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티'와 '열녀문'

by 휘루 김신영

‘사티’와 ‘열녀문


여성을 돌로 쳐 죽이는 문화가 아직도 행하여지고 있는 이슬람의 문화권에서는 인권유린과 학대와 살인을 명예로 아는 엉뚱한 제도가 많다. 그중 ‘사티’라 불리는 그들의 전통과 문화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사티(산스크리트어: सती)는 예전에 인도에서 행해졌던 힌두교의 의식으로,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시체·옷과 함께 그의 아내도 산채로 화장하던 풍습이다. 아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가족의 강요로 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1829년에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점차 줄어들었으나 아직도 종종 뉴스에 등장할 만큼 문제를 낳는 악습중 최고의 악습이다.


가부장제가 극에 달하는 인도는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면 여자가 남편을 잡아먹었다면서 낙인을 찍어 재혼도 못 하게 하였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의 악습이 존재하는데, 재가 금지와 ‘남편을 잡아먹었다’라는 표현은 아주 닮아 있다. 이때 인도의 여성은 머리를 모두 깎아 대머리인 채로 낙인찍혀 죄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나마 살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사티가 행해지면 여성은 길면 10시간이 넘도록 불에 태워져 죽음을 맞아야 했다. 처음에는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지만 이내 전신이 3도 화상으로 덮이고 가장 아픔이 심하다는 단계를 거쳐 신경이 죽을 때쯤이 되면, 이때부터는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서서히 지켜보면서 생을 마감한다. 어떻게 이렇게 잔혹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인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전형적인 모습이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죽어가야 했던 것은 주변 남성들이 남아있는 재산을 노리고 모두 차지하기 위해서 벌인 일이다. 그가 죽어야 재산이 사원으로 넘어가고 그래야 사원의 남성들이 재산을 독차지한다. 따라서 사원도 이에 동조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죽은 여성은 브라만과 결탁한 여신으로 승격이 된다.


이와 비슷한 제도가 한국에서는 ‘열녀문’이다. 인도처럼 극악하지는 않지만, 강요 때문에 열녀가 되어야 하며 재혼도 할 수 없었다. 또한, 이에서 더 나아가 여성들의 정절을 강조하기 위해 자결하는 부인들을 기리는 열녀문을 세워주었다. 여성이 희생하여 가문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다. 시가와 친가의 사람들이 여성에게 자살을 직접 강요하거나 혹은 직접 살해하고는 자살로 위장하는 사례까지 발생한다.


이후에는 열녀문을 세워주는 조건으로 열녀로 뽑힌 이들의 존경과 가문의 영광이 직결되는 경우가 많아 열녀로 뽑히려고 일부러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한 폐단이 생기기도 한다. 조선 여인의 정절, 평생을 수절한 여성, 남편을 따라 자결한 여성으로 열녀문을 세워 이를 출세의 기회로 삼으려는 가부장의 패륜이 성행하였던 것이다.


남편이 일찍 죽은 여성들에게 은근히 수절이나 자살을 방조하였으며, 심지어 살해하였다는 것은 사티와 별반 다르지 않은 행태다. 이렇게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여 가문의 영광을 얻는 예는 형태는 다르지만, 각 나라에서 존재하고 있다.


인도는 여성이 살기 가장 힘든 나라 중 하나다. 강간과 성폭력이 만연하고 결혼지참금을 내야 하며 지참금이 부족하면 신부를 죽이는 ‘지참금 살인’이 행해지며, 아내 학대를 일삼고 있다. 또한, 강간 후 살해하는 악습이 아직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굳이 어떤 신문기사가 아니라도 날마다 인도는 여성들이 강간에, 살인에,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며 보호해주지 않고 방관하는 재판이 성행하여 남성들은 죄를 짓고도 버젓이 활보하고 있다.

또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징벌을 가하는 악습도 여전하며 조혼 풍습으로 인하여 15세 미만 청소년들의 출산율이 18%에 이른다.


더불어 가해자 아닌 피해자를 향한 따가운 시선이 어디에나 있는 상황이다. 최근 불거진 신림동 등산로 살인사건의 경우도 왜 그 시간에 등산로에 혼자 갔느냐는 2차 가해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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