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나의 젊은 날

by 누두교주

최근에 아주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내가 30 년 전의 나를 만난 것이다. 20대에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나를 만나 대화하며 잊고 (또는 외면했던) 있던 내 젊은 날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즐겨보지 않던 문학 작품을 모은 책을 보려니 아무래도 문학사를 한번 개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마침 책장에 있던 1990년에 샀던 『중국 문학사』를 꺼내 읽은 것이다.


그때 나는 책을 다 읽지도 않았으면서 여기저기 줄도 치고 메모도 해 놓았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줄 치고 메모한 내용에 보이는 20대의 나는, 나름 정의를 추구한다며 분노하고 있는데 지금 다시보니 귀엽게 느껴진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학문적으로 냉정 한척하지만 자기 편안한대로 이해하려는 모습은 지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 머쓱했다. 공부하다 말고 딴생각하는 점은 마뜩지 않다. 마땅히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을 그냥 넘어간 것이 여러 곳 보여 누가 볼까 창피하기도 했다.




아래는 사서삼경 중 하나로 절대적 권위를 가진다는 서경에 대한 설명이다. 물론 한국의 소중화주의적 관점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관점이다. 어린 나는 여기에 꼼꼼히 표시하고 『사기』와 『한서』에도 동그라미를 쳐 놓았다. 의도를 가진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결연한 태도가 못내 기특하게 느껴졌다.


사실의 기록을 빙자하여 유가의 예교 사상을 강조하는 허구적인 글을 쓰고 있는 점은 『서경』에서 출발한 것이라 할 것이다. 역사의 기록을 목표로 한 『사기』, 『한서』까지도 그러한 경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은......(p.97)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했다는 한(漢) 나라는 항우와의 결전에서 이긴 유방이 세운 나라이다. 문제는 한나라의 무제가 우리 고조선을 침략해 괴롭혔다는 점이다. 그러니 좋게 볼 수 없는 것 아닌가?


이처럼 지식인들이 집단화하여 외척과 환관들의 비리와 격렬한 싸움을 진행하는 동안, 이들 사이에는 지식인으로서 국가와 사회에 대한 자기 존재 의의의 자각과 책임에 대한 의식이 뚜렷해졌다.(p117)


위 설명에 대해 나는 아래와 같은 메모를 남겼다.


(한대에) 학술이 정치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내시(宦官 ; 불알 없는 사내) 집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도연명을 비롯한 여러 시인들의 시를 꼼꼼히 해석하고 특히 이태백의 시는 열심히 본 흔적이 있는데 시를 시로 본 것이 아니고 자구를 이해하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만당(晩唐 : 당나라 후기) 시기의 시인인 피일휴의 시는 시구를 꼼꼼히 새겼고 몇 구는 별표를 해 놓았다. 피일휴는 “옛날 관리들은 도적을 쫒기 위해 있었는데, 지금의 관리들은 도적질을 하기 위해 있다”라고 떠들던 사람이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교활한 관리들은 형벌도 두려워하지 않고

탐욕스러운 관리들은 도둑질한 물건도 꺼리지 않네.

(중략)

가짜 인(仁)으로서 스스로 왕이 되었건만!

아아! 도토리 줍는 할미 만나니

알지 못하는 새에 눈물이 바지 적시 누나!(p.300-301) (1)




이 때는 내가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해 ‘예비역’ 신분이었다. 당시 군 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복무기간도 길었고 휴가도 적었고 외부와의 소통도 쉽지 않았다. 따라서 기다린다던 사람(여자)들은 대부분 고무신 바꿔 신는(변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던지 원(元) 나라 때 시를 열심히 읽어 내 마음의 흔적을 남겼다.


님에게 옷 부쳐 드리자니 님 돌아오지 않을까 저어되고,

님의 옷 부쳐 드리지 않으려니 님 추우실까 저어되네.

부쳐 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몸 정말 어쩔 줄 모르겠네.(p.444)(2)


내가 군 생활할 때 옷 부쳐준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마누라는 심지어 면회도 한번 온 사실이 없었다.



명(明) 나라 때 당시 유행하던 복고주의에 반대하고 개성적인 창작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적인 문인들이 나타났다. 이때 인생을 자해도 하고 발광도 하며 독특한 방식으로 산 서위(徐渭)라는 사람의 말에 동의하는 나를 만났다.


사람이 새 말을 배운 자가 있다면, 그의 소리는 새라 하더라도 그의 본성은 사람인 것이다. 새가 사람의 말을 배운 지가 있다면 그의 소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의 본성은 새인 것이다. (p.489)


이어지는 그의 통찰은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내 생각과 다르지 않다.


자기가 터득한 것으로부터 나온 것이 참된 글이지 공연히 남이 일찍이 한 말들을 훔쳐다 놓고 이 작품은 무슨 체인데 저 작품은 틀렸고, 이 구절은 어떤 분과 비슷한데 저 구절은 틀렸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것은 비록 잘 지었다 하더라도 아주 닮았을 따름인 것이다. 새가 사람 말을 하는 것과 같은 것임을 면할 수 없다.(p.489)




나는 청나라 시대 『홍루몽』이란 소설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읽어 본 적은 없다. 그저 시험과 리포트를 쓰기 위해 적당히 줄거리와 주변 지식을 주워 정리한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짜가의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표시해 놓은 것을 보고는 한참을 낄낄 웃었다. 그때는 아마 짝퉁이라는 말이 없었던 것 같다. 홍루몽이 유명세를 타자 뒤이어 나온 속 작의 이름이다.


홍루몽보, 홍루한몽, 후홍루몽, 홍루후몽, 속홍루몽, 홍루복몽, 홍루보몽, 홍루중몽, 홍루재몽, 홍루원몽, 증보홍루몽, 귀홍루, 홍루몽영. (p.585)




세월이 어떻던 시간은 흘러간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 변해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은 알지만 때로는 마뜩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깊어가는 가을에 만난 나의 젊은 날은 지금의 내가 부끄러운 존재는 아니라고 격려해 주는 것 같다. 또 30년을 더 살아 오늘을 추억할 수 있다면 어떤 책을 들고 이글의 짝을 만들 수 있을지....... 기다릴 필요는 없지만 아득한 그날이 궁금 하기는 하다.




** 사진 설명 : 1990년 1월 22일 여당인 민주정의당(노태우), 야당인 통일민주당(김영삼), 신민주공화당(김종필) 3당이 합당했다. 이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가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3당 합당의 주역인 세 사람은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오늘(10월 30일) 노태우 씨가 발인을 한다.


(1) 원문은 아래와 같다.

狡吏不畏刑, 貪官不避贓...........許仁猶自王, 吁嗟逢橡媼, 不覺淚沾裳

(2) 원문은 아래와 같다.

欲寄君衣君不還, 不寄君衣君又寒. 寄與不寄間, 妾身千萬難

** 내가 1990년 읽었고 2021년 읽은 책은 김학주 저,『中國文學史』, 1990, 신아사, 서울.이다. 인용한 부분은 페이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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