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닝의 시조 - 子張 書諸紳

제15 위령공편(第十五 衛靈公篇)- 5

by 누두교주

옛날 군자님들은 높다란 모자 쓰고 도포를 걸치고 말끝마다 문자를 쓰며 갖은 폼을 잡았다. 그런데 과연 그들 모두가 정말 열심히 공부했을까? 정말 그들 모두가 인격적으로 탁월했을까? 나는 『논어』에서 다양한 상상이 가능한 한 구절을 발견했다.


자장이 (이 말씀을) 띠에 썼다. (子張 書諸紳)

대부분 이 구절을 읽는 사람들은 그 앞의 공자님 말씀에 집중하느라 이 구절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① 그저 공자 제자 자장이 공자님 말씀을 잊지 않으려고 허리띠에 적었구나.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구나! 하는 정도로 넘어가고 만다.

하지만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척 이상하다. 선생님 수업시간에 왜 공책을 안 가져가고 왜 갑자기 허리띠를 풀었을까? (우리는 허리띠를 풀겠다고 남을 위협했던 나 씨와 이 씨 두 사람을 알고 있다)




당시엔 종이가 없었다. 종이는 공자가 죽고 500년도 지난 후에 채윤(가수 채윤과는 별 상관없는 사람이다)에 의해 발명되었다. 따라서 당시엔 대나무 쪼가리(죽간, 竹簡) 등에 붓으로 글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아주 예외적으로 비단(silk) 위에 글을 썼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당시 비단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절대 일반적인 행동은 아니다.


더욱이 허리띠(紳)라는 것이 지금의 허리띠와는 다르다. 신사(紳士, gentlemen)라는 말이 이 허리띠에서 유래된 것과 같이 이 허리띠는 신분을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물건이었다.② 따라서 매우 고급 소재(비단과 같은)로 만들었다는 상상은 합리적이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허리띠는 아래 그림처럼 생겼다.


자장의 상상화다. 지금 보면 복대같이 널찍한 것이 허리띠(紳)이다.

선생님 이야기 듣다 말고 이걸 풀어서 필기했다는 것이 『논어』의 기록이다. 이걸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 아닌가? 상식적인 상상은 '공자(선생님)의 말씀을 가져간 노트(죽간)에 필기하거나 아니면 적당히 메모한 후(손바닥에라도) 까먹고 안 가져간 공책에 옮겨 쓰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만일 자장이 커닝(cunning, 作弊)을 위해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장소인 허리띠에 선생님 강의 중 시험 범위 내용을 적었다면 어떨까? 신사의 허리띠는 최적의 장소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지나친 상상을 한다고 비판할 수 있다. 커닝이란 강의실 책상, 벽 또는 손바닥을 활용하거나 작은 커닝 페이퍼를 만들어 쓰는 것을 그 근거로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대륙적 커닝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커닝을 위해서는 옷, 버선, 심지어 신발 바닥까지 활용되었다. 쪼잔하게 커닝 페이퍼 몇 장 만들어서는 어디 가서 커닝했다는 말도 꺼내지 못한다. 적어도 사서(四書, 논어, 맹자, 대학, 중용)한 세트는 만들어 짱 박을 정도는 돼야 "나 다소 커닝 준비했다"라고 할 수 있다. 여기 그 근거를 제시한다.


조끼 안쪽을 전부 커닝 페이퍼로 활용했다. 시험보다 말고 이걸 벗어 뒤집어 볼 수 있을까? 자랑스러운 중국의 문화유산이다.


버선을 사용한 예이다. 크리스마스날엔 침대 옆에 걸어놓을 수도 있다.



신발에 커닝 페이퍼를 짱박은 모습이다. 물론 신발 자체에 쓰는 경우도 있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모두가 손바닥 위에 있다.


커닝하다 걸리면 이렇게 된다. 등 뒤에 크게 쓴 것(作弊)은 커닝이라는 뜻이다.

내가 생각할 때 자장은 모종의 시험을 위한 커닝 준비에 자신의 허리띠를 사용했다. 내가 보자기를 가지고 직접 시험해 보니 조금 느슨하게 매면 자연스럽게 아래위로 쉽게 까 볼 수 있었다. 또한, 이 허리띠(紳)는 버클이 없어 쉽게 빙빙 돌릴 수 있다. 매우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위의 내용을 미루어 볼 때, 자장을 '동양 세계 커닝의 시조'로 정의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중국의 위대한 도학자들은 자장의 뒤를 이어 커닝의 발전에 매진하였으며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 군자님들, 양반 님네들 중에도 커닝으로 과거 급제한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급제한 사람의 후손을 우리는 '양반의 자손'이라고 부른다.

『소인 논어』는 2,000년이 넘는 『논어』』주 석사에 지금까지 유례가 없는 새로운 학설을 주장한 것이다.

물론 다양한 비판과 반론을 예상한다. 혹시라도 나의 합리적 상상이 '성현을 모독하는 발칙한 상상'이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반론을 제기해도 좋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합리적 반론을, 물적 증거와 함께 제시하고 토론할 일이다.



① 이 대목이 나오는 전문은 아래와 같다.

子張問行,


子曰,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 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 行乎哉?”立則見其參於前也 在輿卽見其倚於衡也 夫然後行.


子張 書諸紳


한글 해석은 아래와 같다.


자장이 행해짐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이 충신 하고 행실이 독경하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고 하더라도 행해질 수 있거니와 말이 충신 하지 못하고 행실이 독경하지 못하면 주리(자기 동네)라고 하더라도 행해질 수 있겠는가? 일어서면 그것이 앞에 참여함을 볼 수 있고, 수레에 있으면 그것이 멍에에 기댐을 볼 수 있어야 하니, 이와 같은 뒤에야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다.”


자장이 (이 말씀을) 띠에 썼다.


『顯吐完譯 論語集註』傳統文化硏究會. 서울. 1991. pp.308-309.


② 신사(紳士, gentlemen)라는 단어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같은 의미로 쓰이며 한자도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绅)의 뜻이다. 이 글자를 자세히 보면 실타래를 나타내는 사(丝) 자와 끼우다(搢)라는 뜻의 신(申) 자가 결합한 글자이다. 정리하자면 신사란 '홀(笏)을 꽂아 끼우는 띠를 두른 지식계급(士)'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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