장원리에 따라 운영되던 것이 이제는 정치, 사회 분야를 포함해 출생에서 사망까지 모든 분야에 있어 시장의 침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이를 외면하고 있거나 심지어 시장(돈)을 맹목적으로 쫒고 있다. 돈이 상상의 허구라면 우리는 허상을 쫒으며 더 귀중한 것을 허비하고 있으며 점점 더 헐값에 팔아넘기고 있다.『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던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는 단정적으로 다그치고 있다.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과 돈 주고 산 금메달은 같은 금메달이지만 그 가치가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돈을 주고 줄 서기를 시켜 얻은 입장권으로 입장한 사람이나 밤새 줄 서 입장한 사람이나 입장한 것의 차이는 다르지 않다. 돈을 주고 사서 이식한 콩팥과 기증받아 이식한 콩팥도 콩팥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돈이 세상을 지배하고 거래할 수 있는 품목이 늘어나며 발생하는 가장 문제는 ‘격차’의 확대와 ‘부패’이다. 시장의 면적은 점점 넓어지고 있으며 그 깊이는 이미 우리 키를 넘어서 우리는 가없는 바다의 한중간에 허우적거리다 끝내는 시장의 바다에서 익사해야 하는 운명이다. 우리의 운명은 격차와 부패를 긍정하고 살거나 아니면 살기 위해서 피안(彼岸)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피안의 설명을 하고 있지만 매우 인색했다.


격차와 부패를 없애거나 최소한 완화시킬 수 있는 대책은 무엇일까? 마이클 샌델이 말 한대로 ‘돈으로 거래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면 된다’ 돈으로 거래할 수 있는 것이 적어지는 만큼 격차의 크기를 결정하는 요인은 감소하는 것이며 부패한 잡놈들의 서식공간이 줄어드는 것이다. 좀 있어 보이는 표현을 쓴다면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하지 마라(불귀난득지화,不貴難得之貨)〉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비싼 것이 좋은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하던 사업이 망해보니 돈이 없다. 돈이 없으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마음의 앙금을 가라앉히고 그 문제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돈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의 본질은 ‘불편함’이었다. 그렇다면 불편함을 극복할 수 있다면 돈이 없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혼자 불편한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불편해지므로 함께 이를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또 한 가지 발견한 것은 돈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삶의 여러 요소가 있다는 점이다. 그중 일부는 돈이 많거나 돈을 벌기 위해 분투할 때는 알지 못하던 것이었다. 물론 나는 오늘도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점은 불편함을 마다하지 않으며 내게 소중한 것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돈을 벌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이제 돈은 나를 지배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돈을 지배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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