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 광시곡(狂詩曲)

by 누두교주

이른바 ‘갈라 치기’의 가장 큰 문제는 ‘낭비’이다. 내 편이 아닌 다른 편의 자원을 전혀 활용할 수 없으므로 당장 내 편으로 인해 얻는 이익이 고갈될 경우, ‘새’가 되는데 아주 좋은 방법이다. 문제는 혼자 또는 내 편만 '새'가 되면 덜 억울한 일인데 대부분 모두 '새'가 된다. 따라서 ‘갈라 치기’를 시도하는 누구의 말도 믿어 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개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이가 공부에 지쳐 수척해 가는 것을 보다 못한 아버지는 새벽녘 어스름에 집에서 키우던 개를 잡아, 집 앞 개울에서 불에 그슬린 후, 웅크려 앉아 손질하고 있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여러 날 아무 말 없이 개장국을 욱여넣는 일밖에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바람보다 훨씬 큰 학자가 되었고 지금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①




어머니를 모진 병에 잃은 아들에게 그 아버지에게도 같은 일이 닥쳤다. 여러 시간이 걸리는 모진 수술을 견딘 아버지는 ‘불치병’이라는 현대 의학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가 듣고 시도한 민간요법 중의 하나가 보신탕이었다. 아들은 한적한 교외의 이름난 보신탕집을 물어 물어 알아내 아버지와 함께 갔다. 갓 시집온 며느리는 한쪽 구석에서 삼계탕 국물을 어색하게 홀짝거렸고 아들은 유난히 말이 많았다. 아버지는 말없이 보신탕을 수저 질 하시며 가끔 창밖의 흐드러진 봄을 쳐다보셨다.




개고기를 먹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인가?


가난해도, 파리한 자식 입에 넣어줄 고기를 찾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적어도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죽음 앞에 초연하고, 소풍을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용기와 환경 그리고 지적 결단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더욱이 오십 줄에 아내를 먼저 보내고 까까머리 아들 여럿을 의젓이 키워내 이제 한숨 돌린 차에 찾아든 그 모진 병마를 물리칠 수 있다면 못 할 일이 있을까?




고운 색 송편을 빚고 정갈한 음식을 좋은 마음으로 준비해 그분들을 뵌 추석날, 우연히 집어든 시집에서 적당한 답을 보았다. 개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 것인지, 옳지 않은 것인지는 다툼의 명제가 돼서는 안 된다. 그 너머를 보는 것이 옳다.




어떤 장례


개가 죽은 새끼를 물고 묻을 곳을 찾아갑니다.

꼬리를 살짝살짝 흔들며 가는데 버릇일 따름인 것 같

습니다.

앞발로 땅을 파는 동안 새끼를 입에서 놓지 않습니다

새끼를 구덩이에 다독여 넣고는 콧등을 삽날 삼아 흙

을 덮습니다


보통 똥을 누고 덮을 때는 뒷발을 사용하는데 이건

다릅니다


다 묻고 돌아서서 콧구멍 속에 들어간 흙을 큭큭 불

어냅니다.

꼬리를 흔들며 돌아가는데 그건 아무래도 버릇 같습

니다②


한가위 달빛 아래 시루와 하는 산책길에서 탱이, 상태, 보름이, 개털이 그리고 다른 모두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① 아래 책에서 읽었다. 책을 찾아도 없어 페이지 표시를 못했다. 다음에 혹시 책을 찾으면 표시할 생각이다.

최진석 지음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북 루덴스. 서울. 2021.


② 안상학 지음.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서울 2020. 걷는 사람.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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