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벽에 똥칠하는 댓글

by 휘루 김신영

조선후기에 유몽인의 『어우야담』은 항간에 전하는 이야기와 잡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이 책이 가지는 가치는 이미 여러 개의 창작으로 나타나는데, 이야기의 의외성으로 재미를 준다. 예를 들어 천인을 만나 나눈 이야기는 드라마에서 우주인과 조선시대 여인의 사랑으로 나타나는 모티브 《별에서 온 그대》(2013)와 닮아있다.


야담의 성격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잡설, 패설, 항설 등등 갖가지 이야기들이 여러 형태로 남아 있다.


현대의 댓글창은 야담처럼 이런저런 잡스러운 글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더욱이 최근에는 항간에 떠도는 가장 악한 말이 담기는 창이 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악담이 판치는 것은 사람들에게 그만큼 분노의 감정이 살아 있다는 말이 된다.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저주하고 막말과 욕설을 퍼부으며 훼방을 놓아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은 사회와 그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긍정으로 가득 채워도 모자랄 인생에서 왜 상대방에게 악담을 쏟아 놓으며 사회분위기를 흐리는 것일까?


악담을 하는 자들은 내면의 부족함과 자신 없음, 그리고 이웃과 사회의 질시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고 심리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실제 생활에서는 나약한 자신의 모습어떻게 할 수 없으므로 글이라도 자유롭게 마음대로 올려서 탓하는 것이다. 즉, 인터넷상에서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어 존재감으로 상쇄하는 것이다.


이에 기를 쓰고 다투고 욕하며 상대를 깎아내리는 악다구니짓을 서슴지 않는 망나니가 된다. 살인과 폭행을 일삼는 최악의 패륜아처럼 망나니의 험상이나 말씨와 행동은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그러니 댓글에 악담을 마구 해대는 사람들의 마음은 살인자나 패륜아에 다름 아닐 만큼 무섭다.


우리 속담에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산다’는 좋지 않은 말이 있다. 해악을 끼치면서도 오래 살 것이며, 또는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즉 치매에 걸려 자식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면서 오래 살아 누군가를 힘들게 할 것이라는 악담이다.


요즘 요양원에서도 벽에 똥칠하게 그냥 두지 않는다. 그런데도 벽에 똥칠하는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것은 그때의 시대착오적 발상에 의한 속담이다. 그러한 해악을 끼칠 정도라면 갇힌 생활을 하는 것이 맞다.


벽에 똥칠하는 행위는 조선 시대처럼 효의 정신이 가득 차 있을 때에도 참으로 곤욕이었다. 2023년도를 지나는 지금에야 오죽하겠는가? 더 이상 벽에 똥칠하는 극악한 댓글 현상을 목도할 수 없다.

keyword
이전 13화포털의 알고리즘 조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