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앞두고 -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제4리인 편 (第4里仁 篇) - 21

by 누두교주

『논어』를 읽을 때 가장 먹먹해지는 구절의 하나가 공자가 부모의 나이를 말한 부분이다. 고리타분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효(孝)를 말하지 않고 핍진한 마음을 촉촉이 잘 표현했다.


부모의 나이는 알지 않으면 안 되니,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두렵다.①


부모님께서 이미 장수하신 것이 기쁘고, 또 노쇠하신 것에 두려움을 가지는 자식의 마음을, 이렇게 간결히 표현한 공자는 효자임에 틀림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공자는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그의 아버지는 공자가 태어나고 얼마 안 돼 돌아가셨다. 또 공자의 어머니는 30대의 나이에 돌아가셨다.② 따라서 공자는 부모의 연세가 높아 기뻐할 일도 없었고 그래서 당연히 두려워할 일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구절이 정말 공자의 말인지 의심한다. 만일 맞는다면 공자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궁금하다.




그런데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수천 년을 이어온 아이러니가 있다. ‘자식은 절대로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어쩌면 이 모순된(또는 고정된) 사고의 방향이 효도를 강요한 근본적인 원인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나의 ‘알러지성 비염’이 그렇다. 유전된 이 증세는 특히 환절기에 매우 성가시고 불편하다. 당연히 이런 질환을 물려주신 아버님을 가끔 원망하기도 했다. 동시에 의지는 물론 내가 한 행동과 전혀 상관없이 평생 불편함을 안고 생활해야 하는 나의 처지가 가엾게도 생각됐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 병 때문에 환자분 부모님도 똑같은 고생을 하셨네요.”②


분명 같은 상황인데, 아주대학교 김대중 교수는,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난 내가 원하지 않았던 ‘알러지성 비염’에 대해 원망과 체념의 마음만 가졌지, 그 병을 먼저 앓던 아버님의 처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당신도 원망과 체념을 하셨을까?




주말을 맞아 오랜만에 염색을 하고 나니 한결 깔끔해진 것 같아 마음이 좋다. 아침에 모처럼 이태백을 읽다가 ‘나도 벌써 이런 나이구나’하는 생각에 허전한 느낌을 받았다.


백발 삼천 장, 길이는 슬픔 따라서 자랐건만

거울 속 노쇠한 몰골은, 어디서 얻어진 서리인고?③


아버님께서도 염색하실 때 이런 생각을 하셨을 텐데, 별말씀 없으셨다. 하긴 나도 아들에게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그 녀석도 내 나이 되면 알겠지.


우리는 그렇게 세대를 이어왔다. 하지만 이제 건너편을 쳐다볼 때도 됐다. 부모·자식 간에 시대에 맞지 않는 효도(孝道)를 우겨댈 일이 아니라 서로 마주 보고 눈을 맞추고 일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대문 그림 : 출처 ; https://buly.kr/CWpZ58Q. 검색일, 2023.4.9.


① 成百曉 譯註『顯吐完譯 論語集註』傳統文化硏究會. 서울. 1991. p.81.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子曰 父母之年은 不可不知也니 一則以喜요 一則以懼니라.


② (漢) 司馬遷 撰. 陳曦, 王珏, 王晓东, 周旻 譯 『史記(全五冊』 在中华书局。 2019. 北京。 2019. p. 2490. 내용은 내가 의역했다.


② 김경일 지음 『적정한 삶』 진성북스. 서울. 2021. pp. 216-217.


③ 장기근 지음 『古典漢詩人選① 이태백』 서용원. 서울. 1997. p.44-45. 원문은 다음과 같다. 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명경은 거울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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