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택동이 맘 대로해! - 萬邦有罪 罪在朕躬

제20 요왈 편(第二十 堯曰篇)– 1

by 누두교주

한때 우리나라의 국시(國是, 국가정책의 기본 방침)는 반공(反共, 공산당에 반대함)이었다. 그러던 것이 '자유민주주의'로 제자리를 찾는 듯하더니 최근 몇 년간 ‘내로남불’로 바뀐 것 같다.


Naeronambul은 해외 백과사전에도 정식 표제어로 등록되어 있으며 ‘이중 잣대’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①

사람마다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내로남불’의 기원은 ‘꼰대(丨大)의 기원과 같다고 본다. 이른바 군자, 양반 또는 왜곡, 포장, 의도된 공, 맹(孔子, 孟子)의 글을 읽고 폼 잡던 사람들이다.


그들 스스로는 군대에 가지 않으면서 군역을 내지 못하는 백성들을 비난하고 형벌을 가했다. 지들은 첩을 여러 명 거느리고 얘를 낳게 하고는 첩이 낳은 아이들은 서자(庶子)라고 차별했다. 지들 조상귀신 제사 지낸다고 온갖 고생 다 시켜 놓고 막상 제사 지낼 때는 여자들은 재수 없다고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했다.



하지만 먼 옛날 동방의 지도자들은 ‘내로남불’과는 거리가 먼 통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다.


빛나고 빛나신 하느님께 감히 그리고 분명히 아룁니다.

저는 죄가 있는 자를 함부로 용서하지 않았고, 하느님의 신하를 숨기지 않았으니

선택은 하느님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저 자신에게 만약 죄가 있다면 그것은 온 세상 사람들 때문이 아니고,

온 세상 사람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 죄는 저 자신에게 있습니다.②


얼핏 들으면 순결한 신앙고백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운 이 구절의 출전은 놀랍게도 『논어』다. 공자가 한 말도 아니고 공자의 제자가 한 말도 아니다.③ 이 구절이 왜 논어에 들어갔는지조차 불분명하다.④


그래서 그런지 주자가 이 구절을 마치 남의 이야기하듯이 해 놓았다. 그러나 그런 주자도 분명히 밝힌 “자신을 책함에 후하고 남을 책함에 박한 뜻”⑤은 ‘내로남불’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과거와 같은 신분사회가 아닌 평등한 현대 민주사회에도 ‘내로남불’의 행태가 만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우리나라 ‘내로남불’의 뿌리는 중국에 있다고 믿는다. 중국의 경우 현대 ‘내로남불’을 창조했으며 지금도 열심히 확대 발전시키고 있다. ‘내로남불’의 창조 형성과정을 잠깐 검토해 보면 그 전모를 확인할 수 있다.


1950년대 중국의 모택동은 10년 내 영국을 따라잡고 이어서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의 청사진을 발표하고 여러 가지 쇼를 펼쳤다.① 그 결과 약 3,000만 명이 굶어 죽는 대참사가 일어났다.(이른바, ‘대 약진 운동’이다)


뻘 춤 해진 모택동은 보다 스펙터클한 쇼를 하기로 결심하고 사전 준비를 시작했다. 대강 분위기를 잡은 후인 1966년 8월, 인민일보에 "사령부를 포격하라"⑥는 기고를 시작으로 대륙은 이른바 문화 대혁명의 광풍에 휩싸이게 됐다.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당시 문화 대혁명의 대원칙은 ‘모택동 추종’으로 귀납할 수 있다.


“모택동이 말하는 것은 무조건 맞는 절대 진리이다.”

(우리 버전으로 하면 ‘택동이 맘대로 해’)


홍위병은 모택동 어록을 들고 완장을 차고 다니며 절대 불변의 대원칙에 부정적인 존재는 무엇이든 공격했다. 당연히 원칙에 입각한 법치는 불필요한 사회가 되었다.


문화 대혁명의 피해자가 몇 명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일본군에 희생된 중국인 보다 많다는 것은 틀림없다. 국가 지도자급 인사도 모택동에게 절대복종하지 않는 경우엔 ‘아작’이 났다. 예를 들면 당시 국가 주석(유소기)은 부인과 함께 주어 터지고 개봉으로 귀양 갔다.(거기서 죽었다) 그 유명한 등소평은 지방 노동자로 좌천돼 몇 년간 ‘노동 개조’를 당했다.(그런데 전혀 개조되지 않았다. 키도 안 자랐다) 6.25 전쟁 당시 중국 인민군 총사령관 팽덕회는 "미제국주의자" 등의 명패를 목에 걸고 홍위병들에게 얻어맞았다.


‘내로남불’의 특징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귀신같이 찾아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증폭시키고 자극적 시청각 자료로 바꾸어 ‘쇼(show)’를 잘한다. 그 쇼에 덩달아 울고 흥분하던 사람들이 나중엔 왜 그랬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내 편이냐 아니냐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항상 같았다.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고 구제받을 수 없는 피해자들만 남았다. 그걸 반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생각 같지 않다.



** 대문 사진 설명: 중국 인터넷(https://www.ximeiapp.com/article/2949437)에서 ‘내로남불(naeronambul)’을 검색하면 나오는 정보 중의 하나이다. 양식 있는 중국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진이다. 만일 중국에서 습근평 사진을 올리고 그를 까는 글을 쓴다고 상상하면 중국 사람들이 왜 부러워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Naeronambul (검색일: 2022.08.16.)

간단히 원문의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Naeronambul is a Korean term for 'double standards' ( The dictionary definition of 내로남불 at Wiktionary), constructed as an abbreviation for "romance if I do it, affair if others do it", which is usually used to make political criticism. [1]


② 리링(李零) 지음, 김갑수 옮김 『길 잃은 개 2』 경기, 파주, ㈜글항아리. p. 1094.

원문은 아래와 같다.

敢昭告于皇皇后帝, 有罪不敢赦, 帝臣不蔽, 簡在帝心. 朕躬有罪, 無以萬方. 萬方有罪, 罪在朕躬.


③ 상(商) 나라를 세운 탕(湯) 임금이 검은 황소를 제물로 바치며 하늘에 제사 지내며 한 말이다.


④ 김학주 역주 『논어 論語』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pp. 356.


⑤ 『顯吐完譯 論語集註』傳統文化硏究會. 서울. 1991. p.386. 원문은 “厚於責己, 薄於責人 “이다.


⑥ 원문은 ”炮打司令部 - 我的一张大字报 “이다.

keyword
이전 15화뒷담화 - 中尼, 日月也, 無得而踰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