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거래(무역)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나는 납기, 가격, 품질이라고 대답한다. 특히 패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소리가 번갈아 어울리며 전개되는 한 편의 오케스트라와 같다. 특히 가죽, 모피의 경우 계절성이 가장 강한 상품이라 자칫 납기가 늦을 경우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손가락을 사용해 숫자를 세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같은 이치로 납기를 계산하는 방식도 나라마다 다르며 납기를 지키지 못하는 난처할 상황이 됐을 경우의 대처도 서로 다르다. 내가 가죽, 모피 오더를 진행하며 직접 경험한 공급자가 납기를 지키지 못한 경우의 이야기들을 모아 보았다.
양(羊)은 종류가 매우 많고 그에 따라 크기도 천차만별이며 양의 사육 목적에 따라 생존기간도 편차가 매우 크다. 양복이나 모직코트를 만들기 위해 털이 필요한 양은 매년 털을 깎아 가며 여러 해 사육한다. 이 녀석 들은 당연히 크고 가죽이 두꺼우며 무거울 수밖에 없다. 호주나 뉴질랜드의 양이나 캐시미어를 얻기 위해 사육하는 양들의 경우이다. 반대로 연한 고기를 얻기 위해 기르는 양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작고 가죽과 털이 부드럽고 가벼울 수밖에 없다. 추운 지방의 양은 털이 길고 그렇지 않은 지방의 양은 털이 짧은 것도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다. 따라서 만들려는 옷의 특성에 따라 적합한 원산지의 원피를 선택하고 품질기준을 만족할 능력이 있는 제혁공장(tannery)을 선택하는 것이 성공적인 제품 생산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중의 하나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품질의 아름다운 양가죽과 모피를 생산하는 국가는 단연 스페인이다. 이태리도 일부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기는 하지만 생산량, 원피의 다양성 그리고 생산 노하우에 있어 스페인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따라서 오더 수주를 위한 샘플 수배 또는 수주한 오더 생산을 위한 원자재 확보를 위해 스페인 출장을 자주 갈 수밖에 없었다. 알프스 산맥의 남쪽에 지중해를 끼고 대서양을 등진 채 아프리카 북쪽에 자리한 스페인은 매우 매력적인 자연환경과 그보다 더 매력적인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친절하지만 지나치지 않고 부드럽지만 비굴하지 않다. 따라서 그들과의 상담(business meeting)은 언제나 매우 유쾌하고 흐뭇한 성취감을 가지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매력적인 태도는 정확히 납기를 지켜야 하는 국제무역에 있어서는 가끔 낭패를 만나게 한다. 일반적으로 선적하기로 한 날 (S/D. shipoping date) 며칠 전에는 선적한 제품의 명세가 통보되는 것이 보통인데 아무 소식이 없다. 궁금해서 전화를 해보면 우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오랜 대화를 해야 한다. 그다음에 납기를 물어보면 "마니아나(maṅana - 내일)"라는 대답이다. 정답게 인사했는데 하루 차이로 부정적인 이야기하기도 뭣하고 하니 이번엔 헤어지기 위한 안부를 여러 번 교환하고 전화를 끊는다.
선적을 하고 나면 배나 비행기에 화물이 실렸다는 선하증권(B/L - 운송장)이 발행되며 물건을 받는 쪽에서는 그것을 가지고 제품의 운송을 추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다음 날이 돼도 선하증권이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전화했더니 다시 다정한 인사가 오가고 선적 여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다시 "마니아나"였다. 나는 내일이 매일 있으며 그 내일이 존재하는 것이 나를 무척이나 피곤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전에는 알지 못했다.
인도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큰 스펙트럼을 가진 나라일 것이다. 특히 세계에서 영어를 구사하는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가 인도이며, 그래서 미국 기업의 많은 콜센터가 인도에 있다.
인도의 양가죽은 우선 그 크기가 매우 작다. 하지만 그 표면이 매우 조밀하고 자연스러운 손 맛(hand feel)과 은은한 광택은 매우 매력적이기도 하다. 가격 경쟁력도 매우 탁월하다.(특히 처음 offer 할 때는 더 그렇다)
내 경험에 따르면 아마도 내 이번 생에는 인도 사람 서두르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을 확률이 더 크다. 인도에 오더를 했는데 납기일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어 선적 여부에 대한 질문을 보냈다. 답이 들어왔는데 아무리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I will send you yesterday(어제 보내도록 하겠다)" 잠시 후 선적 관련 서류가 들어왔다. 보냈다는 이야기였다.
파키스탄은 아라비아 해를 끼고 있고 히말라야와 마주하고 있다. 원래 인도와 같은 나라였는데 종교(힌두교와 회교) 문제로 갈라졌다. 원래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이 있었는데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가 됐다. 사실 종교는 같을지 몰라도 파키스탄 사람과 방글라데시 사람은 인종, 언어, 문화 등이 다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파키스탄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지역의 원피를 가공, 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중동(middle east) 지방은 양고기의 소비가 많고 건조한 지방으로 그곳의 양가죽은 내구성은 다소 떨어져도 가볍고 부드러워 일본에서 좋아한다. 또한 물에 빨거나 손으로 색칠해 빈티지 느낌이 나는 가공을 잘해 유럽의 수요도 적지 않다.
