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국제 부녀절)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오늘자 사설에서 “봉건적 구속에서 헤매던 여성들의 지위에 근본적 전환이 일어난 것이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만든 고귀한 결실” 이라며 지금의 북한 여성은 ‘복 받은 여성이라고 축하했다.
중국에서는 3·8 부녀절(三八 妇女节)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3·8의 의미는 칠뜨기, 팔푼이, 멍청하다, 모자라다의 뜻이다. 부녀절과 상관관계는 모르겠다.
"전국의 부녀가 일어난 날은 곧 중국 혁명이 승리한 때이다"라는 모택동의 말을 새기며 축하한다. 참고로 중국 국가(國歌)의 시작도 "일어나라(起来)"로 시작한다. 참 일어나기 좋아하는 민족 같은데 차 안에서 자리 양보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공자의 여성관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의 말을 후학들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그 일단을 살펴본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와 소인은 기르기가 어려우니, 가까이하면 불손하고 멀리 하면 원망한다"①
나와같이 사는 여자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정확히 맞는 말 같다. 그런데 문제는 왜 거기에 소인을 가져다 붙였냐 하는 점이다.
내 경험에 따르면 조금 친한 척해준다고 기어오르는 스타일들은, 가끔 구박해 제정신 차리게 하면 된다. 그런 친구들은 좀 멀리하면 스스로 안달이 나서 잘 보이려고 별짓을 다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친구들의 윗 사람에 대한 원망은 대부분 더 좋은 대안이 있을 경우에만 하지 대안이 없을 때는 절대 원망하지 않고 열심히 꼬리 친다. 하지만 좋은 대안이 있을 때는 아무리 잘해줘도 소용없다. 이런 현상에서 남·여 간의 유의미한 차이는 본 적이 없다.
위 공자 말씀에 주희는 어떤 토를 달았을까?
여기서 말한 소인은 또한 복례(僕隷 -마부, 종)와 하인을 말한다. 군자가 신첩에게 장엄함으로써 임하고 자애로써 기르면 이 두 가지의 병폐가 없을 것이다.②
내가 집에 가서 아무리 장엄하게 임해봐야 "뭘 잘못 먹었나"하고 별 신경 써줄 것 같지 않다. 내가 갑자기 자애로운 태도를 보이면 "이 인간이 뭔 사고 쳤나"하는 의심을 할 것 같다. 나는 군자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공자는 2,500년 전 사람이고 주희는 900년 전 사람이다. 당연히 그때와 지금의 사회구조가 같을 수 없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여자와 소인은 지금의 시대상황과는 연결시킬 수 없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럼에도 가끔 『논어』를 헛소리 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많은 이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공자가 최고의 덕목으로 설파한 인(仁)의 개념이 이 문제 해결의 열쇠로 확신한다. 수많은 '인'의 개념 중에 내가 동의하는 '인'의 개념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➂이다.
여자와 소인은 여자와 소인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여자와 소인을 관리와 통치의 대상으로 인식하던 수천 년 전 생각을 오늘에 답습하는 것도 웃기고 그것에 편승해 '해방' 시킨다고 설치는 것도 한심하다.
누군가 거짓을 행해 남을 해치고 이익을 볼 경우 그것을 분별하기 위한 지혜가 필요해진다.④ 남자와 여자를 갈라 치기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느 한쪽에 치우친다면 젠더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 서로가 상대를 바라보며 상대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찾는,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방향이 될 때 세계 여성의 날(국제 부녀절)은 역사의 일부가 될 것이다.
① 양화 편 25번째 장이다. 원문은 아래와 같다.
子曰 唯女子与小人 为难养也 近之则不孙 远之则怨
(자왈, 유여자여소인 위난양야. 근지즉불손 원지즉원)
② 『顯吐完譯 論語集註』傳統文化硏究會. 서울. 1991. p.359.
➂ 李零지음, 김갑수 옮김『집 잃은 개 1』 (주)글 항아리, 경기, 파주, 2019. p.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