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새끼 - 老而不死

제14 헌문편(第十四 憲問篇) - 43

by 누두교주

남자들은 가끔 이상한 짓을 한다. 그중에 하나가 그냥 친구라고 부르면 될 것을 꼭 '친구 새끼'라고 부른다. '친구 새끼'는 학술적 용어로 '불알 친구'라고도 한다. 보통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친구 새끼' 따라가는 데가 강남이다.


20년 전 '친구'라는 영화를 매우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니가 가라 하와이" 라고 하는 대사는 지금도 그 눈빛, 억양 그리고 그 내면의 소리가 생생이 기억난다.


이게 벌써 20년도 지난 영화라는게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에게 가장 돈독한 친구 새끼를 들라고 하면 당연히 '창햅'이다. '친구 새끼' 관계의 특성상 뭐 하나 제대로 부르거나 대하는 게 없다. 이름도 그렇다. 녀석의 이름은 '창협' 이지만 그냥 '창햅'이 또는 '헐랭이'라고 부른다. 물론 그 녀석도 나를 제대로 부르는 법은 없다. 가장 점잖게 부를 때가 '똥팔이'다. 우린 서로 공부 빼고 뭐든 같이한 경험이 있다. 물론 서로 때린 적도 있고 편 먹고 다른 녀석을 쥐어박은 적도 없지는 않다.




공자도 틀림없이 남자인지라 '친구 새끼'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원양이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 스승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려서 불손하고 우애가 없었고, 커서는 이렇다 할 것도 없었으며, 늙어서도 죽지 않는 것은 도둑이다.

그리고 나서 지팡이로 그의 정강이를 때렸다.①


공자의 제자가 썼으므로 공자를 '스승님'으로 지칭했다.


이 문장을 보고 "지금 사람들은 이 문장을 얼핏 보고 공자가 그의 종아리를 쳤다고 한 것은 매우 잘못이다."② 라고 한 것은 옳다. 친구 새끼 종아리 칠 정신 나간 사람도 없고 친구 새끼가 종아리 때린다고 얌전히 걷고 대는 미친놈도 많지 않다.


요걸 '친구 새끼'들끼리의 언어로 번역하면 아래와 같이 될 거다.


헐랭이가 쩍벌하고 죽 때리고 있는 걸 보고 말하기를 "어려서는 형님을 제대로 모시지도 못하고, 커서는 빌빌대더니, 이게 나이 처먹고도 갈 생각을 안 하네" 하고 조인트를 깠다.


여기서 형님은 물론 나다. 나는 7월 31일생이고, 녀석은 8월 3일생이니 3일 차이가 난다. 내가 하루 이틀 차이나면 그냥 친구 하려고 했지만 무려 3일이나 차이가 나니 당연히 형님 아닌가? '오뉴월 하루 볕' 차이가 얼만데!



최근 며칠 권정생 선생과 출, 퇴근을 함께 했다. 물론 그가 모두 옳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잊고 있었던 많은 소중한 기억들이 불현듯, 문득, 울컥하게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고3 학력고사를 마치고 '친구 새끼'들과 동해바다를 찾은 적이 있었다. 창햅이, 현생이(현순이), 그리고 심스딘(용선이).


맨 왼쪽부터, 심스딘, 나, 현생이, 헐랭이다. 심스딘은 심각하게 고백하기를, 자신은 지구 사람이 아니고 그리그리 행성의 왕자라고 했다. 지금 어디 사는지 모른다.

지금 추억하는 그 녀석들에 대한 내 마음이 어쩌면 아래 권정생 선생의 시와 똑 같은지........

남자들의 '친구 새끼'에 대한 감정은 공자나, 권정생 선생이나 나나 매일 반 아닌가?

눈오는 날 / 김영동이 걸어가다가 / 꽈당 하고 뒤로 자빠졌으면 / 속이 시원하겠다.


오월달에 / 최완택이 산에 올라갔다가 / 미끄러져 가랑이 찢어졌으면 / 되게 고소하겠다.

칠월칠석날 / 이현주 대가리에 불이 붙어 / 머리카락 다 탈 때까지 / 소방차가 불 안 꺼주면 / 돈 만원 내놓겠다.

올해 ‘목’자가 든 직업 가진 몇 사람 / 헌병대 잡혀 가서 / 꼰장 백대 맞는다면 / 두 시간 반 동안 춤추겠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져 / 모두 정신차려 거듭나기를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기도하옵니다 / 아멘.③



** 사진 설명 : 우린 친구 새끼 따라 강남 말고 동해로 갔다. 고래 잡으러. 그런데 못잡았다.


① 리링(李零) 지음, 김갑수 옮김『집 잃은 개, 丧家狗2』(주)글 항아리. 경기, 파주. 2019. p.858. 원문은 아래와 같다.

原壤夷俟, 子曰, 幼而不孫弟, 長而無述焉, 老而不死, 是爲賊. 以杖叩其脛.


②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이기동, 임옥균, 임태홍, 함현찬 옮김 『논어징3(論語徵)』 소명출판. 서울. 2010. pp. 159-160. 원문은 아래와 같다.

今人遽見以爲孔子撻之, 大非矣.

일본 학자들은 17-8세기에 이미 이런 생각을 일반화했는데 조선은 그러지 못했다. 그 위선의 대가가 어떠했는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③ 권정생 지음 『우리들의 하나님』 녹색평론사. 서울. 2019. p.301

이 시에 나오는 김영동, 최완택, 이현주는 모두 목사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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