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시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시인이 되었다. 이전에도 시를 쓰긴 했지만, 아이를 낳고 아이에 관해 쓴 시가 지금껏 살면서 쓴 시보다 더 많다. 여기 그중 몇 편을 소개한다.
우선 아이의 한 마디가 영감이 된 경우다.
제목 : 무지개
무지개 걸렸네 하늘에
무심코 바라보던 아기
예쁘다 무지개 한마디
아빠 무지개가 예뻐요
엄마에게 선물할래요
무지개 목걸이 줄래요
구름에 걸린 무지개 따다
엄마 목에 걸어 드릴까
아기는 오늘도 엄마 생각
제목 : 하루 종일 사랑해요
아빠와 놀다가 갑자기
하루 종일 사랑해요 말하는 너
아빠는 이런 사랑 고백을
들어 본 적도 없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힘들 때나 지칠 때도
그 어느 때라도
나를 하루 종일 사랑한다니
제목 : 사랑의 부채
요즘 아이와 놀다 보면
아이가 불쑥 이런 말을 한다
아빠 제가 커서 다 갚아드릴게요
엄마가 가르쳐 준 말일까 한다
아이가 나에게 갚을 것이
사랑 외에 무엇이 있겠냐만은
아빠가 사랑을 더 듬뿍 주어
사랑의 부채를 늘려가야겠다
때로는 아이의 사소한 행동이 시의 영감을 주기도 한다.
제목 : 턱수염
새벽 다섯 시
감긴 눈에 반쯤 깨어
아빠 턱 쓰다듬는 아가
무얼 하는 걸까
이내 눈을 반짝 뜬다
아 엄마가 아니로구나
엄마에게로 간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우리 아가만의
엄마 아빠 판별법
제목 : 욕조의 꽃
욕조에서 아빠와 놀던 아기
얼굴에 꽃받침을 만든다
아빠 저는 꽃이에요
물을 주어 보세요
머리에 물 뿌리자
시나브로 일어서는 아기
아빠 아기 꽃이 자랐어요
아빠 사랑도 더 자랐단다
제목 : 부드럽고 예뻐
밤이면 시작되는
아이의 사랑고백
엄마는 부드럽고 예뻐
아빠는 부드럽고 예뻐
부드럽다는 단어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우리 아기 마음이
부드럽고 예뻐서일까
제목 : 이불
가을바람이 선선해진 날
아이와 놀다 벤치에 누웠다
아이가 놀다가 벤치로 와
아빠 품으로 안긴다
아빠 제가 이불이에요
그래 네가 이불이구나
가을바람 막아주는
아빠만의 이불
아이와 한 대화 자체가 시가 된 경우도 있다.
제목 : 끝이 없어
숫자는 끝이 없어요?
숫자는 끝이 없단다.
우리 인생은요?
인생도 끝이 없지.
수명이 정해져 있잖아요.
수명은 정해져 있지.
다만 매 순간을 늘려늘려
끝없이 느끼면 된단다.
제목 : 사랑의 순환
아기와 즐거운 놀이시간
아기가 손하트를 만든다
아빠 사랑을 받았어요
누구에게 받았는데?
엄마한테 받았어요
그 사랑 누구 줄거니?
외할머니 주고 싶어요
외할머니로부터 엄마에게로
다시 아기에게로 갔다가
사랑은 외할머니께 돌아가누나
제목 : 너만 보여
어린이집 가기 싫어요
왜 가기 싫은데?
선생님이 무서워요
선생님이 왜 무서운데?
선생님은 내가 울 때
아무것도 안 해줘요
그럼 아가야 아무리 울어도
엄마 아빠만 네가 보여
아니 네가 울지 않을 때도
엄마 아빠는 너만 보여
제목 : 바다
하루의 지친 몸을
아기와 함께
욕조 물에 뉘이다.
아빠 여기는 바다예요.
아니 여기는 욕조란다.
그래도 바닷물 같은걸요.
그래 너에게는
작은 욕조의 물도
바다와 같이 느껴지겠지.
어쩌면 나라는 사람도
아기에게는 무엇보다 큰
세상일지 모르는 것처럼.
제목 : 사랑의 온도
새벽 출근하는 아빠를 따라
거실로 나온 아가
아빠 거실이 추워요
아가야 조끼 입혀줄까?
아니오 아빠품에 갈래요
아빠 품이 더 따뜻해요
우리 아가가 벌써
사랑의 온도를 아누나
제목 : 각자의 보석
아빠가 잘못했어
아빠도 용서해 줘
아빠는 용서 안 해
동생만 용서할래
아빠는 왜 용서 안 해?
아기는 잠시 고민하다
아빠는 엄마 보석이고
동생은 내 보석이니까
이렇듯 아이는 나에게 시를 쓰게 한다. 아이를 향한 사랑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 것 같다. 마지막은 이 시로 하는 것이 좋겠다.
제목 : 내 안에
내 안에 이렇게 많은 글이
있을 줄은 몰랐어
너를 만나서 참 다행이야
내 안의 글을 알게 해 줘서
너를 사랑해서
나 오늘도 글 쓰네
너에 대한 사랑으로
오늘도 글이 나오네
P.S 더 많은 시는 너를 키우며 매거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