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는 지옥이다

by 휘루 김신영

<타자는 지옥이다>

사르트르는 <타자론>에서 타자는 지옥이자 자신의 근거라고 말한 바 있다. 타자란 나가 아닌 존재를 일컫는다. 나와 투쟁 관계인 타자는 본질부터 다르다.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짓는 것은 여성에게 철저한 타자적 사회를 말한다. 타자적 사회는 여성에 대한 이해 결여는 물론 차별과 억압으로 타자의 영역을 넓혀왔다. 이에 많은 부작용이 우리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뭐가 부족하냐고 어떤 랩퍼는 노래하였다. 네가 무슨 불평등이 있었느냐고, 왜 불만이 그리 많으냐고 랩퍼는 노래한다. 못 배운 것도 아니고, 직장도 다니고... 부족하지 않다는 항변이다. 그것은 타자의 관점에서 볼 때 가능한 말이다. 자신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스스로도 무엇이 부당한줄 모르는데 어찌 남의 상황을 알겠는가? 따라서 타자가 말해주는 충고, 조언, 좋은 말은 지옥일 수 있다. 자신을 찾는 주체적인 자아 찾기에 집중하여야 한다. 자신의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존재, 사람의 형상인 지 살펴볼 일이다.


사람의 본질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사람의 성질이나 모습이다. 남성이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의미에 머물지 않고 인류의 문화를 이루고 주체로서 살 듯이, 여성 또한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개념의 여성을 넘어서서 한 인간 존재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본질이다.


국어사전에서 여성주의는 흔히 여권신장과 관련되어 표현되는 경향이 있다. 여성주의는 여권신장이 아니라 본래 가져야할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체계를 원상 복구하는 과정이다. 국어사전에서의 의미가 문제가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최근의 여성주의는 양성평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양성평등은 여성은 물론 남성들도 억압과 편견 속에서 자신을 억압하면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등장한 것이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그 사회와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여성이라는 옷도 그 사회와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사회의 구조 속에서 조금 다른 것은 손가락질 받기 일쑤다. 내 옷이 나에게 맞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나의 취향과도 거리가 있다. 사회가 원하는 나의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은 결혼을 하면서 더욱 그 굴레가 심해진다.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여성의 인격이나 여성에 대한 존중은 사라지고 억압과 왜곡된 인식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여성 또는 남성의 외피를 입은 우리는 당연히 동등한 사람이다. 따라서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이기에 보조적 존재로 취급받으면서 무시당하고 저임금을 받으면서 허드렛일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승진하듯이 능력이 있는 여성은 승진하여야 한다. 배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어떤 외피를 입었든지 그는 먼저 사람이다. 사람이 본질이다.


성차는 그 다음이다. 따라서 성차를 강조하는 ‘남자’, ‘여자’라는 표현에 반대한다. 성을 앞세우게 되면 반드시 그에 준하는 차별이 따라간다. 성차를 꼭 나타내야 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사용하지만 그 외에는 모두 ‘사람’으로 표현한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이제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냥 사람으로 표현하자.


따라서 ‘사람(Human)’의 기준에서 무엇이든지 정하고 추진할 일이다. 이를 여성, 남성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불평등을 야기한다. ‘사람’, ‘인간’이라고 하면 되는 것을 굳이 구분하여 차별과 불평등을 부추기는 것이다.


사진-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두사람은 계약결혼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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