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두교주 Sep 07. 2024

가을 앞에서(2024년) - 歲寒, 然後知松栢之後彫也

제9 자한 편(第九 子罕 篇) - 27

  드디어 낮 최고기온이 30도 아래로 내려갔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덥던 여름이 확실히 가고 있다. 바야흐로 향과 색이 짙게 가라앉은 대구리 큰 꽃 국화의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뭇 꽃이 다투어 피어나던 봄, 여름 마다하고 찬 서리 시린 가을날 고고히 피어나는 국화는 시절 분간을 제대로 못 한다는 점에서 나를 닮은 것도 같다. 딴 거 안 먹고 국화만 따 먹으면 1,700년을 산다는 말도 있으니, 그렇게 까진 안되더라도 올가을엔 국화주 한 잔, 걸게 해야겠다는 다짐은 해본다.     


  내친김에 국화 피는 가을을 지나 소한·대한 추위를 상상해 본다. 오싹하는 건조한 느낌이 싸하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나중에 시듦을 안다.


  보통 세월 좋을 때는 그놈이 그놈이지만 일단 유사시(가난해지거나 나라가 어지러울 때)가 되면 군자를 알아볼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도 그가 다녀간 흔적을 남긴 추사 김정희는 송백(松柏)의 절개 대신 “추워져가기만 하는 세월에 대한 느낌”②으로 공자의 마음을 읽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다 보니 점점 스산해져 갈 앞으로의 몇 달이 심란해지기도 한다. 사람의 간사함이 죽 끓는 것보다 심함이, 나는 소인의 성정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몇 번의 보름을 겪고 나면 틀림없이 진달래꽃 질펀한 봄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마 그때는 ‘징글징글한 추위’ 어쩌고 하면서 호들갑을 떨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소월의 「진달래꽃」이 어쩌고 하면서 갖은 폼을 다 잡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 아직도 「진달래꽃」에 나타난 그분이 당최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내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가 가겠다는데 내 앞길에 꽃잎을 뿌려줄 여자는 단연코 없(었)고, 당연히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결국 나는 민족의 정서와 아무런 관련 없는 삶을 사는 별종인가?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미인이 꺾어 들고 창 앞을 지나네.

살짝 웃으며 낭군에게 묻기를꽃이 예뻐요제가 예뻐요?

낭군이 짐짓 장난스럽게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미인이 그 말에 획 토라져서꽃을 발로 밟아 문대며 한마디 하네

꽃이 저보다 예쁘시거든오늘 밤은 꽃이랑 자라!


  그렇지! 내 주변의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성정을 가지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미인이 아니라는 점뿐이다.     




  날도 쌀쌀해져 가는데 더위 먹은 소리 그만하고 조신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얼핏 보면 소나무, 잣나무가 대단한 것 같지만 결국 그들도 시들었다. 잘난 척해봐야 결국은 추워져 가기만 하는 세월의 느낌에 속상할 일을 만드는 일인데....     


 계절의 작은 변화에도 촐싹이는 이 철부지를 어쩔꼬!     

  


대문 그림 : 추사가 그린「세한도」이다(출처:나무위키. 검색일;2024.9.6.) 『논어』를 소재로 한 흥미 있는 소재의 그림이다. 이상적이라는 제자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 최신 해외 서적을 구매해 장거리 탁송에 감격해 그 대가로 그려준 것이다. 나도 누가 그런 책 사주면 이 정도 그림을 그려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① 류종목 지음 『논어의 문법적 이해』 ㈜문학과 지성사. 서울. 2020.p. 317.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子曰, 歲寒, 然後知松栢之後彫也     


②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 발문의 말미이다. 원문은 “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이다.   

  

③ 고려시대 이규보의 「절화행(折花行)」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牧丹含露珍珠顆, 美人折得窓前過. 含笑問檀郞, 花强妾貌强. 檀郞故相戱, 强道花枝好. 美人妬花勝, 踏破花枝道. 花若勝於妾, 今宵花同宿(해석은 내가 다소 변경했다)      

작가의 이전글 『삼국지』와 춘추필법(春秋筆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