이곳의 특징은 하루에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를 드린다는 점이다. 처음엔 그러려니 하고 말았는데 나중에 가만히 보니 내가 가격을 깎으려고 하거나 품질에 문제를 제기하면 갑자기 일어나 엉덩이를 쳐들고 엎드려 뭔가 중얼거리며 기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부터는 부정적인 이야기는 따로 두었다가 기도 끝난 직후에 했다.
두 번째 특징은 납기가 늦을 때마다 갑자기 ①가까운 인척이 죽거나 ②나도 아는 누군가가 뇌종양 등 심각한 질병에 걸리거나 ➂ 종교와 관련된 특별한 날로, 반드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일이 자주 반복된다. 가장 심각한 상태는 누군가 죽는 것으로 보통 2주 정도 늦어지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명복을 빌면서!
중국은 우리가 흔히 만만디(慢慢的)로 오해하고 납기를 제때에 맞추지 못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공산당이 집권한 지금의 중국은 절대 그렇지 않다. 중국에서 생기는 납기 문제는 대부분 오더 한 측에서 정확한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지 중국 측의 사정으로 늦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제품을 빨리 보내야 빨리 돈이 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 나타난 변화이다.
하지만 예외 없는 법칙은 없는 법! 그중에 납기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때 쓰는 말이 "마상(马上)"이다. 곧!, 즉시! 의 뜻이다.
중국에서 전염병 사스가 발생했던 해인데 절강성 가흥시에있는 설송(쉐송,雪松)이라는 업체에 오더를 준 적이 있었다. 대략 3,000 장 정도 되는 모피 오더였는데 샘플만 보고 공장에 대한 평가 과정 없이 그 정도 물량 생산이 불가능한 규모의 공장임을 모르고 오더 한 것이 문제였다. 생산 일보 상에는 순조롭게 생산이 되고 있었지만 막상 공장에서 제품 확인을 하려면 생산된 제품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생산 일보는 거짓말이었고 납기를 묻는 내 질문에 공장 사장은 "마~상!"만 연발했다.
뱀발(蛇足) 삼아 다소 전문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사실 납기 개념도 엄밀히 이야기하면 다소 복잡하다. 예를 들어 납기를 10월 1일이라고 가정할 때 그 기준이 어딘가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우리가 미국에 수출을 하는데 납기가 10월 1일이라고 가정할 때, 공장에서 출고하는 날짜 조건으로 10월 1일이라면 9월 30일까지만 물건을 완성하면 된다. 하지만 미국 뉴욕공항 또는 항구 도착 기준으로 10월 1일이라고 한다면 운송 수단의 운행간격, 운행시간을 미리 파악해 10월 1일까지 도착시키는 스케줄을 사전에 계산한 후 생산일정을 확인하고 계약해야 약속을 지킬 수 있다.
또 한 가지 고려할 것은 분할 선적(Partial Shipments) 조건이다. 제품의 부피가 크거나 수량이 많아서 한 번에 운송할 수 없거나 급히 필요하지만 생산은 따라가지 못할 경우 제품을 나누어 선적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 만일 나누어 선적한다면 꼼꼼히 서로 상의하고 확인한 후 계약해야 한다. 예를 들면
0월 며칠부터 0월 며칠까지 나누어 선적할 수 있으나 0월 0일 몇 개 이상, 0월 0일 몇 개 이상, 0월 0일 몇 개 이상의 조건의 충족되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00의 책임을 부담한다.
이렇게 해야 공급자의 안정적인 생산일정과 구매자의 최소한의 수요에 대한 합리적인 접점을 미리 설정해 그다음 일에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아무리 꼼꼼히 확인을 하고 약속을 하도 납기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 경우 가중 중요한 사실 두 가지는 ①‘충분히 일찍’, ‘대안을 포함해 상대방에게 통보’하고 ②정직하고 성의 있게 상의하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나의 경험의 경우는 공급자가 충분히 일찍 문제 발생을 상대방에게 통보하고 피해를 제거하거나 최소화 하기 위한 진지한 태도는 결여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반대의 경우는 공급자는 정확한 의사 표시를 하고 계약을 했는데 사는 사람이 이해를 하지 못했거나 오해해 발생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7월 1일부터 가능한 많은 수량을 공급하기 시작해 100만도즈의 백신을 10월 31일까지 납품 완료하겠다
라고 계약했는데 7월 1일까지 백신 100만 도즈가 오는 것으로 이해하고 발표하는 경우다. 당연히 7월 1일 아주 적은 수량만 올 수밖에 없고 공급자에게 배상 청구는 물론 아무런 문제제기도 할 수 없고 그저 사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는 10월 31일까지는 ‘땜빵’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계약하고 뻥을 치며 땜빵을 몇 번 반복한 나라를 우리는 알고 있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서로 나의 상황과 상대방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는 것이 첫째이다. 두 번째는 일을 진행하면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가능한 신속히 해결을 위한 소통을 진행하고 서로의 이익을 보호하고 최악의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 이 두 가지의 규칙을 지키고 노력하는 사이를 우리는 ‘협력관계’라고 부르고 특히 납기를 잘 지키는 거래처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