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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양이 CATOG Oct 30. 2022

불행이 아닌 불행

연어의 회기

  '삶'을 이해하는 것은 불행을 꼭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행운을 꼭 행운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 사이 어디쯤 중심을 잡고 유연하게 흐름을 타는 것을 배우는 일인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강사로 미술 강사로 일하고 있던 도중, 갑작스럽게 온 가족이 캐나다로 가게 되었다. 누군가는 20대 초반 그렸던 칙칙한 그림을 보면서  '사치스러운 감정을 누리는 예술가 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말했다. 분명 따뜻한 말을 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말이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그런가? 그림을 자꾸 그려서 이런 눅눅하고 무거운 감정들이 더 뾰족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어쩌면 그림을 그만 그리면 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고, 조금 덜 마음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에서 언어를 새로이 익히고 먹는 것, 입는 것부터 아기처럼  새로 배우는 상황을 맞이했다. 이번 달 내야 할 렌트비 (하숙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들의 반복 속에서, 그림 그리기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즈 파티에서 페이스 페인팅으로 돈을 버는 것 외에, 나를 위한 그림 그리기는 정말이지 '사치'로 다가왔다. 한동안은 정말 '생존'의 문제에만 몰입해서 시간을 보냈던것 같다. 초밥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학교도 공부도 병행하고...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멈춤 버튼이 없는 기계처럼 시간을 보내던 나는 어느덧... 몸이 고장이 나버렸다. 다리를 다쳤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빠른 시간 내에 무언가 성취를 많이 이루어야 된다고 스스로를 안달복달 했던 것 같다. 


 결국 한국에 잠깐 귀국하게 이르렀다. 예상치 못한 무릎 부상으로 나는 캐나다에서 수술을 두 번이나 했고, 다행히 한국에서 오신 물리치료사 선생님을 찾아 수술, 재활과 학교를 병행했지만,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한국에서 다시 무릎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년 정도 더 재활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예정된 긴 인내의 시간은 잠시 멈추었던 그림을 다시 그리게 만들었다. 멈춤 버튼이 없는 기계처럼 살았던 나에게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되는 일은 연어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사건으로 '너는 기계가 아니라 연어란다.'라고 누군가 말해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빨리 회복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괴로웠지만, 어쩌겠어... 결국 마음을 내려놓고 회복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첫 번째로 찾아간 재활센터는 한국에서 프로 운동선수들이 재활을 하고 있는 스포츠 재활센터였다. 축구, 배구, 야구, 농구, 스케이팅,  등등 전 종목 유소년/프로 스포츠 선수들과 함께 출근도장을 찍으며 재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파이팅 넘치는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급급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했다. 프로 선수들 스케줄에 맞추어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월요일부터 토요일 매일 재활센터로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강도 높은 훈련양으로 점심시간은 낮잠을 위해 1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나 역시 피로해서 낮잠을 잘 때도 있었지만, 이 시간을 운동선수들과 더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으로 사용했다. 


"어디 다쳐서 온 거예요?" 

의례 재활 센터에서는 이렇게 인사를 한다. 


"응~ 나는 이렇게 저렇게 다쳐서 왔어." 

라고 대답하니 어떤 선수는 


"와, 그 정도 다치면 축구 선수도 군대 면제해주는데 여자라 군대 면제도 안되고 어떡해요? 엄청 억울하겠다." 
라고 이야기해준다. 꿀밤을 꽁 때리고 싶을 만큼 나를 얄밉게 놀려먹으면서 이야기하는 말투였는데 은근 이 장난스러운 말투가 위로가 됐다. 


" 무슨 종목 선수에요?" 


"무슨 종목인지 맞춰봐"

쇼트트랙, 축구, 배구, 테니스 등등 각종 스포츠 종목 선수 이름이 다 나온다.


한참을 뜸 들이다가 

"응~ 일반인이야. 운동선수 아님."


이렇게 말하면

"근데 왜 여기 있어요? 선수도 아닌데?"

라고 되묻는다. 


그러면 옆에서 재활을 도와주시던 재활 선생님이

"선수만큼 다쳐서 그래"

라고 거들어주시곤 했다.


 운동선수들은 내기를 참 좋아한다.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딸기 라테 농구 내기를 종종 하며 선수들과 친해졌다. 농구 골대에 10골 중, 슛을 많이 넣기를 해서 이긴 사람에게 딸기 라테 사주기. 키도 작고, 운동선수가 아닌 나에게 딸기 라테를 얻어먹을 생각으로 선수들은 나에게 자주 내기를 걸어왔다.


키도 작고, 운동선수도 아닌 나는 그들에게 왠지 어설프게 보여서 내기 대상으로 낙점되기 일쑤였다. 어설픈 폼으로 종종 그들에게 딸기 라테를 얻어먹으며 친분을 쌓았다. 그리고 손이 심심해서 그리기 시작한 운동선수들의 캐리커쳐를 그리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다리가 잘 안 나을 때는, 이 다리가 그냥 내 다리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냥 할 일 해~


문득, 어떤 선수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유머 섞인 그 선수의 농담이 안달복달하던 나에게 약이 됐다. 과연, 부상이 잦은 그들의 삶 속에서 나온 뼈 때리는 이야기였다. 마음을 조금 내려놓자, 문득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운동선수들은 대부분 매우 어린 나이, 초등학생 때 그들의 선수로써의 커리어를 시작한다. 그러나 모두 프로선수가 되어 명성과 부를 쌓는 것은 아니다. 어린 선수들이 촉망받는 스타플레이어로 성장하는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만큼 적은 확률이다.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주목받는 유망주로 발탁된다 하더라도, 어떤 선수들은, 감독의 과도한 사랑 때문에 몸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플레이를 감당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매우 심한 부상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리고 성인 선수로 성장하였을 때 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은퇴를 고민하기도 하고,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던 선수가 성장기를 거치며, 폭풍 성장을 이루며, 주목받는 선수가 되기도 한다. 프로 선수나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된 선수들이더라도, 부상의 위험은 항상 떠안고 운동을 한다. 그들은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 앞에서 매일 오늘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들이었다. 딸기 라테 내기를 할 때는 장난기가 가득했던 선수들도, 훈련 시간이나, 필드(경기장)에 나가면 진지함과 카리스마가 넘쳤다.  신체적 능력이 중요시되는 직업이닌만큼, 은퇴시기 역시 굉장히 빠른 직업이지만, 오늘 하루에 대한 충실함은 흠잡을 때 없이 진지하다. 언뜻 보면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비주얼의 선수들(운동화 300mm를 신어야 할 만큼 발도, 덩치도 산 만한 친구들)도 아프고 힘들면 엉엉 울 때가 있다. 그리고 또 오늘이 마지막인 것 마냥 또 뜀박질을 한다. 정말 멋지다.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재활하다 만난 사람. 축구선수 주호
재활하다 만난 사람. 물리치료사 다영 선생님
재활하다 만난 사람. 쇼트트랙 선수 경주.
재활하다 만난 사람, 축구선수 재경
재활하다 만난 사람. 전 축구선수 현 물리치료사 안나 선생님.


재활하다 만난 사람. 전 국가대표 배드민턴 선수, 현 스포츠 지도자, 도윤 언니



그런 그들을 보면서,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다시 조금씩이라도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면 스스로에게 너무 비겁해지는 것 같다. 


  현재 소속된 집단과 환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스스로를 한 뼘 더 성장하게 이끈다. 개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닌, 이상해서 슬픈 개양이가 아니라, 이상하기에 그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개양이다 I am Catog전, 첫 초대 개인전을 하게 되었다. 재활 센터 식구들이 방문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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