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가난 그리고 고래 알 - 貧而樂 富而好禮

제1 학이편(第一 學而篇) -15

by 누두교주

우리는 비겁(卑怯)하고 비굴(卑屈)하며 비천(鄙賤)하다!

누군가의 실패에 안도하고, 내심 옳지 않다고 여기지만 거부할 용기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줏대는 당연히 없고 어깨는 날로 좁게 위로 솟으며 사랑 가득한 눈빛을 담아 비굴하게 웃으며 손바닥을 열심히 비벼댄다. 이미 습관이 돼서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낮게 임하는 것이 삶에 옹이로 박혀 굽혀진 허리를 펴지 못하고 내리깐 눈동자는 그 자리에 붙박이가 됐다. 어쩌다 머리를 들어 눈을 마주쳐도 마치 본능처럼 웃는 얼굴을 보인다.

우리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돈만 많으면 누구에게든 눈을 똑바로 뜨고 허리 쭉 펴고 살 것 같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우리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하지만 부자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가 뭘까? 우선 열심히 일해가 부자가 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자본주의에서 많은 사람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이 있기 때문에 번다.①


노력과 전혀 상관없이 졸부가 됐거나 날 때부터 주둥이에 금수저를 물려주는 부모 만나 부자가 된 경우가 우리를 열받게 한다. 더 열받게 하는 것은 그들의 태도이다.


“부자라는 것만 빼면 아무 자격도 없는 사람이 책임 있는 자리에 앉아 권력을 휘두른다”②


날 때부터 부자인 사람들이, 가난과 결핍을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교만하지 않고 더 나아가 예의를 지킬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할 것 같다. 물론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바늘귀를 지나갈 만한 작은 낙타를 구해오거나 아니면 낙타가 지나갈 만한 바늘귀를 만들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작은 낙타도 낙타냐는 문제와 그렇게 큰 바늘도 바늘이냐는 문제에 대한 대답이 궁해진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는 있을 것 같다. 만족하기만 하면 된다. 노자(老子)는 ”족한 줄 알면 진정한 부자(知足者富)③“라고 했다. 그는 더 나아가 ”족함을 알면 항상 만족하다(知足之足 常足矣)④라고 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가난한데 뭘 만족하지?라는 의문을 아직 해소하지 못했다.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의 하나이다.


몸무게가 22톤인 암컷 향고래가 500킬로그램짜리 대왕 오징어를 잡아먹고 여섯 시간 뒤 1.5톤짜리 알을 낳았다면 이 고래의 몸무게는 얼마일까요?


정답은 ‘고래는 알을 낳을 수 없다’이다. 고래는 알을 낳을 수 없는 포유류이므로 무게에만 집중하면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재미있는 이유는 나도 모르게 강요된 방향으로 보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데 있다. 어쩌면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던 바로 그 자리를 가리키는 것 같은 느낌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그들과 우리를 이야기하지만 뭐가 부자이고 뭐가 가난한 것인지 이야기하는 것은 서로 꺼린다. 너무 당연해서 그럴까? 돈이 많으면서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있고 반대인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는 너무 진부한 이야기일까?




여름의 끝자락에 만난 3일 연휴의 한가하고 나른한 시간에 제자와 스승이 가난과 부자에 관한 이야기 하는 것을 다시 읽어본다. 분명히 가난과 부자를 이야기하는 데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것 같지 않고 부자도 부자 같지가 않다.


우리가 비겁하고 비굴하고 비참한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 아닐까?


자공이 여쭈었다 “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다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괜찮기는 하나, 가난하면서도 올바른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⑤



① 네이션 로빈슨(Nathan James Robinson). 안규남 옮김 『밀레니얼 사회주의 선언, WHY YOU SHOULD BE A SOCIALIST』도서출판 동녘. 경기, 파주. 2021. p.131


② ibid. 2021. p.375.

③ 노자도덕경 33장.

④ 노자도덕경 44장.

⑤ 지금까지 인용한 논어 구절의 출전은 아래와 같다.

김학주 역주 『논어 論語』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서울. 2009. pp.14-15.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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