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연봉 협상 - 齊景公 對 孔子 曰

제18미자 편(第18微子篇) - 3

by 누두교주

공자는 50대 중반부터 60대 후반까지 14년 동안 일자리를 찾아 외국을 돌아다녔다. 이를 폼나는 전문용어로는 '공자의 주유천하(周遊天下)’라고 한다. 이렇게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근본 이유는 우편이나 인터넷 접수가 불가능했던 당시의 시대 상황이었고, 공자는 끝내 취직하지 못했다.


『논어』의 여러 곳에 공자가 면접을 보는 상황이나 취직될 뻔했으나 꽝 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이 글은 마지막 임원 면접 과정에서 연봉 협상이 결렬돼 다시 길을 떠나는 공자를 묘사하고 있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의 대우에 관하여 말하였다. “계씨와 같이는 나는 할 수 없다. 계씨와 맹 씨의 중간으로 그를 대우하지.”


다시 말하였다. “나는 늙어서 그를 쓰지 못하겠다.” 공자는 제나라를 떠나갔다.①


제(齊) 나라 임금이 공자의 대우(연봉)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있다. 공자의 모국인 노(魯) 나라의 상경(上卿)인 Mr. 계만큼은 못 주고 하경(下卿)인 Mr. 맹 보다는 많이, 즉 계씨와 맹 씨의 중간 정도를 연봉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공자는 대답이 없다. 아마 바로 동의하지는 않고 좀 더 달라는 취지로 네고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자 제나라 내부에서 당연히 부정적인 의견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같은 레벨의 제나라 공무원들의 반대가 심했다.②


그러자 골치 아파진 제나라 임금은 공자의 취직(등용)을 없던 일로 선언해 버렸다. 뻘춤해진 공자는 별수 없이 다른 나라를 향해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나는 공자가 욕심부렸다고 생각한다. 제나라는 노나라 보다, 훨씬 큰 당대의 강대국이었다. 작은 회사에서 큰 회사 갈 때 자기 직급을 그대로 유지해 가면 성공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제나라 임금은 한 직급 보다, 조금 더 올려 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나 같으면 ‘Thank U’ 할 상황이다.


그런데도 공자는 시원하게 콜 하지 않았다. 그러니 제나라 고위 공무원들이 태클을 걸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다. 매우 분명한 잘못된 취업전략이다.


문제는 공자의 이러한 취업전략의 정보가 주변에 알려지게 되고, 따라서 공자는 취업하기 점점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이 먹은 경력사원이 고위직에 임용되기는 그렇게 쉽지 않다. 낙하산을 탄다면 몰라도!


대문 그림 : 공자가 주유천하할 때 고생하는 모습을 표현한 영화의 한 장면. 공자가 고생한 근본 원인은 취직이 되지 않아서 이다. (출처, https://buly.kr/AalEYEo. 검색일, 2023. 4. 10.)


① 김학주 역주 『논어 論語』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서울. 2009. pp.318 -319. 원문은 다음과 같다. 齊景公待孔子曰: 若季氏則吾不能. 以季·孟之間待之. 曰: 吾老矣. 不能用也. 孔子行.


② (漢) 司馬遷 撰. 陳曦, 王珏, 王晓东, 周旻 譯 『史記(全五冊』 在中华书局。 2019. 北京。 2019. 「孔子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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