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君子)는 두루 사랑하고 편당(偏黨) 하지 않으며, 소인(小人)은 편당 하고 두루 사랑하지 않는다"①
우선 조선시대 군자를 자처하던 지배계급이 목숨보다 중히 여긴 주희의 해석을 보자. 그는 결국 군자는 공(公)적이고 소인은 사(私)적이라고 주장했다.②
고문 사학을 창시해 일본 최고의 사상가로 평가되는 오규 소라이는 기본적으로 주자의 맥락에 동의하지만 아래와 같은 뱀 발(蛇足 - 사족)을 달았다.
“ 군자는 윗자리에서 덕을 지닌 사람으로 그 마음이 백성을 편하게 하는 데 있으므로 공적이다. 소인은 소소한 백성들을 칭하는 것으로, 그 마음이 자기 자신의 영위에 있기 때문에 사적이다”➂
오규 소라이의 뱀 발은 "군자는 이미 멸종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내 평생 살면서 윗자리에 있는 어떤 놈도 그 마음이 백성을 편하게 하는데(其心在安民) 있는 꼴을 본 적이 없다. 정도의 차이, 규모의 차이, 걸리고 안 걸리고의 차이만 있을 뿐 뒤로는 전부 호박씨 open 하고 있었다. 이점을 간파하고 통렬히 절규한 노래가 나훈아의 [테스 형]이다.
1992년 세상을 등진 양백준은 사회주의 중국의 사상가답게 드라이하면서 결단력 있는 해석을 했다.
"군자는 도의(道義)에 따라 단결하며 소인은 잠시의 공통 이익에 따라 서로 결탁한다"④
중국 공산당이 도(道)와 의(義)에 따라 단결했는지 아니면 공산당 영구집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서로 결탁했는지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공산당과 군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이 구절은 논어에서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 관계를 가진 군자와 소인의 이분법적 시각이 최초 언급된 곳이다. 군자는 좋은 사람, 소인은 나쁜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는 군자가 돼야 하고 소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뿌리 깊은 견골(犬骨 - 개뼈다귀) 사고방식의 시초가 이 지점이다.
더 나아가 군자는 오로지 백성(民)을 위해 수고하는 존재이니 농사를 짓지 않아도 배불리 먹을 수 있어야 하며 백성들을 꼴리는 대로 부릴 수 있다는 사상적 기반이 제공되는 것이다.
그런데 백성만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그런 군자가 진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앞으로는 있을 가능성이 있는가?
백성은 어차피 자기 몸 움직여 먹고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큰 욕심도 없고 욕심부려봐야 될 일도 없다. 큰 도적놈들은 다 한 자리씩 꿰차고 있는 윗대가리들이다. 그런데 그 놈들 사람 되라고 한마디 하는건 좋지만 왜 애먼 소인을 가져다 '새'를 만들어 버리는가?
군자(君子)는 멸종했으며 존재 증거도 없다.
그러니 괜히 군자 한다고 뻥치고, 삥 뜯고, 남의 눈 텡이 박을 생각 말고
우선 조신하게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고 정해진 법과 원칙만 잘 따르면 된다.
① 위정 편 14번째 장이다. 원문은 아래와 같다.
子曰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자왈 "군자 주이불비, 소인비이부주")
② 『顯吐完譯 論語集註』傳統文化硏究會. 서울. 1991. p.42.
➂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임옥균 등 역.『논어징(論語徵)』1. 소명출판 서울. 2010. p.155. 원문은 아래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