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동파육’ 어쩌고 하면서 중국 송(宋) 나라 때 정치가이자 구라파①였던 소동파②를 매우 친근하게 여긴다. 그런데 소동파는 공무원 생활하면서 고려에서 사신이 오는 걸 싫어했다. 따라서 나는 우리 조상님들을 홀대했던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 구라파의 적통인 그의 구라는 볼만한 것이 적지 않다.
소동파의 글 중에 그의 선배이자 동업자로 모시는 한퇴지③의 사당에 비문을 세우며 지은 글④을 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가 구라파 선배인 한퇴지를 찬양하며 『논어』의 구절을 인용했는데 참으로 정곡을 찌르는 명언 아닌가?
군자는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愛人), 소인은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쉬워진다.④
일단 ‘도(道)’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인이 배우면 부리기 쉽다는 말은, 다른 말로 취직이 잘된다는 말이니 그런가 보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군자가 도를 배우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통찰이 이미 2,500년 전부터 있었던 것에 충격을 받았다.
고대 한어에서 사람(人)이라는 표현은 타인 즉, 다른 사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애인(愛人)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라는 뜻이된다.
우리는 오늘날 군자 계급(지배계급, 엘리트)에 속한 훌륭한 분들 중에 도를 배워서 다른 사람을 사랑한 사람을 여럿 알고 있다.
그러다가(愛人하다가), 들통이 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분도 계시고,
감옥에 다녀오신 분도 계시고,
직장에서 잘린 분도 계시고,
걸렸지만, 아니라고(愛人않했다고)박박 우기며 '점'이 없다고 하시는 분도 계신다.
이런저런 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도(道)는 절대 군자들이 배울 일이 아니다. 도는 소인이 배워야 옳다. 이런 참신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지금도 우리가 『논어』를 읽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들 중의 하나이다.
시(詩) 읽기 좋은 가을날, 도를 배운 군자에게 어울림직한 가난한 시인의 시구절이 생각난다.
사랑하라 그렇더라도 지그시 바라만 볼 것
사랑하라 그렇더라도 우두커니 지켜만 볼 것(6)
① 구라파; 구라의 뜻은 거짓인 듯 아닌 듯하며 뻥이 가미된 언어생활이다. 구라의 품사는 명사로서 술어로는 ‘친다’, ‘푼다’, 또는 ‘깐다’등을 사용한다. 좀 품위 있게 표현하면 말 잘하고 글 잘 짓는 사람을 상상할 수도 있다. 이런 경향의 사람들의 지칭어인 ‘구라파’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나이며 그 시작은 2022년 9월 23이다.
② 송나라의 대표적 구라파이다. 동파(東坡)는 동쪽 언덕이라는 의미이며 그의 호(號)이다. 그의 이름은 식(軾)인데 ‘수레 앞턱에 가로댄 나무’라는 뜻이다.
③ 송나라 이전 당(唐) 나라의 대표적 구라파이다. 산에 가서 기도하면 구름이 걷히고, 악어에게 글을 지어 보내면 악어가 도망갔다고 한다. 구라파 맞다.
④ 글의 제목은 [조주의 한문공의 사당에 세운 비문(潮州韓文公廟碑)]이다.
⑤ 이장우·우재호·박세욱 지음 『고문진보 후집』 ㈜을유문화사, 서울, 2020, p.1004. 『논어』, 「양화」 편에 나오는 자유(子遊)의 말이다. 원문은 아래와 같다.
君子學道則愛人, 小人學道則易使也.
⑥ 안상학 지음.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서울 2020. 걷는 사람. p.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