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점(占)을 칠 줄 아는 사람은 음력 1월이 매우 곤란하다. 더욱이 좀 본다고 소문이 나니 새해 신수점(身數占)을 봐달라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런데 점사(繇)를 풀 다 보면 영 읽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 처음엔 좀 이상해 여러 번 다시 보았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런 사람은 음양오행과 오래 접촉하지 않아 천지의 기운으로 운명을 점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세상은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양은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 뜨겁고 차고, 높고 낮고 와 같이 서로 다른 기운이 함께 어우러져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태극기 가운데 동그라미이다.
태극을 자세히 보면 빨강은 파랑 안에 들어가 있고 파랑은 빨강 안에 들어가 있다. 그래야 영원한 순환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요걸 반 딱 갈라놓으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고 죽은 것은 썩게 된다. 아니면 무생물이다.
태극의 순환이 창조해 낸 것이 오행이다. 오행은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 물(水)이다. 이들은 서로 도와주기도 하고 서로 방해하기도 하며 자연 질서를 구성한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만물은 오행과의 접촉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점점 오행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일 년 동안 살아있는 나무를 만져본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면 타오르는 불을 마주할 일이 없는 사람도 있다. (인덕션 부엌을 상상해 보라. 전자 담배로는 타오르는 불을 볼 일이 없다) 맨살로 흙을 접촉하고, 무쇠솥을 무시로 접촉하며 흐르는 냇물에 멱을 감는 것은 영화에서나 감상할 일이다. 결국 오행으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남·여 관계를 원수 보듯 한다면, 이 사람은 오행은 물론 태극의 원리까지 깔끔하게 거부한 사람이다.
공자가 점쟁이가 되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역경(易經)』을 공부하고 싶어 했던 것은 분명하다.
내게 몇 년만 더 보태어져, 쉰 살까지 역경을 공부한다면, 큰 허물이 없게 될 것이다①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주역』은 『역경』과 『역전(易傳)』을 합친 것이다. 물론 모두 점을 치기 위한 책이다.
나름 많이 배웠다는 공자도 앞일을 예측하는 공부를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앞일을 셈할 수 있다면 당연히 더 조심하고 삼가 낭패를 만나는 일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천지자연의 조화는 일반적인 사람의 생각과는 결을 달리한다. 그래서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운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상상해 보라)
『주역』 이야기가 나왔으니 뱀 발 삼아 하나의 예를 들어 보겠다.
우리는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럴까? 하지만 주역은 정반대의 해석을 하고 있다. 하늘의 기운은 위로 올라가려고 하고, 땅의 기운은 아래로 가라앉으려고 해서 둘은 점점 멀어진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하늘(天)과 땅(地)이 붙어 있는 괘(卦)는 꽉 막혔다(否)고 한다. 그래서 이 괘이름을 ‘천지비(天地否)’라고 하고 요렇게 그린다. (䷋)
따라서 반대로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 있다면 땅은 내려가려고 하고, 하늘은 올라가려고 하니 둘은 서로 점점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서로 통하고 편안할 수 있다(泰). 따라서 이 괘이름을 ‘지천태(地天泰)’라고 하고 요렇게 그린다. (䷊)
따라서 『주역』적 세계관에서 보면 여자가 남자를 모시는 게 아니라 남자가 여자를 높이고 모시는 게 맞다. 그래야 편하다. 공자는 요걸 뒤늦게 깨닫고 후회했으나 끝내 『주역』을 배우지 못해 회개하지 못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횡횡하다가 쫄딱 망한 것이다.
점을 치는 일은 기미(幾微)와 조짐(兆朕)을 살피어 해석하는 데 있다. 기미와 조짐은 음양과 오행을 통해 해석되는데, 이는 사람이 음양과 오행의 질서 속에 살 때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회사 지하 주차장으로 출·퇴근을 하면 계절의 변화를 모르게 된다. 창밖으로 부는 바람은 보이지 않으며 머리칼을 날리지도 못한다. 뜨거운 여름의 태양은 곡식을 여물게 하지만 에어컨과 함께라면 그 존재를 잊게 된다. 반바지를 입고 바라보는 창밖의 눈에서 겨울의 한기는 느낄 수없다.
이쯤 되면 실내에서 자동으로 움직이는 로보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점괘를 읽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나를 포함해 로보트의 일 년 신수를 볼 수 있는 점쟁이는 많지 않다.
그래서 점괘가 읽히지 않는 사람의 경우는 그냥 복채만 받고 말기로 결심했다.
** 대문 그림 : "그러므로 역(易)엔 태극이 있고, 태극은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은 팔괘(팔괘)를 낳고, 팔괘는 길흉(길흉)을 정하며, 길흉은 대업을 낳는다."라는 『주역』계사전(繫辭傳)의 구절이 보인다. (屈 萬里 著, 黃沛榮 整理 『讀易三種』 上海辭書出版社. 上海. 2017. p.222) 『주역』에는 음양이니 오행이니 하는 말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왕숙(王肅)이 『문선(文選)』에서 '양의'를 '천지'라고 하는 등 여러 곳에서 접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출처;https://me2.kr/SHoLQ, 검색일. 2023.2.16.)
① 김학주 역주 『논어 論語』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서울. 2009. pp. 110-111.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子曰 : 加我數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